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2002. 10. 13)
딱히 할 일이 없는 Y부장은 해외여행에 들떠 있었다.
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그는 출발 전부터도 근무시간 중에 해외여행에 관하여 골몰히 생각하다가 계속 바쁜 사람 붙잡아 놓고 이것은 준비되었느냐, 저것은 챙겼느냐 하면서 온갖 주문이 이어졌었다.
직급이 깡패인 데에다 모두들 최근에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없었던 터라 그의 주문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11시 30분이므로 두 시간 전에는 공항까지 가야한다며 07:30분까지 도심 공항 터미널에 나오라는 그의 주장에 O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번 여행을 기획 준비 안내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고분고분 따랐다.
아내가 차를 몰고 공항까지 나오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꼭두새벽에 나 한 사람만 고생하면 되는데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여러 사람 고생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 아내의 제안에 따라 그냥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택시를 잡아타고 조금 가다 보니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도심 공항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07:05분 이었다.
이어서 07:10분 쯤에 Y가, 07:15분 쯤에 O가 연이어 5분 간격으로 도착하였다.
Y와 O는 엄청나게 큰 여행 가방을 가져왔는데 내가 보기에 참으로 촌스러웠다.
공항 터미널에서 모든 수속을 마치기로 하고 ticketing 절차와 더불어 수하물을 부쳤다.
인천까지 리무진을 타고 갔는데 1인당 요금이 11,000원이다.
인천 공항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처음 가보는 인천공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공항으로 모든 면에서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규모도 크지만 건축물 디자인이나 조경이 무척 잘 되어있고 그날따라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즐비하게 늘어선 면세점의 화려함이 더한층 돋보이는 것 같았다.
출국수속 시 출국세를 별도로 내어야 한다는 말에 따라 1인당 1만원씩 출국세를 카드로 지불하고 들어가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우선 서점에 들러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을 두 권 샀다.(“참으로 마음이 편안해 지는 책”, “관심”)
더 이상 살만한 것도 없고 살 생각도 없었으나 O가 화장품 코너에 들러 몇 가지 화장품을 사자 나도 덩달아 와이프에게 줄 아이크림(30$)과 facial cream(50$)을 충동구매 했다.
여자같이 생긴 역겨운 총각 녀석이 세트로 구매해야 한다며 50불 더 쓰라고 했지만 거부했다.
암튼 해외여행에서 가장 피곤하고 괴로운 것은 선물을 사는 것이다.
Y는 처음부터 보석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보석상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 보다 두 시간 반 이상을 먼저 도착하였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지루하였다.
배가 조금 고파 왔으므로 O와 함께 김밥을 한 줄 사서 나누어 먹었다.
오랜만의 국제선 비행기 탑승은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나는 Y와 떨어져서 Ticketing을 하다 보니 자리도 서로 떨어져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하고 많은 날 붙어사는데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그와 같이 붙어 그의 수발을 드는 것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O와 Y가 함께 창 측에 앉았다.
예측한 대로 대한항공 여객기에는 한국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제복을 입은 어떤 구세군 아주머니가 일군의 무리를 동반하고 나타나 진두지휘 하더니 그녀의 좌석이 내 옆자리임을 확인하고 앉았다가는 다시 일어나 계속 두리번거리며 무리의 행방을 살피며 무리를 지휘하곤 했다.
길고도 지루한 비행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기내식은 처음 소고기와 비빔밥이 나왔는데 바로 내 앞에서 비빔밥이 고갈되는 바람에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소고기를 먹어야 했다.
그런 내게 stewardess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면서 다음번에는 제일 먼저 배식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사실 나는 둘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소고기를 선택할 마음이었다.
시간의 벽을 넘어 빛으로 빛으로만 12시간여를 달리더니 마침내 말로만 듣던 시카고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여 영어로 써진 글들을 보니 정말로 미국에 도착한 실감이 났다.
요즈음 저격 살인범(sniper)과 비행기 테러 때문에 미국 내에서 검문검색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조금 겁이 났지만 입국 심사는 매우 간단했다.
백인 심사관의 “How long do you stay?" 하는 질문에 ”For two weeks"라는 나의 답변이 입국심사의 전부였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바로 luggage claim으로 가 짐을 찾아 바로 Houston 행 domestic 비행기로 transfer 했다. 수하물은 공항측에서 자체 transfer가 가능하지만 사람은 모노레일을 타고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하여야 했다.
국내선을 타기 위한 보안검사(security check)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구두를 벗긴 후 여기저기 살펴보고 가방을 완전히 개봉하여 보기 흉한 상태까지 파헤쳤으며 마치 Circumcision 후 고추가 아파 어기적거리는 이상한 걸음걸이 형태로 걸음마를 시키기까지 하였다.
사실 집에서 가지고 간 식용 참숯이 조금 걱정 되었지만 심사관은 나에게 그걸 열어보게 하거나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
항공권을 Boarding Pass로 교환한 후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으므로 전형적인 미국의 상징 McDonalds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하였다.
Y는 별로 생각이 없다며 콜라만 마시겠다고 했다.
나는 O의 제안에 따라 double cheese burger를 사서 한 개씩 나누어 먹었다.
현지시각을 맞추기 위하여 처음으로 미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그는 그가 알고 있는 동부 시간대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나를 다시 부르더니 자기가 착각했다며 TV를 보고 시카고 현지시각을 알려주어 다시 시계를 맞추었다.
12:20분에 출발하는 휴스톤행 American Airline 소속 비행기는 가로 좌석이 총 5석 정도의 작은 비행기였다.
현지시각으로 3시 30분경에 houston 조지부시 공항(IAH)에 도착하였다.
짐을 찾은 후 공항 청사 밖으로 나오니 훈훈하고 축축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텍사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그렇게 느끼도록 했었는지도 모른다.
O가 출국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한 바에 의하면 그 자리로 Adventure Rent-a-car 버스가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avis를 비롯해 수많은 렌터카 회사 버스들이 줄줄이 오갔지만 그 회사 소속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더 기다린 후에야 Adventure Rent-a-car 사의 버스가 도착해 그 버스를 타고 렌터카 회사 사무실로 가 자동차를 렌트하는 데 O가 흑인 아가씨와 서툰 영어를 버벅거렸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그가 잘못 알아들은 사항에 대하여 교정해 주었다.
