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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6

20061118 견지와 자이가르닉 효과 (나는 여우섬에 왜갈까?)

by 굼벵이(조용욱)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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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이론 중에 ‘자이가르닉 효과’ 라는 말이 있다.

러시아 심리학자인 블루자 자이가르닉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인간은 완성된 과제보다는 미완의 끝내지 못한 과제, 사고, 아이디어를 더욱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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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여우섬에서 정말 엄청난 대물을 만났었다.

홀로 여울에 들어 계속 줄을 흘리다가 너무 길게 풀었나 싶어 다시 감아올리다가 잠시 줄 감기를 멈추었는데 그사이 대물이 덜커덕 물어서는 내빼기 시작하는데 100미터를 감은 줄이 다 풀리도록 쉼 없이 팅팅 거리며 풀려나갔다.

여우섬은 그 놈과 함께 뛰어갈 물가도 없는 茫茫大江이 이어진다.

놈을 제압해 볼 거라고 줄이 끊어지기 일보직전까지 목대 앞에 손을 받쳐 놈의 머리에 강력한 충격을 가했다.

그렇게 90미터쯤 풀려나갈 무렵 낚싯대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심한 충격에 삐그덕 거리며 설장 살을 박아놓은 중간대 목부분 가운데가 일자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대책 없이 10여 미터 줄을 풀다가 마지막엔 줄을 붙들고 마음속에서 ‘이제 그만’을 외쳐댔다.

하지만 놈은 나의 애절한 소원을 뒤로 한 채 유유히 목줄 부위를 끊고 사라져갔다.

1.5호 강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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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이면 입술에 피어싱한 그 괴물이 나를 부른다.

자이가르닉 효과가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얼굴도 못 본 채 견짓대를 말 그대로 아작 내놓고 유유히 사라져간 그놈이 기억나 주말이면 나를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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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회에서 연말 테니스대회를 개최하니 꼭 참석해 달라는 말과 함께 직장상사이신 회장님이 살기어린 엄포까지 놓았지만 나는 이미 잃어버린 괴물을 찾는 일에 눈이 뒤집힌 상태다.

그래서 결국 ‘이번 체육대회 행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묻는 직장동료에게 무언의 압력을 넣어 목계행을 결심하도록 했다.

그래도 명색이 체육대회인 만큼 다른 동료들은 인근 산에 산행을 다녀오게 하고 나는 여우섬 여울에서 견지낚시를 하다가 점심식사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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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청류님과 직장 동료분, 윤근짱, 누리미 그리고 신입회원 한 분까지 함께 모여 술잔을 나누며 같이 했다.

술잔을 나눈다고 모두 물에서 나오니 자연히 물은 조용이 흐른다.

우리가 찾기 전까지 조용한데 익숙해 있는 누치가 내가 걸어놓은 멍텅구리 낚시에 걸려들었다.

그동안 낚시를 다닌다고 했는데 정말 잡기나 한건지 50센티가 넘어가는 물고기가 있기나 한건지 일면 의심스런 마음을

(낚시꾼 중에는 구라가 심한 사람이 많다는 게 정설이다)

가지고 있던 나의 직장 동료들에게 현장에서 그간 내가 풀은 썰이 구라가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청류선배님 계측에 의하면 54센티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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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정말 재미없을 만큼 입질이 없다.

정성을 다해 시침질을 해대지만 마지막 철수할 때까지 무정하다 싶을 정도로 입질이 없다.

그 여울이 그렇다.

낚싯대만 꽂아두고 조용히 있으면 대물들이 슬쩍 나와 낚싯대가 부러지거나 바늘이 휘어질 정도로 앙탈을 부리지만 여러 사람이 여울에 들어가서 하면 잘 안나온다.

그래서 사실 물에 들어가 견지하기에는 재미 없는 여울이다.

그렇지만 나오면 대부분 50센티를 넘어가는 멍짜여서 멍짜에 굶주린 사람들은 한번쯤 눈독을 들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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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짧고 굵게 사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고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주도형이어서 나서기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사교형이어서 다른 이들과 이야기 하기를 즐긴다.

다른 이는 안정형이어서 홀로 마음 졸이며 살고, 또 다른 이는 신중형이어서 심사숙고하며 산다.

누구나 주어진 성품대로 살아가는데 주도형 입장에서는 정 반대 성격인 안정형이 정말 못마땅한 것이다.

신중형에게는 여기저기 오지랖 떨며 떠벌이고 다니는 사교형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을 ‘나쁘다’ 거나 ‘틀리다’ 로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성향과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백인백색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다.

그 다름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보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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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나 그 여울에 사는 물고기의 생태도 마찬가지다.

견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울을 읽고 여울에 사는 물고기를 읽고 각각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정말 모든 것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런 자연이 나는 너무너무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