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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들/영혼까지 일터에(2008)

prologue

by 굼벵이(조용욱) 2017.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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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를 치다보면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에 어깨에 힘을 주고 공을 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여지없이 의도한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공이 나가 아웃되거나 잘못 맞아 오히려 속도가 죽어버리고 만다. 골프를 칠 때에도 마찬가지다. 공을 더 멀리 날아가게 할 욕심으로 힘을 주어 치다보면 어느새 고개가 움직이고 몸의 균형이 흔들리면서 공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레슨을 받다보면 테니스 코치든 골프 코치든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공을 밀듯이 치라고 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렇게 하면 공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고 따라서 힘들이지 않고 목표한 방향과 거리만큼 날려 보낼 수 있다. 더군다나 스포츠는 폼이라는데 거의 완벽한 자세의 폼까지 만들어 준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러운 삶만큼 완벽한 삶은 없다고 생각한다. 매사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면 절대 그릇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형태의 문제나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그 해법을 늘 자연에서 찾으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순리를 따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순리란 무엇일까? 나는 순리를 자연법칙이라고 정의한다. 자연법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물을 관찰하는 것일 것이다. 물은 스스로를 낮추면서 다투지 아니한다. 커다란 바위를 만나면 돌아서 가지만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결과적으로는 바위를 자갈이나 모래로 만들어 버린다. 굳이 노자의 上善若水 사상을 논하지 않더라도 물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흐르며 세상 만물을 소생하도록 하는지만 보아도 자연법칙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연법칙은 사람이 만든 법칙이 아니다. 사람보다 더 높은 차원의 위대한 자연이 만든 법칙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차원을 뛰어넘어 훨씬 더 위대하고 변함없는 일관성을 가진다. 사람은 이 자연법칙을 통해서 원칙이나 진리를 배운다.

원칙이나 진리는 검증된 가설을 말한다. 그런데 이 원칙이나 진리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그 줄기를 걷다 보면 대부분은 자연법칙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기에 자연법칙은 모든 원칙의 기준이 되는 원칙이다. 이러한 자연법칙이나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다보면 자기 안에 자연법칙이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새로운 생각들이 바로 ‘지혜’로 연결되어 ‘창의적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자연법칙이나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만 올바른 지혜를 얻어 풍요롭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올바른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들 중에 지혜로운 분들이 많은데 이 분들은 연륜을 거듭하면서 많은 지식을 축적해 왔고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많은 삶의 지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국가나 기업의 경영도 이와 마찬가지로 순리에 따라 지혜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나 기업의 경영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경영도 곤란한 것이다.

경영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사권이다. 그런데 국가나 기업의 수장이 바뀌면 흔히들 ‘인사가 만사’라고 하면서 사람을 갈아 치우고 각종 경영시스템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는 사람을 잘 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뜻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세상만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인사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사의 기본 이념이나 조직구성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인사권자 자신의 생각이나 편의대로 인사를 단행하면서 늘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가져다 붙인다.