보험에 대하여는 full coverage를 들도록 하고 나도 함께 운전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였으나 하루에 5달러씩 추가로 더 내야 하고 자기가 충분히 혼자 운전할 수 있다며 완강히 반대해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
빌린 대형 승용차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 길 주변의 나무와 숲을 바라보았다.
소나무와 잡목들이 우리나라의 것들과 너무도 흡사했다.
렌터카 회사에서 지역지도를 복사해 주었으므로 그 지도를 가지고 휴스턴 시내에 있는 Radisson 호텔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O가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지도를 보며 길 안내를 하였다.
호텔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하였으나 진입로가 이상하게 되어 있어 찾아 들어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기에 식사를 하러나가야 하는데 Y는 밖에 나가기를 꺼려했다.
그냥 호텔 안에서 먹자는 것이다.
차도 있고 근처에 식당도 많으니 그리로 가자고 억지로 끌어 chili's로 갔다.
전형적인 미국의 family restaurant 이었는데 주말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 좌석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한 백인가정의 호신이 또래 어린아이는 감자칩과 다른 음식들을 쉴 새 없이 먹어대고 있었는데 살이 엄청나게 쪘다.
바로 내 맞은편에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녀학생 네 명(남자 1명에 여자 3명)이 마주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큰 빵에 햄과 고기 야채를 넣은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나이아가라에서 경험했던 그 dagwood 햄버거다.
그들은 그들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우리를 흘낏흘낏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히히덕거렸다.
나는 O와 함께 파지타를 시켜 둘이 나누어 먹고 Y는 sirloin steak를 시켜먹었다.
우리는 draft beer도 한 잔 씩 하였는데 팁까지 포함하여 35$ 정도가 청구되었다.
10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나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둘째 날(10. 14)
Time lag와 Jet lag 때문에 모두들 힘들어했다.
새벽 4시쯤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냥 침대에 뒹구는 것 보다는 차라리 다른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일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호텔비에 포함되어 무료로 제공되었는데(Complimentary) 배가 고팠고 비교적 짜지 않아 내 입맛에 맞았으므로 많이 먹었다.
뷔페식으로 제공되는데 나는 소시지와 scrambled egg를 주로 먹었다.
우유와 Orange쥬스는 물론 커피까지 한 잔 씩 마시는 바람에 아침 식사를 배부르게 먹었다.
09:30분에 Houston DBM을 방문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아침 식사 후 바로 차를 몰아 DMB 사무실을 찾기 시작하였다.
O는 출발 전에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인터넷 yahoo에서 약도와 찾아가는 길 모두를 출력해 가지고 올 만큼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
그의 그런 노력으로 길을 찾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우선 그 쪽 안내인 Lisa 와 만나 잠시 DBM에 관한 소개의 말을 들었다.
Lisa는 우리를 접견실로 안내하여 냉수를 한 컵씩 권하고는 Delivery Manager로하여금 DBM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를 하도록 하였다.
그 친구는 미국 fortune 지 선정 1000대 기업 중 OPC 서비스를 받지 않는 기업은 없으며 그 이하의 기업도 최소한 75% 이상은 OPC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이를 시행하지 못하는 기업은 대부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직원들에게 복리후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경우 대부분 1~2개월 코스를 운영 중이며 임원급의 경우에는 보통 2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그들은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름과 몇 일 만에 어느 기업에 성공하였는지 등을 담은 취업축하 메시지를 사무실 벽에 붙여놓았는데 그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Lisa는 우리들로 하여금 오늘 처음 DBM을 찾은 몇몇 고객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장소를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그 프로그램은 동양인 여성이 진행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DBM이 진행할 여러 가지 서비스에 관한 사항 들을 인터넷을 통하여 온라인으로 컴퓨터와 Beam projector를 이용하여 Orientation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뚱뚱한 몸매를 하고 있었는데 houston에 처음 도착하여 느낀 점 중의 하나가 거주민들이 하나같이 너무 뚱뚱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지나치게 비만이어서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날 참석한 사람은 모두 4명 이었는데 석유회사에서 퇴직한 두 사람 그리고 은행에서 퇴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회의 참석 자세는 무척이나 진지했으며 우리들이 동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이상한 느낌을 갖지 않고 오히려 우리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orientation에 임했다.
Houston DBM 측에서 점심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와 그들과 함께 찾아간 곳은 전형적인 미국 남부 스타일의 민속음식점 이었다.
음식점 건물 상단 벽면에는 말을 타고 있는 카우보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음식점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today's special인 beef with mushroom special을 시켰더니 정말 무지무지하게 많은 양의 소고기가 나왔다.
미국인과 수다를 떨어가며 고기를 썰다가 고기 국물이 내 양복에 튀는 실수도 저질렀다.
익힌 고기의 두께가 2 ~ 3 cm는 되어보였다.
salad 소스는 honey mustard를 시켰는데 그게 우리네 입맛에 그나마 맞는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하여 공부하던 중에 배운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역시 예상대로 소스 맛은 괜찮았다.
점심 식사 후 우리에게 networking conference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Y가 별로 적극적인 참가 의사를 보이지 않았으므로 거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대신 Successful retirement 담당 컨설턴트(그는 그가 끼고 있는 반지로 보아서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 대학을 나온 사람 같았다)로부터 Successful retirement에 관한 Presentation을 받았다.
그는 고맙게도 우리를 위하여 관련 자료가 담긴 바인더 까지 만들어 주는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밝게 웃으면서 인사말을 걸어왔다.
자기이름은 ballery라고 밝힌 예쁘고 날씬하게 생긴 흑인 아가씨가 내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어왔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기회가 되면 한국에 한번 들러 달라고 말한 뒤 한국에 오면 나를 꼭 찾으라고 했더니 그녀는 Lisa에게 자기를 한국에 보내주라고 말해 달라는 농담까지 하였다.
Networking conference를 거르고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2시 30분 쯤 되었다.
마침 호텔 주변에 대형 쇼핑몰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으므로 한번 둘러보기로 하였다.
쇼핑몰 안에는 우리 이외에 거의 사람이 없었다.
딱히 살만한 물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미국경제도 말이 아닌 모양이다.
