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2333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세우고 조선을 건국하니
이는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대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맥에 내려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는데
그 단군이 1500여 년간 조선을 다스림
사실상 이 단군시대 문화는 중국의 고대문화를 능가했었음
가장 공이 많은 부락의 수두(신단)를 신수두라 하여 제1위로 존중하는데
이 신수두가 삼경오부제(도(刀),개(介),걸(乞),유(兪),모(毛))를 창시함
이것이 부여의 오부제로 전수됨
(돗가, 개가, 소가, 말가, 신가)
신수두의 대단군이 부루를 중국으로 보내 한자를 수입하고
이두문을 창제하여 역사서 神志를 쓰게 함
서언왕은 중국의 강회지역에 소왕국을 세우고
중국지역 36국에서 조공을 받을 정도로 성하였으나 7세기 말에 쇠약해 짐
대단군의 영토는 만주와 한반도를 석권했었음
한국사의 최초기록은 고려사의 김위제전에 의하면 단군시대 역사기록인 신지라고 함
민간버전으로는 저술연대나 내용 등에 있어 학계의 논란이 있지만
규원사화, 삼일신고, 조판기, 태시기, 환단고기 등이 있음
사마천의 사기에도 조선열전과 위만조선이 있음
위만은 연나라에서 조선으로 망명한 자로 위만의 손자 우거 대에서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하여 정복했다고 기술
전한의 역사를 다룬 반고의 한서에도 조선전이 있음
후한서에서는 조선전이 동이열전으로 바뀌었음
동이열전은 AD440년경 범엽이 쓴 후한서의 여러 열전 중 동이의 열전이라는 의미임
진수(233-297)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후한서의 동이전과 유사.
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예, 옥저, 물길, 삼한이 나옴
고구려의 역사는 유기백권, 이문진의 신집오권이 있으며
백제의 역사는 고흥의 서기
신라의 역사는 거칠부의 국사
통일신라의 역사는 최치원 김대문의 역사저술이 있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왕의 업적을 과시하고 국가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한 용도로 쓰여 졌음.
구삼국사는 고려초기 삼국의 역사를 편찬한 것으로 추측됨
고려 후기 이규보의 기록에 의하면 1245년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기 전
‘구삼국사’가 존재했음을 밝히고 있음.
구 삼국사는 고구려의 정통을 계승하는 역사관으로 쓰여 졌으나
삼국사기에 와서는 신라계승 역사관으로 바뀐 것으로 보임
삼국사기는 삼국시대의 역사이지만 한 시대의 역사를 끊어서 만든 단시대사이고
역사계승문제를 크게 다룬 것은 아니었음
한국사를 체계화시켜서 서술하거나 고민한 흔적도 없음
그러므로 정통 한국사는 삼국유사에서 시작된다고 봐야 함
단군으로부터 삼국에 이르는 시기에 대하여는 이견이 많고 그 체계화도 어려움
단재선생의 백제의 해외경략설은
웅혼한 기상의 한국사를 찾으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음
중국 산동반도에서 요서지역에 이르는 중국 동부지역을 부여가 한 때 경략함
송서에는 고구려가 요동을 점거하자 백제가 요서를 점거했다고 기술
구당서 백제전에는 백제가 서쪽으로는 바다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쪽으로도 바다건너 왜(일본)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음
문헌비고에도 월왕 구천의 고도를 둘러싼 수천리가 다 백제 땅이라 했음
만주원류고도 고구려 국경인 요하이서가 다 백제소유라고 함
구당서에 ‘당시 일본 전국이 백제의 속국이었던 것을 의심치 못하리라’는 표현이 있음
고구려 연대 삭감설
신수두시대 : 단군조선
삼조선 분립시대 : 중국의 전국시대에 해당
열국쟁웅시대 : 대 한족 격전시대
고구려가 조선족 맹주로서 한족과의 투쟁에 앞장섬
고구려와 한나라 사이의 9년 전쟁이 그 예
한무제가 위만조선의 무리를 정벌하기 전에
예맥조선(동부여)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으나
고구려가 9년간의 혈전으로 한나라를 패퇴시킴
한무제는 패전 후 9년 만에 창해군 폐지
따라서 동부여는 고구려 대무신왕에 의해 고구려의 속국이 됨
9년 전쟁은 동부여의 귀속문제로 인한 고구려와 한무제 와의 전쟁인데 고구려가 승리함
중국은 한무제가 고구려에 패한 것을 수치로 여겨 역사에 이를 기록하지 않음
한무제가 이미 BC 141년도에 17세의 나이로 즉위했음
그런데 고구려가 BC 37년에 건립되었다는 삼국사기의 주장은 맞지 않음
광개토대왕비는 시조 주몽의 17세손인 광개토대왕이 414년에 건립한 것으로 나타남
삼국사기는 광개토대왕이 주몽의 13세손인 것으로 기재함
북한에서는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3세기 경으로 보고있음
두 개의 낙랑설
1. 한군현 존재시기에 평양을 중심으로 한 낙랑군 지역에
최리를 왕으로 하는 낙랑국이 존재했는데
이를 한군현의 낙랑군과 구분하기 위해 남낙랑이라고 부름
2. 북낙랑 : 요동반도의 해성 개평 등지에 교설되었던 한사군의 낙랑
최리의 딸 낙랑공주와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의 사랑이야기가 여기서 나옴
단군→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고구려중심의 한국사를 강조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이는 김유신의 음모에 기인하다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폄하
그의 강한 주체의식을 엿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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