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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429 승진턱

by 굼벵이(조용욱) 202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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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4. 29()

오전 열 시쯤 되었을까 처장님이 급하게 내 자리로 오시더니 인력관리처 개혁과제 제출에 대하여 전무님께 빨리 보고드리라고 한다.

Y는 개혁과제라는 이름으로 승진제도를 자신의 승진에 유리하도록 바꾸라고 KM과장에게 오더를 내려 이미 자신의 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나는 그동안 그 보고서를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처장님이 전무님께 가서 얼른 보고하라고 족치시는 거다.

아마도 처장님은 그동안 그 업무를 내가 전담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선 급하게 KM이 만든 보고서를 들고 전무님에게 가 사실관계를 말씀드린 후 전무님과 협의하여 큰 방향을 정한 뒤 Y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든 내용 일체를 빼고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사항 몇 가지를 내 방식대로 직접 수정하여 전무님께 가져다 드렸다.

모르긴 해도 Y가 엄청 기분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또한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걸 잘안다.

표나지 않게 천천히 변화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 

 

오전이 그렇게 바쁘게 지나가고 나서 오후에는 L를 데리고 송탄으로 향했다.

어차피 승진 턱도 내야 하기에 이번 체육행사는 시골 우리집에서 일박하며 내가 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내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OOOO팀 직원들이 모두 오늘 저녁에 우리집에 모여 돼지 바비큐 파티를 한 후 내일 안면도 꽃 박람회를 가기로 했다.

때마침 봄비가 무슨 장맛비처럼 내린다.

우선 아파트에 들러 오늘의 행사를 위하여 와이프가 준비한 갖가지 식자재를 차에 싣고 송탄 상훈 형네 돼지 농장으로 향했다.

형네 집에는 형 혼자 계셨다.

형이 기른 돼지를 잡아달라고 부탁해놓았다는 집으로 형과 함께 갔다.

꼬불꼬불한 마을 길을 돌아 그 집에 당도하여 잡아놓은 돼지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고깃덩어리가 캐리어에 엄청나게 쌓여있는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형이 비닐 보자기를 내 차 좌석 위에 올려놓은 후 고기를 싣고 핏물이 흐르지 않도록 꼼꼼하게 여미어 주었다.

그걸 싣고 집으로 돌아와 큰 덩어리를 작은 도막으로 자르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보쌈 거리를 잘라 서울집에서 가져온 양념을 넣어 삶기 시작했다.

바비큐용 고기는 L가 거들어 주어 조금 수월했다.

내일 서울 올라갈 때 직원들에게 두서너근씩 들려 보내기 위해 고기를 도막도막 잘라 비닐봉투에 넣어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

준비한 숯 탄이 부족해 안중에 나가 숯 탄을 더 사왔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났을 무렵 서울에서 직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성용 집에서 빌려온 바비큐 통에 숯을 넣고 불을 붙인 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직접 바비큐를 해먹은 경험들이 많지 않아 직원들이 신기해하며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바비큐 통 앞에서 소주에 고기를 꽤 많이 먹었다.

보쌈을 차려놓은 상은 음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나의 선창으로 이어진 노래가 돌고 나자 화투를 치겠다며 모두 일어섰다.

일사불란하게 술상을 정리하고 어느새 화투판을 열었다.

나는 방마다 요와 이불을 깔아주고는 술이 가져다준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