그날 저녁에 O는 그의 이모가 교포인 회계사와 결혼하여 houston에 살고 있는데 괜찮다면 그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Y에게 물어보니 공짜를 좋아하는 그가 거부할 리 만무다.
그녀는 아들과 딸을 함께 데리고 나와 우리를 픽업하여 저녁식사를 하러 한국인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활달하고 마음이 넓어 보이는 타입의 여자였다.
주물럭을 5인분이나 시키고 소주를 2병 시켜 배가 부르도록 저녁을 얻어먹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150불은 족히 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호텔로 돌아와 호텔 바에 들러 O와 맥주를 한 병씩 마셨다.
Y는 별로 생각이 없다며 적극적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방안에 남겨둔 채 우리끼리만 간 것이다.
방으로 돌아올 때는 그를 위하여 맥주를 한 병 사가지고 왔다.
셋째날 (2002. 10. 15)
전날 먹은 아침 식사 맛이 괜찮았으므로 오늘 아침도 넉넉히 먹어두었다.
소시지 4개에 scrambled egg와 french toast 3쪽을 먹고 쥬스 한 잔 까지 마셨다.
오스틴 및 샌앤토니오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올 호텔(Radisson)이지만 우선 check out 하였다.
houston에서 austin으로 가는 길은 정말 말로만 듣던 전형적인 텍사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야의 고속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의 가운데나 길 가에 보호 fence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흙길에 아스팔트만 깔아놓았고 길옆이나 중앙은 바로 잔디 밭이다.
60마일의 속도로 차를 달리는 데에도 5분 이상 달려야 겨우 집 한 채가 나타나는 정도로 광활한 목장이 계속되었다.
휴스턴에서 오스틴까지는 자동차로 서너 시간 걸리는데 그동안 끝없는 평원과 목장(ranch)들로만 이어졌다.
중간중간에는 샛강(creek)들이 흐르는데 아마도 영화에서 보듯이 소 떼들이 먹을 물을 공급해 주는 젖줄일 것 같았다.
평원에도 도로 주변이나 집 주변에는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무척 많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소변도 볼 겸 조그마한 동네 슈퍼에 들렀다.
아주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데 동네 아주머니 서넛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우리를 매우 의아해하면서 계속 곁눈질하였다.
나는 상점 안으로 들어가 소변을 본 후 O와 함께 맥주 한 상자(9개)와 물 한 통을 사가지고 나왔다.
Austin에 진입하자 주변에 컴퓨터 회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brand의 컴퓨터 회사들이 이곳에 상당히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Austin은 광활한 대지 밖에 보이지 않는 Houston 보다는 약간의 언덕이 있는(hilly) 굴곡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Austin DBM이 있는 동네 주변은 온통 나무들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어서 전혀 도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들은 느티나무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의 도토리나무와 유사한 종이 아닌가 싶다.(oak tree)
키가 그리 큰 나무들은 아니었지만 길가에 빼곡히 들어찬 모습이 나무를 좋아하는 내게 너무나도 맘에 들었다.
점심식사는 새로운 시도를 위하여 Fresh choice austin 이라는 음식점을 들르기로 했다.
온갖 야채만 즐비하게 차려놓은 야채 전문 식당이었다.
각종 야채를 접시에 담고 콩으로 만든 수프와 스파게티 그리고 pizza 까지 한 접시를 비웠다.
그렇게 먹는 나를 보고 O가 OK사인을 보내며 대단하다며 입을 벌렸다.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소화도 도울 겸 잠시 건물 주변을 거닐었다.
그러던 중에 austin DBM의 패트리샤가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는 사무실로 안내하였다.
사무실 공간은 무척 야무지게 짜여져 있었다.
Reception desk도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고 각종 사무용 비품도 선반 위에 오픈 된 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어 옆에 있는 개방형 자료실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
서비스를 받고 있는 몇몇 Client 들이 있었는데 우리의 방문에도 흔들림 없이 각각 자자 자신들의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패트리샤는 그의 동료를 소개하며 설명을 돕도록 하였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미국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의 직원들이 처음 입사하면 정년까지 계속 근속해 왔지만 최근 5년여 전부터는 희망퇴직이나 조기퇴직 등을 통하여 인력을 restructuring 하거나 reengineering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DBM을 찾는 사람 중 95 ~ 99%는 재취업이나 창업에 성공하며 창업의 비중은 그리 많지 않아 10% 정도의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의 취업환경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있지만 우선 본인들의 참여 자세가 우리와는 무척 달랐다.
그들은 취업이나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사례를 별도의 앨범에 담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짧게는 2~3일 만에 재취업한 경우를 비롯해서 다양한 성공사례들이 있다.
패트리샤는 우리에게 DBM 로고가 새겨진 기념 머그잔을 주겠다며 박스에 꼼꼼하게 싸서 차에 실어 주었다.
아울러 모토롤라 CTC까지 그녀가 직접 드라이브를 하는 친절까지 보여주었다. 모토롤라 CTC는 모토롤라 연수원 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건물 안으로 입장하는 것 자체도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입구에서 출입증을 쓰고 이를 증명하는 tag를 달고 들어가야만 했다.
그들은 Motoroller University 란 이름이 붙은 커다란 건물에서 사내 교육을 시키는데 그중 한 층 전부를 재취업훈련에 할애하고 있었다.
CTC 책임자는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는데 전직 교장선생 출신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나이에도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었으며 교장선생으로 재직 중에도 방학 중에는 DBM에 나와 15년여를 Part timer로 일해 왔다고 한다.
함께 일하는 컨설턴트들은 모두 매우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주치는 눈길마다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무척 좋았다.
듣던 바대로 그들은 엄청난 공간을 CTC로 활용하고 있었으며 입구 벽에는 그동안 취업한 개인별 성공사례를 붙여놓았는데 입구 벽 한 면을 성공사례들로 거의 완전히 도배를 하고 있었다.
명실공히 컴퓨터 회사 이름 그대로 컴퓨터실이 무척이나 잘 되어있었다.
강의장의 스크린과 강의 시설 모두가 최첨단(state of art) 컴퓨터 설비가 장착되어 있었다.
모토롤라는 명성 그대로 최고의 전자회사답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모토롤라 CTC 견학이 끝나고 우리는 오스틴에서 1박을 하기로 했으므로 ‘Hotel Amerisuite’를 찾기 위해 차를 몰았다.
