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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여행기

농업기술센터 베트남 다낭 연수기3(221108)

by 굼벵이(조용욱)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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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8(화)
식사 후 7시 반까지 집결해야 하는데 작취(昨醉)로 늦게 일어난 데에다 숙취가 심해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어 체크아웃했다.
나는 독주를 잘 못 마시는 데 전날 마신 베트남 전통주와 보드카가 지나치게 도수가 높은 독주들이어서 밤새 간을 심하게 괴롭힌 듯하다.
먼저 버섯농장에 들렀다가 과수원을 다녀왔는데 나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과수원 견학은 생략했다.
지난번 시설재배지를 다녀올 때 다리 통증으로 너무 힘들었던 경험도 있고 해서 과수원은 견학을 생략했다.
점심은 다낭으로 돌아와 나름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쌀국수집에서 먹었는데 영 입맛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가이더가 음료수 주문을 받기에 콜라를 신청해 거기에 작은 패트병에 담아간 양주를 조금 타서 마시니 기운이 좀 살아난다.
해변가에 위치한 카페에 가서 연유 커피 한잔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평소에 단 음료수를 잘 마시지 않는데 특별한 나라의 특별한 음료여서 폼 나게 들고 나가 해변에서 마셨다.
해변가 허름한 카페를 운영해볼까 해 주인을 찾아 얼마냐고 물었다가 깎아서 21억을 요구하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는 가이더의 이야기가 머잖아 닥칠 베트남의 경제상황을 예측 가능케 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공산주의는 그렇게 조금씩 퇴색해간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자유를 전제로 하고 필연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곧이어 바나산 프렌치 빌리지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10분 정도 올라가 산봉우리에서 전설의 거인을 만나고 케이블카를 트랜스퍼 해서 5분 정도 더 올라가면 정상에 위치한 프렌치 빌리지를 만날 수 있다.
프렌치 빌리지는 해발 1475미터 바나산 정상에 잘 꾸며놓은 유럽풍 마을이다.
프랑스 식민치하였던 1920년대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케이블카가 없던 그 시절에 그걸 누가 어떻게 조성했고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하러 다녀갔는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 사람들 휴양지였다는데 거길 오르내리는 게 쉽지 않아 아마도 당시에 애꿎은 식민통치 하의 현지인들만 짐은 물론 사람까지 나르느라 죽을 똥을 싸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더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 높이면 기후가 괜찮아 휴양지로선 안성맞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종교시설은 물론 놀이기구까지 너무 잘 꾸며져 있어 여유 있는 백수들은 거기서 숙박하며 며칠간 먹고 마시며 놀아도 괜찮을 듯하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마사지 샵으로 갔다.
모두 생각과 느낌이 다르겠지만 어린 가이더가 마사지를 받을 땐 솔직해지라는 말이 가장 솔깃하게 뇌리에 남았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어떤 이는 코를 골며 잠을 자는데 나는 끝날 때까지 초긴장 상태가 계속되었다.
협착으로 불편한 허리에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조그맣고 어린 꼬맹이가 내 손 절반 만한 손으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바로 코 앞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잡아당기고 문질러대는 노력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그런데도 특수부위에 대한 자극이 마사지 내내 생리현상을 일으켜 창피스럽고 불편했었는데 가이더가 한 말에 용기를 내어 그냥 솔직하게 몸을 맡겼더니 불편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마사지가 끝나고 팁을 주는데 도저히 사전협정 요금만 줄 수 없었다.
한국 식당에서 별로 한 일도 없는 종업원에게 똥기마이를 팍팍 쓰기도 하는데 온 힘으로 최선을 다해 나를 즐겁게 해 준 이 꼬마에게 협정 팁만 달랑 디밀기엔 내가 너무 초라해 거기다가 내 마음을 조금 더했다.
혹 나만 조금 더 준 게 들통날까 싶어 가뜩이나 조마조마한데 총동 총무님이 팁으로 얼마를 주었냐고 묻는다.
나는 그럴 때 얼굴이 빨개지며 거짓말을 잘 못 한다.
그래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주었다고 했다.
저녁 식사는 실속 없이 허우대만 큰 대형 새우 찜집에 들렀는데 맛도 그렇고 정말 먹을 게 없었다.
얇게 썬 회가 나왔기에 그걸 와사비에 찍어 입 안에 넣었다가 그 자리에서 먹었던 것 모두 뱉어냈다.
질식해 죽는 줄 알았다.
평소에 매운 와사비 잘 먹는데 이 와사비가 우리네 와사비 와는 비교가 안 된다.
혀끝에 닫는 순간 식도가 쫄아 붙고 숨이 막혀 숨을 들이쉴 수가 없다.
눈물을 흘리며 잠시간 죽을똥 살똥 캑캑대다 보면 어느새 조용히 가라앉는다.
한 살만 더 늙었어도 난 아마 그거 먹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과민성대장증상도 나타나고 이런저런 이유로 빨리 들어가 쉬었으면 했는데 또 무슨 자기소개에 노래까지 이어져 많이 불편했지만 마지막까지 함께 춤추며 최선을 다해 자리를 지켰다.
미순씨가 내 옆에서 자신을 백수라고 소개하기에 나는 좀 더 품위 있게 나를 ‘하얀 손’(白手) 이라고 소개했다.
내 말을 알아 듣는이도 없고 모르면서 알아보려는 이도 없는 듯하다.
무슨 말을 하건 모두들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생각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한다.
노파심이란 말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의 범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앞으로 매월 세달시 오찬 세미나를 이어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하는 이든 듣는 이든 조금은 생각의 범주를 확장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