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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2

20021124 인사제도와 나의 운명

by 굼벵이(조용욱) 202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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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1. 24() : 인사제도의 운명과 나

 

오늘은 처장님도 전무님도 출근을 안 하는 토요일이다.

그동안 나를 짓눌러 왔던 안건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에 밀린 영어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일주일간 밀린 영어 인터넷 수업을 한꺼번에 처리하던 중 Y는 내게 서류검토를 의뢰했다.

그의 지시로 K과장이 작성한 기획관리처의 직급체계 개편 및 직급대우제 도입방안에 대한 반대의견이다.

그 검토서는 내 눈에 그냥 쓰레기처럼 보였다.

거의 전부를 뜯어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점심은 Y가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러 갔으므로 모처럼 사철집에 가서 보신탕을 한 그릇씩 하였다.(Y, L, S, 나 : 독실한 불교신도와 개고기는 상극이어서 그와는 보신탕을 먹을 수 없다)

식사 후 Y가 쉬고 있는 사이 나는 열심히 스티커를 붙여가며 검토서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정리하고 스티커 부착이 어려운 곳은 그냥 직접 연필로 수정하여 그에게 가져갔다.

그러나 그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난 그냥 내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하라고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처장님이 사장님 방에 들어가 결재를 받는 도중 발생 가능한 돌발질문에 대비한 대안들을 정리하여 다시 그에게 보고하였다.

그는 본보고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문서였기에 조금은 수동적인 태도로 보고를 받았다.

Y는 내가 그의 의견에 맹종하며 고분고분하지 않자 그동안 자기 멋대로 김맹렬 과장을 통하여 인사제도를 자신의 생각대로 바꾸어왔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은 아픔을 느꼈다.

그는 정치권이 바뀌고 자기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이를 이용하며 자기의 야망을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인사제도를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얄팍한 지식과 무모한 용기로 무너뜨리는 인사제도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나는 그걸 지키기 위하여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내가 부장이 되는 순간 나는 곧바로 독립선언을 할 것이다.

하나의 제도팀을 구성하여 나만이라도 제도를 고수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Y를 집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