O는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 지역이나 지리를 매우 잘 익히는 편이었으므로 한번의 공회전 연습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큰 고생 없이 바로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221호에서 짐을 풀고 시내 관광을 나서기로 했다.
우선 텍사스 주립대를 구경하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거기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텍사스 주립대는 다운타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정말 엄청나게 큰 규모의 대학이었다.
건물 하나하나에 예술적인 혼을 담아 예쁘게 꾸며진 학교 건물들은 그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캠퍼스 구석구석에는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젊은 대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잔디에 누워 자는 녀석, 동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는 녀석, 헤드폰을 끼고 무언가를 열심히 들으면서 잔디밭에 앉아있는 녀석, 끊임없이 누군가와 핸드폰으로 이야기하는 녀석 등 다종다양한 대학생들의 행태는 한가로이 공중에 올랐다가 이따금 잔디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는 까마귀들과, 먹이를 물고 이리저리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아나는 다람쥐들과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이 좋은 교정에서 학생들과 고고하게 늙어온 운 좋은 도토리나무들과 멋진 자연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시내관광은 원래 city tour를 해야 하는데 Y가 돈에 대해 너무 궁상을 떨었으므로 그냥 우리 차를 타고 시내를 돌기로 하였다.
오스틴은 작지만 무척이나 짜임새 있게 계획적으로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아직 극복되지 않은 Time lag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므로 차 안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우리는 시내를 몇 바퀴 돈 뒤 길가 도로변에 파킹을 하고 저녁 식사도 할 겸 먹을만한 레스토랑을 찾기 시작했다.
1800년대부터 있었다는 어느 한 빌딩 1층에 위치한 Riley's Pub에서 Fish'n chip을 시켜 Draft beer와 함께 먹었다.
정통 흑맥주를 맛보고 싶어서 Guinness를 마셨다.
쌉쌀한 맛이 내 입에 딱 맞았다.
fish and chip은 대구튀김(fried cod)와 감자튀김(chips)이 나오는 것으로 요기를 하기에는 부족하여 식사라도 근사하게 더 했으면 싶었는데 Y의 눈치가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으므로 그냥 호텔로 돌아와 O가 가져온 컵라면과 햇반을 끓여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Y가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어 했으므로 재미없는 영화를 유료로 감상하다가 잠이 들었다.
2002. 10. 16
Radisson Hotel의 scrambled egg나 sausage와는 달리 Amerisuite에서 complimentary로 제공되는 breakfast는 대륙식 continental breakfast 여서 정말 형편없었다.
각종 cereal과 우유 외에 맛없는 빵과 우유 그리고 커피가 전부였다.
그래도 돈 안 들이고 한 끼 때울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무료로 guided tour를 해 준다는 처남댁 말을 듣고 우리는 아침 8:30분에 check out 한 뒤 바로 주 의회 의사당(capitol)으로 향했다.
Parking 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으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주 의사당에서 마련한 visitor's Parking lot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주차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방문객을 위하여 2시간 동안은 주차요금을 받지 않는 곳이었다.
guided tour는 매 15분 마다 진행되었는데 우리의 안내를 맡은 아가씨는 금발의 예쁜 아가씨였다.
그녀는 남부 사투리를 쓰지 않고 정확한 동부식 정통영어를 구사하여 우리 같은 외국인이 알아듣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의사당 내에도 테러 방지를 위하여 경찰들과 함께 커다란 세파트 종 개 한 마리가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그동안 주 의회를 거쳐 간 의원들의 사진을 1층부터 4층까지 층층이 홀의 벽의면에 걸어놓았는데 짧은 역사 속에서 무언가 뿌리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석유의 고장 텍사스는 돈 많은 주답게 의사당 건축물부터 엄청나게 투자한 흔적이 역력했다.
의원들이 사용하는 의자며 책상 따위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매우 고풍스러운 것들로 지금도 옛것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기기는 첨단기기를 장착하여 곧바로 자기 지역구 사무실 비서와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의사당 앞에서 의사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그 유명한 Texas Ranger 동상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의사당 정원 한 편에 위치한 도토리나무는 300여 년이 넘어 보이는 고령의 나이에도 위엄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가지가 늘어져 부러질 위험이 있자 정부는 그 나무에 철사줄을 매어 지지물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이왕이면 University of Texas가 새겨진 선물을 살 생각에 다시 학교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별로 살만한 물건이 없었으므로 디스카운트 점에서 애들 기념품으로 University of Texas가 새겨진 옷 두 벌만 샀다.
Y는 점심 대신 대학가에서 파는 핏자로 한 끼 정도 때우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학교 안에 있는 조그마한 이동식 간이매점에서 파는 핏자를 먹었는데 정말 짜고 맛이 없었다.
나는 남은 핏짜를 비둘기에게 나누어 주었다.
대학가 학생들은 대부분 작고 뚱뚱하거나 못생겨 보였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몸매가 부족한 대신 머리라도 부족하지 않도록 골고루 나누어 주셨거나 공부를 통하여 자기의 부족한 점을 만회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을 이처럼 훌륭한 대학으로 보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O가 지적했듯이 하나같이 여자들 가슴이 젖소만큼 크다는 것이다.
O는 미조리 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가 공부하던 시절에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화를 전해 주었다.
특히 노출이 심한 여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보면 눈길이 책으로 가지 않고 항상 여학생 가슴으로 가게 되더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학교를 나와 곧바로 오스틴을 벗어나 샌앤토니오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대지를 두어 시간 가까이 달려야 샌앤토니오에 도착하는데 정말이지 두어 시간여를 달리는 중간에 제대로 된 휴게소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휴게소라고 생긴 곳에 들러보니 화장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철창 속에 갇힌 자판기 두 대가 전부였다.
사람은 아예 한 사람도 구경할 수 없었다.
아마도 주정부에서 공공복지 차원에서 지나가는 운전자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화장실 정도만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좀 신기하기도 해서 그 철창 자판기에서 콜라를 한 병 샀다.
샌앤토니오의 Radisson hotel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Y는 우리가 기거하게 된 호텔 룸이 suite room 이 아니라고 투정을 하며 suite room을 한번 알아보라고 했다.
오와 나는 잠깐 방에서 나와 스위트룸으로 옮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프론트로 갔다.
