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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507 공기업 노조

by 굼벵이(조용욱) 202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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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5. 7()()

오늘 오전 열 시부터 임금교섭위원회가 있다.

이어서 점심식사 후 오후 두 시부터 노사협의회가 열릴 예정이다.

10시를 기하여 임금교섭위원회에 참석차 K처장님과 함께 709호로 내려갔다.

그동안 인건비 예산과 관련한 예비비 전용 문제를 놓고 노사 간에 심한 갈등이 있어 왔다.

덕분에 회의 시작부터 신경전이 벌어지며 노조가 회의 시간을 한 시간이나 미루는 바람에 11시부터 회의에 들어갔다.

K국장은 요즘 점점 교만이 심해져서 방자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고 벽두부터 OO직 인건비 인상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요구대로라면 OO직 인건비가 무려 40%나 인상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그는 오로지 OO직만이 이 회사의 주인이고 우대되어야 할 주체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 OO직 인건비 인상을 주장했다.

예비비 전용을 전제로 임금협상을 시도하였으나 정부가 예비비 전용을 통제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는 기획처의 의견 때문에 노조가 발끈 화가 났다.

초반부터 K는 서류뭉치를 집어던지며 신경질을 부렸다.

당초 K는 그러지 않았았다.

그는 상대방을 존중하며 경청할 줄 아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분할 이후 파업과 노조 집행부 교체 등으로 어수선한 시기를 겪으면서 사람이 달라졌다.

떼법의 맛을 보고 난 이후 체질이 바뀐 거다.

과거 회사에 업혀 살며 온순했던 노조가 대립각을 세우고 잘못된 투쟁을 벤치마킹하며 사리 분별을 잊고 오만방자해진 거다.

공기업 노조 입장에서는 결코 회사가 사용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어 회사는 독립적으로 직원 봉급을 1원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회사와 노조는 한 몸이 되어야 하고 사용자 측은 정부 주무 부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역할이 싫다면 정부 주무 부처는 공운법의 취지에 맞게 모든 권한을 사장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권한도 없는 사람이 사용자라고 앉아 있는 모습도 우습고 권한이 없는 사람에게 떼를 쓰는 노조도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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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처장이 혹 실수할까 봐서 잔뜩 긴장했었는데 노사협의회는 김처장이 의외로 잘 대응해 주었다.

큰 격돌 없이 스무스하게 회의가 진행되었다.

K처장은 내가 주문한 대로 잘 대응해 주어 큰 마찰이나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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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들은 그런 특별한 행사를 마치고 나면 술 한 잔 하고 싶어 한다.

노사협의회를 마치자 김처장은 술 한 잔 생각이 있었던지 내게 전화를 해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오늘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니 자기 차를 운전해서 같이 가자는 주문을 하였다.

마침 P씨와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얼른 모셔다드리고 올 생각으로 급하게 책상을 치우고 나갔더니 처장님이 막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게 술 한 잔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P랑 선약이 있다는 말을 했더니 그럼 오지 말라면서 특히 옥돌집으로 와서는 절대 안 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처장님도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안주로 삼는 P의 술버릇이 싫는 거다.

P와 만나 그가 인도하는 음식점에 가서 차돌배기 안주에 소주를 2병 마시고 맥주집으로 가 맥주를 대여섯 병은 족히 마신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어있었다.

(이 양반도 술을 엄청 좋아하고 대화를 독점하며 술밑이 질긴 사람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싫어진다.

특히 술마시며 나누는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 싫다.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고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하는 게 싫어지는 시기는 대략 50세 전후로 추정된다.

술 때문에 일찍 죽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잘못된 술습관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말못하고 통증도 뇌에 전달하지 못하는 내장이 주인 잘못 만나 소리 없이 죽어가는 것이다.

K처장님도 그렇게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