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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길지만 읽어야할 잊혀진 질문

by 굼벵이(조용욱) 201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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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질문」(차동엽, 명진출판, 2012)

1. 희망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에마 골드만」의 시(詩)입니다.
“희망이 없는가? 소망이 없는가? 꿈이 없는가? 그러면 만들어야 한다. 꼭 만들어야 한다.
너무 절망스러워 도저히 희망과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찾아보고 또 찾아야 한다.
그래도 없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꿈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두려움’에 대하여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이 위트 넘치는 말을 했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한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부터 무서워한다.”
「넬슨 만델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3. 다음은 삶의 원리(原理)를 제시한 경구입니다.
1)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자체를 즐기라.
2) 배를 곯을지언정 의미 없는 일은 하지 마라.
3) 돈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영혼을 잃기 쉽다.
4) 명예를 구하여 일하는 사람은 기쁨을 잃기 쉽다.
5) 권세를 탐하여 일하는 사람은 친구를 잃기 쉽다.
6)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일을 위하여 일하라.

4. 법정(法頂) 스님은 <하늘 냄새>라는 시에서 영혼의 향기를 이렇게 노래 합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 한데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5. 외로움은 사랑의 필요를 호소하는 원초적 욕구입니다.
고독은 그 사랑의 샘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탐색의 장입니다.
외로움은 영글 때는 육신이 처절하게 흐느끼지만, 고독이 영글면 영혼이 기쁨으로 벅차 흐느낍니다.
그리고 그리고, 외로움은 손을 안으로 오그라들게 하지만, 고독은 손을 밖으로 내밀게 해줍니다.

6. 「아인 슈타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신비다. 그것은 모든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다.
그 감정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신비의 느낌이야말로 모든 진정한 종교의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직 이런 의미에서만 나는 독실하게 종교적인 사람이다.”

7. 신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지금은 대주교님이 되신 한 교수님이 대뜸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 줄 압니까?” 그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딱 책 한 권 읽고서 뭘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8. 영국의 유명한 추기경 「뉴먼」이 다음과 같은 뼈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믿음은 실재동의(實齟意)이지 개념동의(槪念同意)가 아니다.”
믿음은 어떤 교리를 머리로만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을 위한 병원이지 성자들을 모신 박물관이 아닙니다.

9.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의 한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것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건 오직 마음으로 볼 때이다.”
여기에 그가 말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영안(靈眼)이라 부릅니다.

10. 하나님의 존재는 이론적인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입니다.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칼릴 지브란」은 ‘믿음’이란 마음속의 앎이요,
증거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앎이다’라고 진술 했습니다.

11. 「프란시스 베이컨」은 다음과 같은 뼈있는 말을 했습니다.
“약간의 과학(a little science)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더 많은 과학(more science)은 그를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입니다. 부족한 과학이 종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 없는 과학은 온전히 걸을 수 없으며, 과학 없는 종교는 온전히 볼 수 없다.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는 명언은 영구적으로 유효할 것입니다.

12. 거듭 말하지만, 용서는 자기자신을 위한 결단입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압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 분노와 미움이 독이 되어 본인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미움의 독을 풀어내는 일이 바로 용서입니다. 미움과 증오는 인간의 영혼을 황폐화 시키지만,
용서는 영혼을 비옥하게 합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 ‘과거의 감옥’에 갇히게 되며,
미움과 증오의 속박까지 당하는 운명을 자초하게 됩니다.

13. 그렇습니다. 꿈을 이루는 가장 큰 인자는 버티기 입니다. 시인 「롱 펠로우」는 말합니다.
“잠긴 문이 한번 두드려서 열리지 않는다고 돌아서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큰 소리로 문을 두드려 보아라.
누군가 단잠에서 깨어나 열어줄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애매모호한 ‘남’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 잠자고 있는 거인(巨人)일 수 있고,
기회일 수 있고, 사필귀정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일 수도 있습니다.

14. 스페인의 유명한 첼로 연주가인 「파블로 카잘스」는 아흔한 살이 되어서도 날마다 첼로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 제자가 묻더래요. “선생님께서는 왜 아직도 계속 연습을 하시는 겁니까?”
그에 대한 카잘스의 대답이 일품입니다. “요즘도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라네.”

15. 17세기 네덜란드와 유럽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그가 유명해지고 난 뒤 한 미술학도가
그에게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좋겠습니까?”
렘브란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붓을 잡고 지금 시작하세요.”

16. 고통은 여러 가지 순기능(順機能)을 갖고 있습니다. 보호의 기능, 단련의 기능,
그리고 정신적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기능 등이 그것입니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처절히 묻게 해 줍니다. 그러니 고통은 ‘생명의 몸살’입니다.

17. “웃음이 파도라면 눈물은 해일”이라고 합니다.
웃음을 훨씬 능가하는 눈물의 강력한 효능을 일컫는 경구입니다.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감이 충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웃는 것 못지 않게 우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했는가?
이 물음이야말로 실패에 대한 강력한 위로이며, 진정한 성공을 향한 불편한 채찍일 것입니다.

-우리 말 편지. 성제훈-

(새미래 뉴스에서 재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