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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조행기

[스크랩] 단체전 6팀 - 비내여울 단상

by 굼벵이(조용욱) 201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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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연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아니 존경한다.

그렇지만 자연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복종한다.

내게 등을 돌린 자연의 모습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우리 집사람도 그렇다.

내 친구도 그렇다.

강에서 만난 낚시 친구들도 그렇다.

아마도 모두가 자연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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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여울 입구에 철조망으로 펜스가 쳐져 있다.

아침 안개 속에 드러나는  미군 중기들의 모습이 마치 중국 상해의 포동지구 마냥 갑작스레 장엄하다.

적어도 신사라면 낚시꾼이 강에 들어가 낚시한다는데 이를 방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소병을 거쳐 담당 장교를 만나 훈련에 방해를 주지 않을 터이니 강에 들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분명 우리보다 문명이 앞선 신사들이다.

합리적 타당성이 인정되면 OK다.

우리는 철조망 펜스를 걷고 훈련장을 뚫고 들어가 강가에서 장비를 풀었다.

미군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우리를 열열히 환호한다.

그들은 친근함의 표시로 “안녕하세요” 와 “fishing?"을 연달아 외친다.

비내여울은 그렇게 힘들게 우리에게 장악되었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날 반겨줄 것인가 한껏 기대를 품는다.

오늘따라 물살이 유난히 거세다.

강하게 입질하는 흔적 하나 달랑 남길 뿐 피라미 한 마리 날 반겨주지 않는다.

사이버 준은 그냥 지나가는 ‘청태’라고 우긴다. 

 ‘내 견지 경력도 그리 만만하지 않은데...’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한 시간이 넘게 흔들어보고 자리를 옮겨보지만 싸늘하게 돌아선 어심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 육중한 중기들이 수 없이 오가며 내는 굉음과 진동이란 작은 물고기들이 경기를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

사이버 준이 이왕 글렀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독촉한다.

내심 그냥 여기서 라면이나 끓여 소맥이나 한잔 말아먹고 흐르는 강물이나 바라보다가 올라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조터골을 한번 가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다.

거기 가도 누군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다.

늙어갈 수록 남에게 폐되는 행위가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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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터골로 들어가는 진입로도 둑을 쌓아 올려 무언가 인공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하다.

오래 살려면 자연산을 먹어야 한다며 유기농이나. 자연산 식품은 그렇게 찾으면서도 그 무서운 자연에 자꾸만 인공의 손길을 더듬는다.

정치든, 경제든, 인생사든 어차피 정답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고 강물처럼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반드시 거쳐야할 시행착오를 제 몸으로 직접 겪게 한다.

비내가 엉망인데 조터골이라고 온전할까?

그래도 끄리 두 마리가 먼 길 왔는데 손맛이나 보라며 후하게 대접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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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 견지낚시에 대한 경륜이 쌓일수록 낚시가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생명에 대한 외경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파란 강물과 맑은 공기, 푸른 산, 봄 꽃, 가을 단풍, 강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 강을 찾지만 가끔은 어둡고 길게 드리워진 산 그림자가 무섭기 때문이다.

한여름 장마에 우는 물고기의 아우성이 무섭기 때문이다.

봄바람에 아름다운 잎을 떨구는 꽃잎의 절규가 무섭기 때문이다.

검푸른 잎사귀 빨갛게 타올라 마침내 앙상한 가지만 남기는 외로움이 무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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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더 사랑해야 한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파란 하늘, 맑은 물, 눈망울이 예쁜 물고기들.....

가슴 시리도록 사랑해야 한다.

무서움을 망각할 때까지 죽도록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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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너무 무거웠나요?

살다보면 가끔은 시고 쓴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지 않나요?

 

 

출처 : 여울과 견지
글쓴이 : 굼벵이(조용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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