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모두가 은총임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수녀님이 조카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여 네가 너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너를 위해 예수님이 오신거야.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네가 얼마나 귀중한 사람인지 알려주려고.
혹여 네가 앞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느낀다면 혹시 네가 이런 게 사랑받는 거로구나 하고 느낀다면
그건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했으면 하는거야.
결국 삶의 어디에든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라는 거죠.
저는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기적에 의지해 살아갈 뿐입니다. (칼 라너)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중략)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는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삶의 모든 것은 기적 즉 은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서
위악 떨지 말고 위선으로라도 착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는 공지영씨 자신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기준을 세우고 살면 사람 마다 기준을 달리 할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죠.
그렇게 살면 피곤해요. 조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아는 건 아무 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선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내 작은 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아는 척 하는 겁니다.
아는 척하지 말고 온 몸으로 깨달아서 실천하는 삶이 중요하다는거죠.
내가 신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하나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뜻대로라고 희망했던 것은 모두 다 들어주셨다. (이태리 토리노 무명용사의 비)
나는 이기적입니다.
신은 이타적이구요.
그래서 세상은 은총으로 가득하다는거죠.
그와 나와의 만남은 언제나 마지막 만남이었다.
사형이 언제 집행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일을 모르는 우리의 만남도 사실은 마지막 만남일 수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하게 소망하고 치열하게 살아야겠어요.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알베르 까뮈. 단두대에 대한 성찰)
사형제도는 반면교사가 목적인듯 하지만 본질은 나쁜 짓에 대한 복수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문명사회에서는 이를 폐지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복수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차원 낮은 동물적 본능일 뿐입니다.
그거 하지 말라고 이땅에 예수님, 부처님 따위의 현인을 보내신 것 아닐까요?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관계가 생겨나고,
관계가 생겨야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공감 없인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문든 단풍은 사실 나무로서는 일종의 죽음인데 사람들은 그걸 아름답다고 구경하러 가는구나 싶었어요. 저도 생각했죠.
이왕 죽을 바엔 단풍처럼 아름답게 죽자고.
사람들이 보고 참 아름답다 감탄하게 하자고.
단풍처럼, 나비처럼 아름답게 죽고싶은 게 우리들 소망입니다.
하지만 단풍이 아름다운 건 그 안에 채워진 모든 걸 비웠기 때문이지요.
아름답게 죽고싶다는 소망마져 버리면 가장 아름답게 죽을 것 같습니다.
신비롭게도 사람들이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 데 또 일생이 걸린다. (세네카)
목숨 붙어 있는 순간까지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니 일생이 걸릴 수 밖에요.
어쩌면 그 욕망이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죽기 전엔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게 욕망의 끈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극에 이르면 결국 같은 것을 느낀다. 그것은 무감각이다.
살인도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 무감각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연쇄살인범도 생기는 것 아닐까요?
결국, 저의 생 모두가 은총이었음을 가르쳐주신 분들이었습니다.
결국 이 책의 주제는 은총이었습니다.
살인자가 사형을 당하는 순간 자신이 그렇게 증오했던 과거들이
사실은 모두 신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꺠닫게 된 것이지요.
돌아보면 제 삶도 모두 기적이고 은총이었습니다.
오늘 조용히 또 하나의 기적을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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