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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6

20061126 꽝조사의 '동물원 가기' (굼벵이 향교/이포 조행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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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예외 없이 새벽 세시 경에 잠에서 깨었다.

먼 길 운전해 가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렘브람트 400주기를 기념하는 고급 포도주 두 잔에 소주 대여섯 잔까지 마시고 잠을 청했건만 괜한 선잠만 깔짝거렸을 뿐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봐야 소용이 없어 침대 위 스탠드를 켜고 알랭드 보통의 ‘동물원 가기’를 읽었다.

나는 그런 류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스르륵 잠이 온다.

별로 재미없는 글인데 왜 사람들은 그런 그의 글에 매료되는 걸까?

아마도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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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러한테 저녁을 먹자고 전화하는 행위에서도 이전의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 종의 짝짓기 의식의 일부일 뿐이다.

야마가 가을밤에 서로 이상한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하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기괴한 짓들이 기본적으로 단순한 동물적 욕구-먹이, 서식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생산 등을 향한 욕구-의 복잡한 표현일 뿐이라고 보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고

알랭드 보통은 동물원 가기의 마지막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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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낚시는 바로 이 먹이에 대한 동물적 욕구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먹이를 향한 동물적 사냥욕구가 없다면 사람도 멸종되었을지 모른다.

알랭드 보통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존재를 위한 내재적 욕구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견지는 먹이사냥을 위한 원시적 욕구를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이는 끝없는 대물사냥에 빠져있고, 또 다른 이는 피라미의 떨림을 추구한다.

아무리 고상함으로 포장하려 애써도 사냥이나 낚시나 모두 ‘먹이’라는 동물적 욕구에 그 기원을 둔다.

그는 아무리 복잡하게 포장한들 사랑마저도 결과적으로는 동물적 생산욕구일 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마도 그걸 깨달으라고 神이 꼭두새벽에 잠을 깨워 그 글을 읽게 만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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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계곡 선배님은 연초에 내게 견지를 가르쳐주실 때부터 연말 견지여행을 계획하셨었다.

전에 섬진강 가서 누치를 수 십 마리씩 잡았는데 이번 노조창립 기념일에는 섬진강에 가서 1박2일로 누치와 황어를 마음껏 타작 하자고 내게 여러 번 되뇌이셨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멍짜가 설장 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며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었다.

그런데 최근 여우섬, 향교여울, 이포대교 이야기가 떠돌면서 마음이 바뀌어 섬진강 대신 향교여울과 이포대교를 다녀오자고 하신다.

여우섬은 전에 한번 다녀오셨고 대물터로 널리 알려져 번잡하니 이번엔 피하자는데 나와 생각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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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경에 향교여울에 도착하여 줄을 흘렸다.

영 소식이 없다.

구름과 계곡 선배님이 간신히 멍짜 한 수를 걸으셨다.

나도 멍텅구리 낚시에서 적비 한 마리 낚았을 뿐 그걸로 끝이다.

날이 차가워 몸을 움츠리고 여울에 있었더니 온 몸이 뻐근하다.

나중에 합류한 향교여울 멍조사 제드도 꽝을 쳤다.

그래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셋이서 이포대교로 향했다.

아예 이포대교 근처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이포대교에서 누치타작을 하잔다.

추운 몸에 허겁지겁 먹은 라면이 탈이 났는지 세 사람 모두 속이 안 좋다.

누치라도 신나게 잡혀주었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구름과 계곡 선배님은 그 좋아하시는 소주 한잔 안 드시고 배를 쓰다듬으신다.

제드와 나는 그래도 오리 도리탕에 기본으로 소주 세병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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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 냄새나는 이불을 덮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하룻밤을 쪼그려 보냈다.

아침으로 된장찌개를 주문했더니 계란 후라이가 나왔다.

구름과 계곡 선배님은 대접을 가져다가 밥에 참기름과 간장 그리고 계란 후라이를 얹어 쓱쓱 비벼 맛나게 드신다.

어제 안 좋았던 속이 오늘 아침 누치 면회를 앞두고 괜찮아지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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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대교는 널찍한 강물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물도 맑고 깨끗해 보인다.

물고기만 나와 준다면 정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천혜의 견지터다.

제드는 그런저런 세 마리를 걸어냈다.

그중 두 마리가 멍짜다.

제드는 정말 실력도 있고 어복도 충만한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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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11월 25일 나는 짧은 견지사지만 견지 역사상 처음으로 꽝을 쳤다.

견지에 꽝은 없다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꽝조사의 비애를 맛보았다.

마지막까지 용을 써 보지만 입질 한번 없다.

기분이 영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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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계곡 선배님이 저녁에 약속이 있어 일찍 올라와야 했으므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3시에 서울로 향했다.

한 마리 낚아볼 생각으로 독촉전화를 받으면서도 물 속에서 나오지 않는 바람에 점심 끼니때를 놓쳐 결국 회사 앞에서 점심 겸 저녁으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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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물원에 가기’로 돌아와 보자.

꽝치고 허허거리는 조사가 있다면 그는 이미 조사가 아니다.

동물적 욕구를 덮고 태연한 척 복잡하게 포장을 하고 있거나 조사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실적으로 파고들어 규명하면 사실 세상이 삭막해진다.

삶은 사실을 사실대로 사는 것보다는 조금은 보태고 각색해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이 훨씬 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