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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7

20070723 멍 찾아, 사람 찾아(임진강 번출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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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23(여견 조행기)

멍 찾아, 사람 찾아.

 

양푼이 비빔밥.

구의동 사이버 준 집 앞 24시간 숯불 화로구이 집에서 3천원짜리 양푼이 비빔밥을 판다.

찌그러진 양푼이에 비빔용 콩나물과 갖은 양념 그리고 상추를 잘게 썰어 덮어놓은 위에 덜 익은 계란 노른자가 일출처럼 돋보이는(sunny side up) 이 비빔밥 한 그릇이면 하루가 든든하다.

사이버 준 말로는 그건 순전히 미끼상품이란다.

그 집엔 오늘도 예외 없이 새벽부터 아침 해장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 옆 테이블엔 젊은 여성 셋이 앉아있고 벌써 빈 소주병 두개가 나란히 서 있다.

지난 밤 힘들고 어려운 하루를 마무리 짓는 성스러운 행사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이버준 말대로라면 그녀들은 멍짜고 우리는 미끼만 따먹은 피라미다.

 

 

임진교

임진교 여울에 도착한 것은 오전 여덟시가 조금 넘어서다.

북한에서 수문을 열었는지 수위가 엄청 불어있었다.

물가에서 줄을 흘렸다.

피라미 마자 꺽지만 연이어 나올 뿐 대어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우중충한 날에는 소문대로 잉어 대물이 물가로 나와 줄 것 같은 기대감에 줄을 흘려보지만 불어난 물로 유인이 어렵다.

 

 

큰물

임진강이나 한탄강은 요즘 들어 큰물 선배님이 한 인물 하신다.

임진강까지 나오면서 몰래 다녀간 걸 나중에 아신다면 크게 섭섭해 하실 거라며 사이버준이 큰물 선배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득달같이 나타나셔서 특유의 커다란 동작에 환한 미소로 우릴 반긴다.

큰물 선배님은 주먹이 내 주먹의 두 배는 되어 보이고 우락부락하게 생긴데다 액션이 크고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사셔서 얼핏 처음 만나는 사람은 불한당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솔직 담백하고 이보다 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드물 것 같다.

나나 사이버 준이 좋아하는 타입의 싸나이다.

 

 

강물

이어서 강물선배님 내외가 나타나셨다.

나는 예술같이 아름다운 노년을 꿈꾸는 환상가다.

그런데 나는 가끔 강물선배님이 나의 모토를 실천해 나가시는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건장한 체격에 수려한 마스크, 차분한 분위기가 한 눈에 예술가임을 느끼게 한다.

모든 예술가가 예술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방에서 보여준 이미지나 함께 강물을 찾으며 잠깐잠깐 보여준 모습들이 신작가님과 더불어 예술 같은 삶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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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짜장면을 배달 해 먹었다.(형수님! 욕 얻어먹느라 고생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라면 끓여먹는 재미로 강가에 나갔는데 이제는 그게 조금 귀찮아졌다.

강물 선배님으로부터 임진교 하류 쪽에 멍 번출 팀이 자리를 잡았으니 그쪽으로 오란 전갈을 받았다.

 

 

즐비

즐비는 즐거운 비명의 약자로 추정된다.

늘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이사람 저사람 모두 챙겨 먹이기 위해 얼마나 바지런을 떨던지 그 아름다운 마음 덕분에 모두가 하나가 된다.

늘 약간 취한 상태에서 인자하게 웃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세상 법 없이 살 사람들 같다.

우릴 위해 이것저것 준비한 품새도 정성으로 그득하다.

 

 

배꼽

눌러 쓴 검은 모자가 정말 잘 어울리는 남자.

공룡 발톱을 삶는다고 하루 종일 애쓰더니 노래방에서는 온몸으로 자신을 연출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늘 조용한 가운데 입가에 잔잔한 미소만 머금었었는데 술 한 잔 들어가서 그런지 오늘은 제법 목소리도 크다.

아직 먹어보진 못했지만 바비큐의 제왕이란 소릴 듣고 있다.

 

 

아인빈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런 닉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얼핏 독일어가 그 어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랫녘 넓은 평야지방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자란 덕인지 마음이 호탕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달고 산단다.

공룡발톱 중 최고 상품을 골라온 그는 이번 번출의 일등공신이라나?

캠핑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다니는 그는 주말이 더 바쁜 남자다.

 

 

벽오동

목소리에서부터 바람기가 살살 도는 남자.

애교가 철철 넘친다.

남자든 여자든 안 넘어가는 사람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겉보기에는 엄청 술을 좋아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그래도 소주 2병쯤은 간단히 해 치울 수 있는 무서운 사람이다.

노래방에 가서 여럿 죽일 것 같더니 캠프를 지키겠다며 그냥 눌러앉아버린다.

 

 

하늘구름

하늘에 구름처럼 조용하다.

어느새 저만치 간 구름 마냥 그는 부지런의 대명사다.

이번에 정말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노래실력이다.

음정 박자가 정확하고 완벽한 고음처리가 가능하여 가수로 직업을 바꾸어도 손색이 없는 남자다.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는 밤무대의 제왕이다.

 

 

고인돌

누구나가 겪어봐서 설명이 필요 없다.

평생을 견지와 함께하신 선배님이다.

열일 마다않고 여견 식구들을 위해 정열과 사랑을 쏟아 붓는 사나이다.

아직 구석기 고인돌시대를 벗어나지 못해 진화가 덜된 콧수염과 턱수염을 자랑한다.

 

 

성호아빠

처음 가입하자마자 얼떨결에 파티에 참석한 성호아빠는 소주 몇 잔에 얼굴이 상기된 채 환하게 여견 식구들을 맞는다.

큰물 선배님과 함께 임진강, 한탄강 터줏대감이시다.

 

 

노래방

견지로 만난 순수 동호회가 수년 또는 수십 년을 함께한 회사 사람들보다 훈훈한 모습을 보이는 곳이다.

처음에는 글이나 사진 만으로 보다가 낯모르는 사람과 함께 노래방 가기를 굉장히 꺼렸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정말 몰랐었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누구나가 자기 가슴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을 그대로 발산하며 얼싸안고 서로를 쓰다듬으며 메아리로 남는 게 바로 우리 여견의 노래방이다.

숨길 것도, 가릴 것도, 계산할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발산하면 그뿐이다.

인생 뭐 있나! 오늘을 멋지게 살면 그 뿐이지.

난 노래는 못하지만 그런 여견의 노래방이 정말 좋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려내는 자연그대로의 율동과 노랫가락을 정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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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멍이든 누멍이든 멍 찾아 강에 왔다가 뭍에 사는 멍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 대신 글로 그려보았다.

혹여 빠진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진도 찍다보면 빠지는 사람이 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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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밤을 어제로 묻으며 오늘도 임진강은 도도히 흐르고 있다.

냉면에 계란 반개와 편육이 없으면 꽝인데 즐비님 내외가 정성으로 끓여낸 것이어서 혀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 그런지 계란과 편육이 없어도 최고의 맛을 자아낸다.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쪽쪽 빨아먹었다.

별 도움 없이 빈둥거리며 얻어먹기만 한 기분이어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다가 고급 정보를 접하고 쳐들어간 번출로 1박 2일간 천상유희를 맛보았다.

가끔 그런 고급 정보가 은퇴할 그날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