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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여행기

농업기술센터 베트남 다낭 연수기2(221107)

by 굼벵이(조용욱)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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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7(월)
나이 들어 그런지 요즘은 잠이 별로 없다.
깊은 잠을 잘 못 자니 당연히 낮도 몽롱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모처럼 해외여행 길에 오르다 보니 긴장해 그런지 깊은 잠을 못자고 새벽 한 두 시에도 잠이 깨어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새벽 네 시 경 기상해 전날 하루의 일정을 네이버 메모에 기록했다.
평택시는 땀끼시와 상호 우호 교류 협약을 맺고 있다.
땀끼시는 인구 16만 정도의 조용하고 아담한 농업도시다.
어젯밤엔 샤워를 제대로 못했는데 온수 사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곳은 온수 버튼이 화장실 입구 안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고 그것을 켜야 온수가 나오도록 되어있다.
늦은 시간이어서 오늘 아침에야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고치게 했더니 그렇다는 것을 알려준다.
식당에서 만난 가이더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혹시 나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 내일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내를 해달라고 했다.
평생 태어나 타조고기를 처음 먹어봤다.
호텔 조식 아침 식사 부페식 조리통 안에 ostrich 가 있는 걸 확인하고 가져다가 먹으니 쫄깃한 게 소고기보다 맛나다.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권해 많은 사람들이 맛보게 하였다.
식사 후에 밖에 나갔더니 아직 7시도 되기 전인데 오토바이 부대가 줄을이어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모습이 정겹다.
이른 시간인 데에도 간혹 오토바이에 아이들을 태우고 등교하는 모습도 보인다.
길거리 사진도 몇 장 찍었다.
호텔 입구엔 ‘welcome to pyeongtaeg agricultural university’가 디지털 자막으로 계속 돌아가고 있다.
오늘의 첫 방문지는 땀끼시청이다.
먼저 부위원장이 인사말을 나눈 뒤 나가고 담당자가 땀끼시의 농정에 대하여 해설하는 방식을 취했다.
시청대 시청 차원의 기관 간 외교적 교류가 아닌 농업기술센터 차원의 방문형식을 취하다 보니 가져간 선물도 조금은 초라해 보였다.
주 생산품목이 쌀인 땀끼시에 슈퍼오닝 평택 쌀을 선물하는 것도 조금 이상해 보였다.
그 무거운 쌀을 들고 오느라 담당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평택을 알린다는 의미로 마련한 선물인지 모르지만 한 차원 더 높여 국가대 국가의 외교적 차원에서 한국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작으면서 의미있는 선물을 준비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모두들 좋은 질문들을 해 주었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조금 더 겸손하게 그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곧이어 시설채소 재배지를 다녀왔는데 걷는 거리가 너무 멀어 나는 조금 힘들었다.
이어지는 트라퀘 허브빌리지 채소마을은 아기자기하게 많은 종류의 채소들을 가꾸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농장 중간중간에 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거기엔 잉어들이 살고 있다.
살다 살다 상추잎을 먹고 사는 잉어는 처음 봤다.
이어서 호이안으로 이동해 일본 식민치하에 일본풍으로 멋지게 지어진 건축물에서 현지식을 파는 레스토랑 ‘송트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호이안은 서양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란다.
노략질로 경제활동을 이어가던 식민제국주의 시절에 우리를 포함해 힘없는 나라들이 나라를 잃고 국민들은 생명과 재산을 빼앗기며 비참하게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국민을 계몽해 오늘날의 한국과 베트남을 일군 측면도 없지 않다.
나아가 영원히 제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해 대규모로 투자했지만 패전 후 맨손으로 물러나면서 남은 건축물 따위는 문화유산이 되기도 하고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한 각종 투자자산은 그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모든 것들은 항상 그렇게 양면성을 지니기에 한쪽 면만 고집하고 다른 쪽을 배척해서도 안된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집만큼 잘 꾸며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으며 애환의 베트남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여행지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무조건 일제를 부정하고 부숴 없애버리려 하며 배척해 왔지만 그들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 받아들이고 승화하려는 모습이 숭고하고 아름다워 핸드폰 용량부족에도 불구하고 예쁜 풍경 사진을 마음껏 담았다.
식사 후에 우린 바구니배를 탔다.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에 6개월여 동안 쇠똥을 발라가며 만들었단다.
사공의 처절하게 외쳐대는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와 ‘아싸 가오리’에 이어지는 춤사위가 흥을 떠나 마음마저 아프게 한다.
눈물을 품은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우리의 혼혈아도 6.25를 기점으로 라이 따이한과 똑같은 눈물의 역사를 고스란히 써왔기 때문이다.
이어서 호이안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경했다.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만조 시 엄청난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나무로 지은 집이 떠내려가지 않고 수백년을 버티는 이유를 가이드가 설명해준다.
그건 그 나무 기둥이 흑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란다.
흑단 나무는 엄청 무겁고 단단해 침향처럼 물에 가라앉는다.
견지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친환경 낚시를 한다면서 흑단 나무를 낚시 추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흑단은 무겁고 단단하다.
호이안 신시가지에서 몇몇 학우들이 두리안을 맛보고 싶어 해 사전에 걷어놓은 약간의 회비로 사다가 길거리에서 조금씩 맛보았다.
은행 냄새보다 더 고약하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처럼 냄새나 색깔, 모양, 맛 따위를 이용한다.
이어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원래 5000원에 30분인데 우리 미순학우가 10분 추가해 40분에 어깨 마사지까지 해준다는 안내인과의 네고에 성공해 10명이 떼로 몰려가 함께 회비로 마사지를 받은 거다.
저녁 식사는 한식점에서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나는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셨다.
옥수수 냄새가 약간 나는 29.5도 짜리 베트남 전통주 넵모이를 마셨다.
하지만 우리과 학우들 중 어울려 술을 마실 수 있는 분이 흔치 않아 나와 양금석 학우만 주로 마셨다.
호텔로 돌아와 우리 방에서 이어지는 술자리를 가졌는데 우리과에 배분된 넵머이 전통주 한 병과 보드카 한 병을 둘이 몽땅 마셔버렸다.
독주에 약한 나는 결국 정신을 잃고 레코드판 튀듯 헛소리를 반복하다가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는 괴담의 진실을 다음날 아침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줌 안 싼 게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