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11. 22(금) : 나의 히어로우 H처장
이번 노사협의회의 hero는 H처장이다.
그는 44건에 달하는 노조의 단협 요구사항과 아울러 12건의 노사협의회 안건에 대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철저히 준비를 하였고 노동조합은 그의 완벽한 준비와 달변에 거의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한걱정 늘어진 나에게 그는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가장 쟁점이 되는 초간고시 관련사항과 기능직, 별정직 관련사항에 대하여 자기가 직접 검토서를 작성하여 나로 하여금 타이핑을 하도록 하였는데 그의 검토내용을 보니 자칭 타칭 인사 전문가인 내가 생각하는 차원의 영역을 넘어 신선한 각도에서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단협이든 노사협의회든 사실 역대 인사처장 가운데 이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하고 답변에 임하는 사람이 없었다.
인사통 이라고 일컬어지는 S본부장님도 인사처장 재직시 이 정도 까지 준비하시지는 못했다.
나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덤벼드는 P국장에게 H처장은 조목조목 따져가며 왜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지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노조를 설득하는 그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내 속이 무척 후련했다.
P국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수세에 몰리자 내가 예견한대로
“조과장은 그동안 뭐했어요,
물론 바쁜 거 알지만 10월까지 시안을 마련한다고 해 놓고선 그렇게 약속을 저버려도 되는 거요?
사기치고 있는 거 아니오!” 하면서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마침 중간 정회가 선포되었다.
H처장은 그에게 다가가 진정하라고 이야기하며 그를 달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H처장의 그런 태도와 대응에 나는 정말 감동받았다.
인사처장은 이정도 완벽한 인물들이 아니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노사관계에서 노조에 밀리면서 퇴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결국 회사는 기아자동차 회사가 망해가듯 망해갈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기아자동차도 이어지는 노조의 인사제도 개악요구에 회사가 점점 밀리면서 붕괴의 과정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H처장은 노조의 잘못된 요구에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 노사협의회까지 시안을 마련하자는 노조의 두루뭉술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전법에도 단호히 맞서 그는 더 이상 대안이 나올 것이 없다며 당당히 맞서 나갔다.
결국 그가 나의 짐을 덜어준 것이다.
노조에서 또다시 요구한다면 차기에 재논의하기로 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날 나는 OO만원을 인출하여 Y에게 전달하였다.
해외출장비 중 경비를 제한 정산금이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바를 철저히 차단하면서 쟁취한 꾀죄죄한 돈이다.
평생에 기회가 없으므로 모처럼 나온 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며 즐기자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오만 궁상을 다 떨며 거지처럼 보낸 미국출장의 결과물이다.
그는 그 돈을 손에 쥐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걸로 밥을 산다며 순대국집에 가자고 하였다.
이어지는 궁상이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다.
순대국 집에서 그는 술안주로 수육 반접시를 시켰고 L과장, K과장 그리고 나 포함 넷이서 4000원짜리 순대국을 한 그릇씩 먹었다.
나는 밥 먹는 자리에서 그가 시카고에서 30불짜리 ribeye steak 를 사주어 아주 잘 먹었다고 자랑까지 해 주었다.
그는 속으로 무척 흐뭇했는지 아니면 뜨끔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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