프론트에 근무하는 아가씨는 스위트룸에 들어가려면 하루에 275불을 내라고 하였다.
만일 Y가 그 말을 들었다면 비싸다고 자신이 한 말을 다시 번복하거나 아니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오기로 밀어붙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에게 suite room은 suite hotel이라고 씌여진 곳에만 있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suite room이 없다고 Y에게 말하라고 했고 그는 그대로 전하였다.
우리는 짐을 푼 후 river walk으로 향했다.
river walk cruise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투어였는데 도심 한복판에 운하를 파고 선장의 해설을 들으며 배를 타고 거기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선장은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원맨쇼로 guider 역할을 하였는데 주변의 건물과 식물들 그리고 거기에 사는 물고기들이나 벽화 따위까지 하나하나 설명하였다.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상업적 전술은 거기에도 있었는데 보안관 복 비슷하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우리를 몰아세우고는 사진을 한 방 찍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크루즈가 끝나는 시점에서 12불을 요구하였다.
하기야 지난여름 경주에서 바가지 쓴 것 보다는 싼 편이었다.
관광객은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아마도 현역에서 은퇴하고 경노 관광을 다니는 것 같았다.
크루즈가 끝나자 우리는 처남댁이 소개한 baby back rib을 찾아서 온 도시를 헤매기 시작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river walk으로 돌아와 주변의 음식점을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다.
길옆에 위치한 편의점 종업원에게 baby back rib 잘하는 집을 물었더니 자기가 잘 아는 집을 추천해 주겠다면서 county line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앞에 놓고서야 그 집이 바로 이소연 여사가 추천한 바로 그 곳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허탈하다는 듯이 수다를 늘어놓았다.
Y는 옆 좌석에서 백인 부부가 세숫대야만한 접시에 얹혀 진 갈비를 열심히 뜯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大자 하나를 시켜서 세 사람이 나누어 먹자고 하였다.
그 대자는 양놈들 1인분이다.
그러나 먹다 보니 뼈만 잔뜩 나왔고 양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어서 모자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자를 하나 더 추가시켰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고 Y는 나중에 이를 칭찬하며 두고두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무엇이냐 베이비...뭐라더라”를 연발하며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식사를 마치고 쇼핑몰을 기웃거렸지만 별로 살 것이 없었다.
양복가게 아저씨가 미군으로 한국에 주둔하는 동안 동두천에서 재미있는 생활을 보냈다며 금방 우리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으므로 한참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텔로 돌아왔는데 그렇게 짠돌이 행각을 벌이던 Y가 유료 TV(10$/영화 한 편)를 보겠다고 신청을 하더니만 잠시 후 코를 골며 잠에 떨어지고 O도 덩달아 잠이 들었으므로 나만 홀로 영화를 즐기다 11시 40분경에 TV를 끄고 잠을 청했다.
2002. 10. 17
아침 일찍 일어나 잠자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혼자 로비로 나가 전날의 일기를 정리하였다.
한 백인 녀석이 호텔이 떠나갈 정도로 TV를 크게 틀어놓고 영화를 보고 있었다. 로비 한 귀퉁이에 앉아 전날의 일기를 정리하였다.
아침식사는 O와 함께 맥도날드로 가서 breakfast를 사가지고 와서 호텔에서 먹었다.
나의 끈질긴 주장에도 불구하고 Y가 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멕시코까지 다녀올 수 있는 all day tour 대신 half tour를 하기로 하였다.
tour bus는 우리를 픽업하기 위하여 호텔 앞까지 왔다.
tour 회사 매표소에서 매표를 한 후 아라모 요새를 관광하는 동안 안내자가 우리를 잘못 안내하는 바람에 한 시간여를 방황하였다.
다시 멕시코계 안내인 데이빗이 나타나 아라모 요새에 관한 hologram movie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이어서 버스에 탑승한 후 Mission tour를 시작하였다.
미션은 대부분 예전 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미션은 멕시코에서 파견된 신부가 그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샌 앤토니오 인근지역에 6개의 미션(우리로 따지면 城에 해당함)을 건설하면서 생긴 것으로 성당을 중심으로 사각형의 성채를 이루면서 적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미소 우물, 곳간 등 모든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멕시코 상가에 들러 이것저것 관람하던 중 오가 magarita 한잔을 사와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강한 라임향이 들어있는 얼음 음료수인데 알콜 도수가 상당히 높았다.
라임 때문에 무척 신맛이 낫지만 조금 지나면 상큼한 향기가 도는 그런 종류의 음료였다.
tour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러 가기로 하였다.
점심은 오전에 보았던 바로 그 상가에서 정통 멕시칸 푸드를 즐기기로 하였다.
멕시칸 푸드의 대명사는 Fasita 이었으므로 O와 나는 파지타를 시킨 반면 Y는 싼 맛에 today's special을 시켰다.
결국 Y는 우리 음식을 기웃거리며 계속 주워 먹는 거지 근성을 다시 보였다.
그들의 음식은 매우면서도 무척 기름지다는 특징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아웃렛으로 향했다.
아웃렛은 호텔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도중 잠이 쏟아져 오에게는 미안하지만 염치불구하고 모르는 척 잠을 청했다.
아웃렛에서는 Y가 각각 독립적으로 쇼핑할 것을 원했으므로(아마도 우리 몰래 무엇인가를 사려 했었던 것 같다) 오와 나는 Y와는 따로 떨어진 채 쇼핑하였다. 나는 과장들 몫으로 버버리 넥타이 6개를 사고 다른 직원들 몫으로는 비타민 10병을 샀다. 넥타이는 한 개당 50$ 정도 주었는데 사실 백화점 가격으로는 100$가 훨씬 넘어가는 고가품이다.
처장님, 전무님 선물을 고르려고 여기저기 많이 방황했지만 마땅한 물건이 없어 포기하고 돌아왔다.
점심식사로 나는 사실 외곽으로 나가 값이 싸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고 싶었는데 Y가 물정도 모르면서 Y가 중국음식을 먹자며 다시 river walk으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주차비로 6$를 지급하고 저녁식사로 shrimp 와 beef 요리 그리고 볶음밥을 먹으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중국음식도 비교적 내 입맛에 잘 맞았다.
