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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8

20080708 어떤 상황이든 아우슈비츠보다 어렵겠는가

by 굼벵이(조용욱)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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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7.8()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은 아산병원에서 살았다.

형수님에게 혼수상태가 나타나자 이젠 더 이상 병세를 감출 수 없고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형이 시골 어머님도 오시라고 했고 모든 형제자매들을 불렀다.

토요일은 거기서 밤을 새웠다.

형수는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환자지만 정말 예쁘고 곱게 단장을 했다.

형수님 집안의 형제들과 일가친척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모두들 막내동생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울었다.

형도 때때로 수없이 운다.

혜신이와 현신이가 엉엉 운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너무 지나쳐 잠이 쏟아진다.

누나와 형 그리고 집사람이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에어컨 공기가 나오는 창가에 앉아 졸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 때문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에 집에 돌아와 잠시 잠을 자고 영화 한 편을 본 후 다시 병원엘 갔다.

자동차 파킹비용이 아까워 김성윤 부장이 살고 있는 현대아파트에 차를 파킹하였다.

일요일에는 형수가 많이 좋아졌다.

성당에 가서 미사도 보고 왔다.

너무 오래 병원에 있다보면 내 몸도 많이 상할 것 같아 저녁 11시 반에 일어섰다.

배가 고파 들어오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가지고와 차 안에서 집사람과 함께 먹으면서 왔다.

 

월요일은 B원장을 만나는 날이다.

광양불고기에서 술과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춤추며 노래했다.

KKS이사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불렀다.

KKS가 블루스를 돌리는데 아무도 그녀의 스텝을 제대로 쫓아가 주질 못했다.

나는 아주 먼 옛날 총각시절에 사촌동생 용란이 친구 박현숙에게서 '그냥 자연스레 몸을 맡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냥 K이사에게 몸을 맡겼더니 그중 내가 제일 낫다며 칭찬을 했다.

처장도 B원장도 K이사도 모두 좋아하는 것 같았다.

B원장에게는 딱히 선물해 줄만한 것이 없어서 현금 50만원이 든 봉투를 몰래 가방에 넣어주었다.

 

노조 P처장과 인사관리규정 개정 관련 협의를 했다.

노무처 P부장이 정부 지시에 따른 연봉제 도입에 급급해 이와 관련된 인사관리 규정은 생각지 못하고 연봉규정만 개정해 놓는 바람에 나만 생고생하게 생겼다.

기능직과 별정직 모두에 대리와 주임 호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떼를 쓰는 바람에 실랑이를 벌이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본부 위원장과 처장이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내가 그 모든 것에 홀로 총대를 메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것 보다는 차라리 윗선에서 해결하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P는 언제나처럼 내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 버럭 화를 내며 큰소리를 질러댔다.

그와의 대화스타일을 바꾸기로 했다.

차라리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접근하는 게 나을 듯했기 때문이다.

내가 편집증 환자를 대하는 전문 상담가이거나 의사인 입장에서 대화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게 나를 위해서나 그를 위해서나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다.

그런 협상의 결과를 처장에게 보고했더니 전무에게 보고하란다.

전무에게 갔더니 전무는 내게 섭섭한 말을 했다.

너무 오래 한곳에서만 근무해서 생각이 고루하다는 노조의 주장을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곳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나의 반박에 전무가 움칠하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인사처장 시절 주장했던 내용을 뒤집고 관리전무 입장에서 노조의 편에 다가서는 그를 보며 과거 순수했던 주장들이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위가 올라가면 본연의 자기 생각을 접고 세속의 룰을 따라 그렇게 살아간다.

경영자의 기본 임무는 일 잘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 생산성을 높히는 것인데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겪은 바로는 대부분 그렇게 바뀐다.

실무자에서 임기제 경영진으로 바뀌는 순간 생각도 바뀐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일 잘하는 건 그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술 잘 사고 밥 잘 사며 골프도 같이 치면서 자신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최고로 친다.

J전무도 처장시절엔 나를 최고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조로부터 나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수없이 들어왔어도 뚝심있게 굳건히 나를 옹호해 주었었다.

오늘은 이제 더 이상 날 보호해 줄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 하신다.

아니 오히려 노동조합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을 보인다.

아니 노동조합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노사협의회 장에서 당신 생각대로 즉석에서 인사제도 개선 T/F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하고 이를 통과시키기까지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철저하게 무장해제 당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내가 주장하는 모든 이야기는 자신들의 생각과 다를 경우 오랜 인사처 생활을 통해서 굳혀진 고루한 의견일 뿐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의 자존심을 신선의 경지에 까지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마음을 수양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이런 모든 상황은 일종의 훈련도구인 셈이다.

이런 모든 오해들은 내 마음 수련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인사처장으로 모셨고 인사처장 시절에는 내가 최고라고 여기며 내게 모든 걸 의존해 왔던 J전무에게 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전무가 정말 날 그렇게 생각하며 그런 소리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에 나오는 주인공 처럼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사이코드라마에 휘말려 든 것이다.

편집증 환자의 사이코 게임에 놀아나면서 7년을 버티어 왔는데 이제는 지난날을 잊은 채 개 삶듯 토사구팽하려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가 그렇게 마음을 바꾼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노사협의회 의장 자격으로 자신이 직접 제안하여 인사제도 개선 T/F를 구성하라고 했는데 내가 그것을 뭉그적거리고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그런 나를 한번쯤 혼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도 생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내가 노조랑 대립적 관계를 내세우면서 혼자만 힘들어할 이유가 없다.

김병옥과장을 불러놓고 차라리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가 햇볕정책을 통해서 그들을 싸안는 작전으로 가자는 지시를 했다.

어차피 내 돈 들어가는 일도, 내가 망하는 일도 아니다.

한신이 어금니 물고 불량배 바짓가랑이 지나가듯, 대원군이 상가 집 개처럼 살아가듯 그렇게 생활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해 보자는 주문을 했다.

어떤 상황이든 아우슈비츠보다 어렵겠는가!

때에 따라서는 인생의 장을 아우슈비츠처럼 생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패러다임을 그렇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지금 내 환경이 바로 아우슈비츠다.

내가 어디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인가!

먼 훗날 길고도 긴 사이코 드라마를 책으로 펴낼 날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