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25(금)
7.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휴가를 다녀왔다.
8월 들어서면 사장이 새로 선임될 것이다.
지금껏 새로 온 사장들은 예외없이 무언가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회사에 새로운 혁신을 요구해 왔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팀은 호떡집에 불난 듯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 그 때 눈총 받으며 휴가 간다고 주접을 떠는 것보다 여유 있을 때 얼른 다녀오는 게 상책이란 생각으로 7월 중에 다녀오기로 하고 집사람과 의논했다.
집사람은 예상대로 자신의 일이 휴가에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에게 상대적으로 폐를 끼칠 수밖에 없는 휴가 따위는 그녀에게 차라리 짐이었다.
나의 휴가 제안에 그녀는 늘 그런 식의 답변을 해 왔었다.
그리고는 내가 언제나 일방적으로 일을 혼자서 처리한다며 그 책임을 내게 돌리곤 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안정형 스타일로 자신보다는 타인 중심이고 사고보다는 감정에 치우친다.
외향보다는 내향에 가깝고 직관보다는 감각에 의존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나랑 완전 정 반대의 스타일인 것이다.
그래서 잡음 없이 같이 살려면 그냥 모든 것을 참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수밖에 없다.
토요일 아침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경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라리 내가 휴가를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집사람은 공연스레 날은 그렇게 잡아가지고 경신이만 불편하게 했다고 투덜거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신이는 군에서 외박을 나와 제 동기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을 텐데 공연스레 외박일수만 하루 까먹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경신이와 통화를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를 물었을 때 그게 아님을 알게 됐다.
군 생활 중에 누군가가 면회를 온다고 하면 전날부터 기다려지고 군화와 휴가 복을 정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강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침을 떡국으로 든든하게 먹은 후 출발을 서둘렀다.
원래 휴가계획은 3박 4일간의 낚시여행을 제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사이버준이 바다낚시를 좋아해 그를 함께 데려갈 심산이었고 현암 김득수 선배도 함께 가서 오고 가는 길에 견지낚시를 제대로 해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현암 선배가 이를 수리하는 중이어서 곤란하다고 했고 사이버준은 하루 전날 전화로 월요일에 중요한 경매에 참여해야 하므로 안 된다는 통보를 해 왔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출발하게 된 것이다.
먼저 경신이 부대에서 경신이를 데리고 나와 부대 앞을 흐르는 작은 강에서 둘이 견지를 시작했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물이 수정처럼 맑았다.
낚시를 드리우니 피라미나 갈견이가 붙는 게 아니고 송어 새끼가 달라붙었다.
꺽지 한 마리와 송어 새끼 몇 마리를 낚다가 더 이상 낚시가 어려울 것 같아 낚시를 접고 속초생활연수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최경섭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횟감을 떠갈 횟집을 물어보았다.
송지호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횟집을 소개해 주어서 4만원 짜리 자연산 회를 떠가지고 숙소로 들어와 경신이랑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점심을 굶었는데도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술 한 잔 거나하게 한 후에 7시 10분 경에 노래방엘 갔다.
경신이에게 '너 세곡 부를 동안 나는 한곡만 부르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거나 번호판을 눌러서 나오는 대로 불렀다.
경신이는 자신을 위해 불렀는지 날 위해 불렀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란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는 늘 착한아이 되라며 말씀하셨지만 자기는 늘 걱정만 끼쳐드렸는데 이제야 깨닫게 되었으니 이제 자기와 함께 가자는 류의 의미를 담은 랩송이다.
녀석은 다른 노래는 음정이 많이 틀렸는데 그 노래만큼은 정말 정확하게 불러댔다.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이 흘렀다.
일부러 그 눈물을 닦아내려하지 않았다.
그 녀석도 흘끔 내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지금껏 들어본 노래 가운데 제일 잘 부른 노래라며 칭찬을 해 주었다.
다시 숙소로 올라와 저녁식사 겸 2차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가져간 김치에 햄을 한 캔 넣어서 찌개를 끓이고 라면까지 한 개 넣었다.
그걸 안주삼아 둘이 맛있게 저녁을 해결했다.
11시쯤 되었을까 나는 몹시 피곤해서 이제 그만 자야겠다고 방에 들어갔다.
경신이 녀석은 혼자 소주 몇 잔을 더 마신 모양이다.
새벽녘에 보니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자면서 계속 기침을 해 대고 있었다.
건너방에 이부자리를 깔아주고 녀석을 깨워 방에다 재운 뒤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은 연수원 식당에서 생태찌게를 먹었다.
속초 아바이 마을 앞에 있는 해변가로 나가 바다 루어낚시를 했다.
물고기도 없고 비가 부슬부슬 내려 오랜 시간동안 할 수가 없었다.
경신이가 루어를 던져보고 싶어 했다.
경신이에게 루어대를 주었다.