Y가 술을 한 병 사고 싶어 했으므로 liquor shop에 가서 1리터짜리 발렌타인 양주 한 병(23$)과 안주 거리로 땅콩 한 캔을 샀다.
호텔로 돌아오자 Y가 그 술을 마시고 싶어 했으므로 한 잔 하고 잠을 청했다.
2002. 10. 18
아침 샌앤토니오 래디슨 호텔 문을 나서려는데 Y는 O가 있나 두리번거리더니 그가 없음을 확인하자 나에게 조용히 귀엣말을 했다.
그는 나에게 식사비로 책정된 출장비 예산이 얼마냐고 물은 뒤 너무 비싼 것만 먹으려고 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사실 어제 간 중국음식점 hunan도 Y가 가자고 해서 바가지 쓸 것 뻔히 알면서 쫓아갔었고 과다한 음식값이 요구되자 Y의 모습을 보고 이런 사태가 오리라고 예측은 했었다.
그는 계란탕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이 2$로 적혀있자 그는 그 계란탕을 시켰는데 아마도 그는 그 계란탕으로 저녁식사를 때울 심산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계란탕은 그냥 맹물에 계란을 섞은 우동국물이었다.
배는 고픈데 그런 맹물 한 종지 떠먹고 저녁을 때울 수는 없는 것이었고 시킨 음식은 사실상 자기가 제일 많이 먹었으면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 그의 거지 근성에 무척 화가 났지만 승진이 눈앞에 아른거려 꾸욱 참았다.
우리는 호텔 문을 나서 다시 houston으로 향했다.
길가의 Mcdonalds에 들러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plate 형 breakfast는 내 입맛에도 맞고 양도 적당하여 좋았다.
어제저녁 비교적 잠을 잘 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졸음이 쏟아졌으므로 오에게는 미안하지만 houston 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잠을 잤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 휴식도 취하면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다시 돌아온 휴스턴 래디슨 호텔은 903호를 숙소로 내 주었다.
나는 houston 시내관광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Y가 돈 쓴다고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하였으므로 우리 차로 드라이브 하면서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휴스톤 다운타운은 한 블록당 하나의 건물로 이어지며 완벽한 계획도시를 이루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건물은 2개의 블록이 하나의 건물로 이어지는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쇼핑타운 갤러리아에 들러 처장님과 전무님 선물을 사려고 고르는데 도무지 적당한 물건이 나타나지 않았다.
Y는 내가 무얼 사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도 선물을 해야 하는데 그는 이미 신운섭 과장을 시켜 부 비용으로 국내에서 양주를 사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나중에 안 사실임)
던힐 매장에서 처장님께 드릴 캐시미어 제품을 하나 사려고 가던 중에 몽믈랑 매장을 발견하고는 거기로 발길을 돌렸다.
매장 주인은 내게 처음 1750$짜리 만년필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만년필의 가격을 보고 정말 놀랐다.
내가 400$ 수준 정도를 recommend 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390$짜리 만년필을 보여주었다.
괜찮아 보여서 세금(8% 65$)까지 포함하여 두 개를 사고 855$를 지불했다.
세금 환불을 받아보려고 Texas Tax Back office로 가서 이리저리 환불노력을 시도 해 보았으나 24시간 이내 국외로 출국하는 경우에 한한다고 해서 헛고생만 하고 그냥 돌아왔다.
팀장은 자기 와이프를 위하여 비타민제 한 병을 샀다.
점심은 한인 식당에서 설렁탕을 먹었는데 그릇에 기름기가 잔뜩 묻어있었는데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내가 혼자 김치를 한 사발 다 먹은 것 같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한인 식품점에 들러 사발면과 참치 통조림, 쥐포를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저녁식사로 햇반과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Y가 먹는 것에 무척 인색했으므로 그냥 햇반과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운 것이다.
저녁 식사 후 Y가 자고 있는 동안 오와 나는 시카고행 비행기 탑승 전에 남은 맥주를 전부 비워야 했으므로 새벽 한 시가 넘도록 남은 맥주와 양주를 마셨다. 하지만 결국 양주는 마시다가 절반 정도를 남겼다.
술을 마시며 그의 유학사와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인생역정을 들었다.
내가 알고 있듯이 그는 참으로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전형적인 삼팔 따라지 집안의 서울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이북에서 월남하신 후 갖은 고생 끝에 조그마한 성공을 거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따라지(38선=38따라지)라 부른다.
2002. 10. 19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제공(Complimentary)하는 식사로 아침을 먹었다.
mashed potato 와 scrambled egg 그리고 sausage를 곁들여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오후에는 시카고로 출발하여야 했으므로 오전에 O와 walmart에 갔다.
그가 집에서 주문받은 각종 약제를 사는 동안 나는 그냥 읽기에 편한 3류 연애소설 두 권 샀다.
오전 11시 무렵에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후 IAH(Bush International Airport)으로 향했다.
비가 조금씩 뿌리고 있었다.
렌터카를 반납한 후 렌터카 회사 shuttle Bus를 타고 공항까지 갔다.
짐을 부치는데 별도 Xray 검사를 해야 했지만 보안 검사는 비교적 용이하게 이루어졌다.
점심식사를 하여야 하므로 Y에게 메뉴선택을 의뢰했다.
그가 중국음식을 try 해 보고 싶어 했으므로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싹싹한 중국인 점원이 꼬치로 찍어 공짜로 맛을 보게 한 후 음식을 팔았다.
3시 45분 비행기였으므로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공항에 마련된 기념품점에서 별이 그려진 하얀색 houston astro 야구 모자를 하나 샀다.
29번 게이트에서 오랜 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린 끝에 boarding이 시작되었는데 hispanic 계열로 보이는 여자 보안검색원이 우리를 몰아세우더니 내 가방을 열게 한 뒤 갤러리 백화점에서 여종업원이 정성껏 싸준 몽블랑 만년필 케이스를 완전히 까뒤집게 하였다.
그녀는 내게 예쁘게 포장된 몽블랑 선물세트를 전부 뜯어 보이라고 했다. 정말 기분이 나빴으므로 인상을 확 찌푸렸더니 두 개 중 하나는 뜯어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혁대를 끄르게 한 후 구두를 벗기고 구두 안팎을 이리저리 관찰했다.
정말 기분이 몹시 상했다.
우리가 가지고 간 passport는 official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한 것이다.