인사 전문가는 왜 그리도 많은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면 모두들 자신이 최고의 인사 전문가 인양 자기 편의에 따라 인사를 해석하고 정의하려 한다. 입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제멋대로 한마디씩 할 수 있는 게 인사인 것 같다. 인사는 조직구성원 개개인의 성장과 직결되고 결국 이를 통해 조직의 흥망이 좌우되는 만큼 중요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인사를 너무 가볍게 보고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보면 반드시 잘못되는 게 인사다. 조직은 사람을 통해 일(人事)을 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데 사람을 가볍게 보게 되면 당연히 성과가 떨어지고 따라서 조직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나는 84년 2월에 처음 입사해 신입사원 시절과 초임과장 시절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22년째 인사업무에 종사해 오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기나긴 세월이 지겹지도 않느냐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지겨울 새가 없다. 끊임없이 일거리가 터져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사업무는 하면 할수록 할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번도 같은 업무를 되풀이 해본 적은 없다. 80년대 중반 철모르던 신입사원 시절에는 정말 무식하게 일했다. 새벽 두시 이전에는 퇴근해 본 적이 거의 드물었다. 요즘 같으면 컴퓨터가 알아서 할 일을 사람들이 손이나 머리로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절은 뭐니 뭐니 해도 2001년 회사를 분할 한 직후이다. 정부의 구조개편 방침에 따라 1만 6천여 명을 여섯 개 회사로 나누어 내보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침에 동의할 수 없다며 끝까지 안가겠다고 힘겹게 버티던 380여명의 사우들과의 6년여에 걸친 갈등은 참으로 처절했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청와대는 물론 감사원, 국가 인권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정부합동민원실, 노동위원회, 노동사무소, 법원, 심지어는 국회의원에게 까지 진정 또는 제소가 계속 이어졌고 나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매년 본사 로비에 집결하여 단식농성을 하면서 복귀를 위한 협상도 벌였다. 회사 분수대 앞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나를 ‘매국노’나 ‘오적’ 따위로 불렀고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지만 그들의 아픔은 나보다 더하다고 생각하고 가슴으로 안아 들였다. 인사담당자는 늘 그런 비애를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것은 일관성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지시 받은 대로 개나 말처럼 일 했는데 한 두 해 세월이 지나 조직의 수장이 바뀌면서 다른 잣대를 들이대며 너 왜 그런 일을 했느냐며 비난할 때는 정말 견디기 어렵다. 그러면 나는 나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해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나 스스로를 부정하며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메스를 가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만 했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 어려운 생활을 견디어낸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정체성이나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와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흔들림은 단순히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조직원 모두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나는 직원들이 이해관계가 바뀔 때마다 자조 섞인 목소리로 다음에 찾아올 ‘바뀜’을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경영서적을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뒤적여 보았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바로 ‘인간존중의 조직문화’이다.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만 만들어 놓으면 흔들림 없는 경영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문화는 ‘일관성’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는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흔들리지 않는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만 만들어 놓는다면 모두가 안심하고 회사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완성해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에 테니스를 치든 골프를 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런 동작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세상이 창조해 낸 가장 완벽한 조화로움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 그대로 자연스러움을 인간존중의 조직문화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서 즐겁고 신명나게 할 수 있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풍토는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지시나 통제위주의 방식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한 풍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구성원을 자연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통제되고 억압되어 무의식 세계 속에 매몰된 자신의 자아를 되살려 내고 조직 내에서 스스로를 완성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완벽한 자연스러움이다. 그런데 그것은 코칭을 통해서 쉽게 달성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조직문화는 리더가 90%이상을 좌우한다고 한다. 따라서 특정의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코칭과 리더십을 연결시키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코칭 리더십이다.

조직 구성원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찾아서 하고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도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중 MBO를 떠올렸다. 본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그걸 달성해 나가는 과정을 상사가 코칭을 통해 지원하고 완성시켜 준다면 그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사람부터 완성해 놓으면 일은 사람이 자동적으로 알아서 해결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코칭 리더십 기반 MBO다.

어떤 행태가 조직문화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관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코칭 리더십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코칭리더십을 정착시킬 수 없다. 그래서 만일 코칭 리더십과 MBO를 연결시켜 부하직원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 줌으로써 조직의 성과가 창출되도록 한다면 불변의 일관성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코칭 리더십 기반 MBO를 생각한 것이다.

인사 밥 20여년 먹으면서 수난도 많았지만 코칭 리더십 기반 MBO로 결론지은 지금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CEO와 관리자들이 나의 결론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 일에서 자신의 자아를 완성하면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가 내린 결론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직장은 물질적으로는 월급을 받는 곳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아를 완성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칭을 통해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우리의 영혼까지 묻어가면서 정신적 자아를 완성하여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론은 실무와 많이 다르다. 컨설턴트의 조언도 한계가 있다. 외국 기업의 우수사례도 문화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린 결론은 토종 한국인이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민간기업도 아닌 공기업에서 20여 년 간 인사 실무를 담당하면서 내린 것이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접목이 가능하다.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 대한민국이 이러한 인사시스템으로 또 한번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이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준 자랑스러운 나의 회사와 나와 함께 근무하며 고생하는 동료 친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만일 나의 회사와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빛을 볼 수가 없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