녀석이 좋아하며 던진다.
계속 더 하고 싶어 한다.
앞으로 녀석에게 가능성이 보인다.
점심은 수육 한 사라와 동치미 국수를 먹었다.
수육 고기를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국수를 더 먹을 수가 없었다.
경신이는 배부르다며 국수를 거의 먹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한 후 다시 송지호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횟집으로 가서 매운탕을 시켰다.
3만원짜리 우럭매운탕이 나왔는데 경신이가 아주 잘 먹었다.
둘이서 배불리 먹었다.
나오는 길에 2만원어치 회를 주문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 그냥 자기 무엇하니 그걸로 술안주나 하려는 심산이었다.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권춘택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권부장이 연문희 과장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연문희 과장이 전화를 해서는 동명항 쪽으로 나오란다.
그곳에는 속초 연수원 직원 PCW씨가 함께 나와 있었다.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랑 어울려 바닷가까지 들어가 술잔을 나누며 완전히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숙소 식탁 위에 캔맥주가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함께 숙소로 와서 술을 더 마신 모양이다.
그런데 통 기억이 없다.
창피한 마음에 얼른 짐을 싸서 막동이와 약속한 섬강 대관대교 방향으로 출발을 서둘렀다.
다행히 비는 완전히 그쳤다.
대관대교는 그 많은 비에도 물색깔이 파랗다.
루어 스푼을 던져보았지만 영 입질이 없다.
견지를 내렸는데 영 입질이 없다.
그사이 막동이가 도착했고 속초 횟집에서 사온 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난 초지일관 소맥을 즐겼다.
다시 물에 들어가 견지를 해 보지만 역시 소식이 없다.
때가 아닌가보다.
막동이가 텐트에서 같이 자잔다.
길가는 차들 소음으로 잠도 안 온다.
자다말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냥 일어나 버렸다.
자리도 비좁고 딱딱하며 습한 기운이 돌아 영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물고기는 여전히 입질이 없다.
일찌감치 백양리로 달렸다.
백양리는 그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물 색깔이 괜찮았다.
잘하면 대어를 낚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야전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마침 강으로 유입되는 실개천이 있어서 그 한 편에서 해결하고 시냇물로 뒷물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뒷물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거기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점심식사 후에 핸드폰의 행방을 몰라 찾다가 혹시 그 자리에 떨어뜨리지 않았나 싶어서 다시 찾아가 보니 핸드폰이 졸졸 흐르는 시냇가 자갈 위에 얹혀 시냇물이 살짝 살짝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막동이가 제일먼저 배터리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해서 배터리를 분리해 햇볕에 잘 말렸더니 작동에 지장이 없었다.
마자만 여러 수 하고는 견지휴가를 마치기로 하였다.
서울로 향하는 길이 극도의 피곤으로 졸음 길이다.
중간에 잠시 눈을 붙이고 집에 도착해 P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금요일에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인간적으로 부탁한다며 애걸을 했었다.
그가 자신의 입장이 어렵다며 내게 인간적으로 호소했을 때 내가 두 발 벗고 그를 도와주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애걸했다.
그는 화요일에 이야기 하자며 전화를 끊었었다.
협상은 해당 업무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
협상은 직급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사태는 모두가 처장과 전무가 자신들이 일을 해결하겠다며 직접 나섰다가 생겨난 일이다.
집요한 P의 편집에 물려 결국 두사람 모두 망신만 당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 간부 6직급 계열전환은 규정화 할 수 없는 사안인데 그걸 덜컥 해주겠다며 처장이 나섰고 전무도 이에 동의하고는 전무와 처장 그리고 P가 담판을 지은 결과여서 내가 무어라 이야기 할 수도 없다.
P는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내 마음을 이해했고 이를 위원장과 협의했던 모양이다.
결국 호칭 관련 사항은 그가 물러섰다.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어수룩한 잘못된 협상의 결과가 가져온 해프닝이다.
노조의 생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책임도 못 질 일을 저질러 놓고 뒷수습도 못하며 절절 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나중 이야기지만 전무는 내가 노조 의견서에 대한 검토의견서를 가져갔을 때 노조가 겁이 나서 사인도 못했다.
정말 한심한 일면을 보았다.
노조가 주장해도 들어줄 수 없는 사안을 노사협의회장에서 노조도 아닌 자신이 사장을 대리해 노사협의회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노사 합동 T/F를 만들어 인사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꾸로 주장하면서 이를 노사합의안으로 관철시켜놓고는 그 T/F를 왜 빨리 구성하지 않느냐며 나를 다그쳤었다.
정말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다
우문현답으로 가져가 우리가 노조 동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 중심으로 일회성에 그치는 회의체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윗사람들의 일이고 결정이니 내가 나설 수 없는 노릇이고 나를 무시한 처사이니 낸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다.
답답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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