한국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욱 안 좋았다.
비행기 안에서 일본 여자가 지은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 지는 책” 한권을 다 읽었다.
flight time 내내 귀가 몹시 아팠다.
두 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시카고에 도착하였는데 시카고는 날씨가 몹시 추웠다.
6 : 20분 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Monitor에서 Flight Number로 수화물 레인을 확인한 후 짐을 찾았다.
짐도 많았으므로 택시보다는 Van air express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시카고 호텔까지 1인당 round trip으로 20$이었지만 세사람이 이용할 경우 group discount를 해 주었으므로 48$ 정도를 지불한 것 같다.
깜깜한 밤에 도착한 Le meridien hotel은 휴스톤의 정서와는 너무도 차이가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별이 4개나 달려있는 다운타운 중심가의 호텔로 원래 1인당 200$정도 한다고 했었다.
우리는 927호에서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나갔다.
호텔을 나서면서 보니 쭉쭉 빵빵한 처녀들이 그 추위에도 상체를 드러내고 호텔 앞을 지나다녔다.
Y는 늘 간단한 식사를 원했으므로 Subway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Y는 먹다 남은 빵 조각을 내일 아침 대용으로 먹는다며 싸들고 들어왔다.
남은 양주를 한 잔 한 후 빨래를 하고 잠을 청했다.
2002. 10. 20
늘 그렇듯이 Y의 요청에 의하여 아침밥을 컵라면으로 때우기로 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부었는데 도무지 작동을 하지 않았다.
내가 operator에게 신고를 했다.
첫번째 종업원이 한참 만에 나타나서 고장 상태를 보고는 그냥 hot water를 가져다주겠노라고 했다.
두 번째 종업원이 나타나서는 hot water 한 주전자를 놓고 가려고 하자 O가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한 주전자를 더 달라고 했다.
우리는 hot water를 이용하여 라면을 끓였다.
마침 젓가락이 없었으므로 O는 밖으로 나가더니 star bucks에서 스트로와 나무로 된 커피 젓기를 끼워 훌륭한 젓가락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왔다.
햇반은 욕실에서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시카고 투어는 나의 제안에 따라 Trolley를 이용하기로 했다.
Michigan 호수의 Navy pier로 가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Gray Line을 이용해 Trolley tour에 올랐다.
미시간호 주변엔 현대식 고층 건물들의 모습이 웅장하다.
미시간 호에서 바라본 건물들은 마치 하늘을 찌르는 듯 높이 솟아 있었다.
시어스 타워를 비롯하여 존행콕 타워 등 고층빌딩이 그야말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트롤리를 타고 빌딩 숲을 지나 자연사 박물관(natural museum)으로 갔다.
egypt 특별전과 공룡전을 3시간여에 걸쳐 관람하고 점심은 박물관 내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빅맥으로 때웠다.
너무 오랜 시간을 걸었으므로 몸이 몹시 피곤하였으므로 3시쯤 해서 다시 트롤리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트롤리 투어는 운전자가 코스를 돌며 직접 가이드를 하는 것으로 정거장 아무 데나 내려 여행, 쇼핑 등 각자 자기 볼일을 본 후 언제든 당일 간은 한 장의 티켓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Mr. O가 친구와 만나기로 하여 자리를 비웠으므로 Y와 나는 저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음식점을 찾아 밖으로 나왔는데 조금 걷다 보니 무슨 무슨 deli 라고 씌어진 허름한 음식점이 눈에 띄어 그 집에 가기로 하였다.
지독하게도 영어를 못하는 것으로 보아 주인도 종업원도 모두 이민자인 것 같았다.
그는 sandwich를 쌩귀시라고 발음하여 그걸 알아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salad에 필요한 sauce를 놓고 내가 honey mustard를 주문하자 그걸 못 알아들어 결국 그가 내놓은 이상한 소스를 발라서 야채를 먹어야만 했다.
정말 지독하게 맛없는 sirloin steak를 둘이 22불 주고 먹어야 했다.
2002. 10. 21
아침 7:30분부터 강의가 시작되므로 일찍 일어나 강의장으로 향했다.
7:10분쯤에 SHRM 협회에서 나온 Sara와 교육비 영수증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녀는 내게 영수증을 이메일을 통하여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침식사는 SHRM에서 제공하는 정통 불란서식 다과로 때웠다.
이상한 종류의 맛과 향을 지닌 다과와 빵 그리고 각종 과일이 호텔 측으로부터 제공되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쥬스와 음료가 제공되는 것이 맘에 들었다.
강의내용은 신선하고 좋았다.
일반적으로 내가 대부분 알고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으므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concentration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졸음이 쏟아졌으므로 계속 물을 마셔가며 참아내야만 했다.
오전에는 HR General에 관한 강의가 있었고 점심을 먹은 오후에는 employee benefits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점심은 O의 친구가 소개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양도 많고 고기로 실하게 다져 넣은 속이 많이 들어있어 맛도 괜찮았다.
저녁식사는 Y가 자기가 한 턱 내겠다고 했으므로 시카고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steak house에 가서 Rib eye를 먹었다.
1인분에 29$이나 하였다.
모처럼 만에 스크루우지 주머니를 턴 것이다.
실은 해외 나간다며 그가 다른 직원들로부터 받은 壯途비만 해도 수백만 원에 이를 텐데 그 정도는 매일 사도 괜찮을 것이다.
시카고 불스 명성 그대로 고기 두께가 3센티가 넘는 것 같았다.
너무 많아 결국 구운 감자와 야채는 다 먹지 못하고 스테이크만 먹고 끝을 냈다.
2002. 10. 22
오늘은 8시 30분부터 강의가 있었으므로 8시 10분 쯤에 강의장에 도착하였다. 전날과 같이 오늘도 크로와쌍과 오렌지 쥬스로 아침을 대신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무언가 끈적거리던 액체가 굳어 오줌구멍을 막았고 끝이 약간 부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통증은 전혀 없었다.
갑자기 94년에 토론토 갔을 당시 모 과장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성병을 얻어 많은 고생을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어제와 같이 호텔과 인접해 서로 통로를 만들어 놓은 백화점 빌딩 안에 있는 먹자 층(음식점들로만 꽉 들어찬 층)에 있는 일식집에서 curry chicken을 먹었다.
