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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여행기

농업기술센터 베트남 다낭 연수기1(221106)

by 굼벵이(조용욱)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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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6(일)
6시 15분까지 농업기술센터로 나와 공항가는 관광버스를 타라고 해 아침이 조금 분주했다.
깜깜한 이른 새벽이라 서리가 자동차 앞 유리창을 덮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운전이 조금 불편했다.
시골에서 해외여행 하기가 많이 불편할거라 생각했는데 버스를 대절해 공항까지 오가니 서울보다 훨씬 편하다.
하지만 11시 1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6시까지 집결시킨건 조금 심한 듯하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공항에 도착했으니 탑승시간 까지 주체를 못할 만큼 시간이 남았다.
나는 면세점 따위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을 귀찮아 해서 줄곧 탑승구 앞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핸드폰과 시간을 보냈다.
11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5시간 가까이 비행했지만 베트남은 시간이 우리보다 두 시간 정도 빨라 14시 10분 즈음 다낭에 도착했다.
기내 판매에서 71달러(한화 101000원)를 주고 발렌타인 17년산 한 병을 샀다.
그보다 싼 술이 없기에 어쩔수 없이 한 선택이다.
저녁에 잠이 안 올 때 콜라를 섞어 간단하게 한 잔 하고 자면 훌륭한 수면제가 된다.
아울러 팩소주를 가져가는 불편도 덜 수 있다. 
공항에서 가이더를 만나 대기 중인 버스에 짐을 싣고 땀끼 시에 있는 멍탄호텔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망고 도시락을 먹었는데 시장기도 있었지만 모두에게 최초로 베트남을 알리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땀끼시로 가는 길은 논으로 이어진 끝없는 들판을 가로지른다.
길가는 드문드문 상가와 민가들이 이어지지만 그 너머는 모두 지평선이 보일만큼 너른 평야지대다.
끝없이 펼쳐지는 논 여기 저기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겨울이 없으니 2모작이나 3모작을 할만도 한데 여긴 1모작만 한단다.
우렁이 농법을 알아보기 위해 중간에 차에서 내렸다.
차도 옆 길가는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
어느 나라나 산업화 과정에서 겪는 부작용인 듯하다.
들판 한가운데로 들어가 최초의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우릴 보고 차를 타고 지나가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의아해했을 것 같다.
다낭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땀끼시에 위치한 멍탄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인구 16만 땀끼시 최고의 호텔이란다.
하지만 방문에 들어서자 곰팡내가 퀴퀴하다.
아마도 그동안 코로나로 방문객이 급감해 호텔운영이 쉽지 않았던 듯하다.
저녁식사는 현지식으로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새우튀김이나 유산슬, 양장피, 닭찜 따위와 형태가 비슷하지만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른 음식이 제공되었는데 아마도 베트남 전통요리에 프랑스 요리법이 조금 가미되지 않았나 싶다.
이곳 베트남의 가옥들은 대부분 앞은 좁고 뒤로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이더 설명에 의하면 프랑스 식민 치하에서 생긴 건축양식이기 때문이란다.
프랑스는 당시 건축물의 출입구 쪽 전면 사각형 면적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단다.
따라서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전면 면적을 적게하고 측면 길이를 길게하여 전체 건축면적을 넓혔단다.
그것도 어찌 보면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살기 편한 좋은 방법인 듯하다.
베트남에 도착해 처음하는 저녁식사 중에 자기소개를 시켰다.
농업대학 3개 과에다가 총동문회 임원들이 함께 섞여 누가 누군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알릴 수 있는 시간을 빨리 갖고 싶었던 듯하다.
배가 고프기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베트남 음식이어서 식사하기 바쁜 데에다 자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언어 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갑작스런 자기소개 주문에 지루하게 긴 인삿말을 이어가기도 하고 수줍게 제 이름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난 그냥 간단하게 ‘동백꽃’을 건배사로 제안하며 인사에 갈음했다.
건배사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배사다.
‘동무야, 백세까지 꽃처럼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주를 곁들이지 않으니 밥맛이 별로다.
가져간 팩소주는 아끼다가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으니 무조건 부지런히 나누는 게 상책이다.
식사후에 체험농업과 과원들 모두 우리 숙소인 509호로 모이게 해 가져온 음식을 함께 먹었다.
여행사 사장님이 족발을 가져와 과별로 한 팩씩 나누어 주었기에 그걸 안주 삼아 내가 사온 양주로 술잔을 나누었다.
저녁식사 할 때 가이더에게 부탁해 식당에서 캔콜라 세 개를 사 왔었다.
양주가 너무 독해 여자친구들에게 위스키콕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룸마다 과일박스도 하나씩 넣어주었기에 그것도 함께 안주 삼았다.
술 한잔씩 하면서 우리가 졸업을 하더라도 앞으로 의미 있는 만남을 계속 이어가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
덕분에 내가 제안한 ‘세달시’ 오찬 세미나 계획이 좀 더 구체화 되고 범위를 넓혀가는 듯하다.
난 이것만 제대로 성사시켜도 더이상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