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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스탕달의 적과 흑

by 굼벵이(조용욱) 201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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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은 사실주의적 미학관을 가진 낭만주의자다.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 객관적 사실주의를 추구했다면 그의 소설 적과 흑은

작가의 비전으로 사실을 묘사하는 주관적 사실주의를 추구한다.

'적'은 사랑과 열정, 공화주의 등을 의미하는 반면

흑은 죽음과 권태, 종교세력 따위를 의미한다.

위선의 외관을 둘러 쓴 주인공 쥘리앙이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태어나 교묘한 사랑의 줄다리기를 타며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귀족의 신분으로 탈바꿈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쥘리앙은 나폴레옹의 또 다른 얼굴이다.

1830년대 프랑스 왕정복고 시기의 폐쇄된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이 추구했던 출세 제일주의적 삶은 외면의 공허한 우아함만 남길 뿐

모든 것을 얻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남긴다.

출세지향적 삶을 거부한 영웅주의적 삶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나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욕망의 아름다운 실현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때늦은 후회의 아쉬움만 남길 뿐이다.

 

‘인생의 거의 모든 불행은 우리에게 발생한 일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완벽하게 인간을 알고 사건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행복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왜 현대사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인간의 허영심으로 답한다.

그 허영심은 대개 자신이 아닌 제 3 자 즉 남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나 타인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타인들과의 관계는 곧 불시에 완전히 끊어져 버리므로 남에게서 비롯된 허영심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을 찾는 욕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나 자신을 경멸한다면 내게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그러나 현실사회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를 멀리함으로써 전원의 고요와 행복을 꿈꾸려는 자는

그 정치로 인해 결국 자신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떠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이다.

우리는 여기서 조심스럽게 정치의 목적이나 비전을 찾을 수 있다.

전원의 고요와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정원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추구해야할 제일의적 가치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은 미래를 향한 야망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현재 주어진 행복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욕망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낭만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