저녁식사는 O가 쏘기로 했다.
오의 친구는 지금 현재 시카고 대학에서 civil engineer 분야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PM으로 취직해 그곳에서 살고 있으며 MBA 과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가 차를 가져와 pick up하여 우리를 한인식당에 내려놓았고 우리는 거기서 생갈비를 무척 많이 먹었고 소주를 3병이나 마셨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오는 모처럼의 추억 만들기를 위하여 club에 들러보자고 하였으나 아무런 이유 없이 고추에 이상이 생겼는데 그런 곳에 가기도 그래서 그냥 들어가자고 하니 모두들 내 뜻에 따라주었다.
호텔로 들어와 술을 좀 많이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은 양주를 한잔 더하고 잠이 들었다.
나는 잠자리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하여 심한 공포감을 느끼고 빨리 낫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어차피 여기서는 별 대안이 없으니 서울 가서 병원엘 가보던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목젖 주위 성대 근처에 조그만 혹이 생겨 계속 침이나 음식을 삼킬 때 거치적거리는 이상 현상도 문제고 암튼 나이가 들면서 내 육체의 여러 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오늘의 강의는 채용제도와 노동법이었는데 노동법은 변호사가 와서 거의 코미디언 수준으로 온몸으로 강의를 하였다.
그의 그런 열정이 아름다웠다.
그런 모든 모습들이 내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2002. 10. 23
오늘의 강의는 HRD와 Employee Relation 이었으므로 주제가 비교적 쉬워 강의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강사는 가끔 관련주제에 관하여 옆사람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communication)을 주었는데 마침 내 옆에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함께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 조금 불편했다.
오늘도 강의에 집중하면 할수록 졸음이 쏟아졌으므로 음료수를 계속 마시면서 강의를 들었다.
3일간의 코스가 모두 끝나고 점심식사를 하러 먹자 빌딩에 가 예의 일식집에서 우동을 주문하였다.
그 우동도 한국식 우동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지만 내 입맛에는 그런저런 잘 맞는 것 같았다.
점심식사 후 쇼핑을 나갔다.
Y는 시종일관 보석에 눈이 어두워 있었으므로 그를 위하여 온갖 보석상을 다 돌아다녔다.
그는 그의 처에게 지난 해외여행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다 주었는데 여러 개의 다이아몬드 조각을 반지에 수놓은 것이었으므로 큰 것으로 하나인 것 보다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다이아몬드를 사겠노라고 벼르고 있었다.
먼저 티파니에 들러 예쁜 다이아몬드 반지를 구경하였다.
정말 마음에 들어 가격을 물어보면 대부분 수백만 원씩 하였다.
어찌 보면 이런 것들을 모르는 아내가 자랑스럽다.
나는 티파니를 나와 field 백화점에서 아내를 위하여 백금 귀고리를 샀다.
마침 field day라고 50% 할인 기간 중이었으므로 50% 할인을 받았다.
Y를 위하여 호텔 근처 백화점 귀금속 전문점에서 다이아몬드를 사주었다.
목소리가 무척 굵고 우렁찬 바리톤 저음을 가진 검둥이 친구와 negotiation을 벌여 0.54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을 20% 정도 할인(600$)한 가격으로 사 주었다. 그는 그동안 그걸 사기 위해서 정말 지나칠 정도의 집착을 보여 왔었다.
저녁식사는 중국요리집에 가서 먹었는데 음식이 어찌나 짜던지 먹을 수가 없었지만 모두들 꾸역꾸역 정량을 채웠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겁도 나고 화도 났다.
거기다가 창피해서 누구랑 상의도 못하니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갑자기 다리도 아무런 이유 없이 정강이뼈 근처가 부풀어 올랐다.
시차 적응을 위하여 일찍 잠에 들었다가 새벽 3시에 깨어 일기 정리를 하였다.
2002. 10. 24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여자가 호텔에서 청구한 내역서를 들고 front desk 에 있는 직원과 말을 나누는데 얼핏 듣기에 전화통화 내역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엄청난 통화내역을 하나하나 따지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오늘 중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프론트 보조는 우리가 체크아웃을 원하자 미니바에서 무엇인가를 먹었다며 3.5$를 추가로 청구하였다. 우린 사실상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고 Y가 냉장고 문을 열어 물건을 한번 만져본 것뿐인데 그것이 그대로 체크가 된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자 자기 권한 밖이라며 그것은 그 여자와 이야기 하고 있는 정 프론맨 만이 해결 할 수 있다고 하여 그가 그 여인과의 대화를 끝내기를 기다렸으나 도저히 끝낼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주 태연스럽게 우리를 관조하듯이 그 여자와의 대화에 응하고 있었다. 대화 중간에 끼어들 수도 없고 주문한 Van Airport Express는 곧 도착 예정이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오가 신경질적으로 사인을 하고는 호텔 문을 나섰다.
밴은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으므로 우리는 곧바로 공항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잠시 후 함께 탄 아가씨와 인사를 나누고 오늘 아침 호텔에서 있었던 기분 잡치는 happening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기사에게 kal을 탈 수 있는 국제선 공항 게이트까지 데려다 달라고 주문하였다.
공항 게이트에 내려 ticketing을 한 뒤 잔돈 처분을 위하여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별로 살거리가 마땅치 않았으므로 육포 jerky와 초컬릿을 샀다.
점심은 Y가 피자를 원했으므로 그걸 사서 셋이 나누어 먹고 때웠다.
Y가 다이아몬드를 구입함에 따른 세금이 수 백 불에 이르므로 Tax refund를 받기 위하여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Information desk에 서 있던 경찰 녀석은 삐딱하게 서서 매우 건방진 모습으로 tax refund office를 묻는 내 질문에 계속 No 만을 연발했다.
나는 custom office에 끝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생각을 접었다.
돌아오는 KAL KE38편에서 제공하는 비빔밥을 오래간만에 먹으니 정말 맛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보니 그렇게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던 고추 상태가 다시 매우 양호해졌다는 것이다.
정말 이유를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내에서 시종 지난번 월마트에서 산 연애 소설책을 읽었다.
연애소설 치고는 문장이 좀 어렵고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왔지만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그 한 권을 다 읽었다.
리무진을 타고 도심공항에 내리니 Y의 처가 차를 가지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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