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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7

20070714 모곡의 작은 영웅 이야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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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곡의 작은 영웅 이야기(2007.7.14 여견 조행기)

 

지난봄 체육대회 행사를 모곡에서 가졌었다.

그 때에는 가뭄 끝이어서 여울마다 물이 별로 없었지만 모곡 만큼은 힘찬 물살을 가르며 올라오는 돌돌이가 나를 기쁘게 했었다.

지난 비에 청평에 사는 대물들이 배 견지꾼을 피해 혹시 거기까지 올라오지 않았나 싶어 오늘은 그곳에 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봄 왕박골 정출 이후 강물선배님 수장대를 내 차에 계속 싣고 다니다가 그걸 전해준다는 핑계로 선배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바쁜 일 마다 않으시고 오시겠단다.

일주일 내내 크고 작은 일로 마음 졸이다가 강물을 보면 가슴이 시원해진다고 말했더니 강물 선배님이 농담 삼아 당신의 이미지도 함께 연상해 달라신다.

내비게이션 엎 데이트를 미루었더니 엉뚱한 곳으로 안내를 해 조금 고생은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당초에 생각했던 여울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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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보다 여울이 훨씬 불었다.

지난번에는 쉽게 접근이 가능했던 본 여울 앞에 작은 개울이 하나 더 형성돼 있어 내 차가 거길 건너기에는 무리다 싶어 개울 앞에 세워둔 채 전투복만 갈아입고 들어갔다.

헌데 다른 차 한대가 물살을 가르며 개울을 건너가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본 순간 돈키호테와 로시난테 생각이 났다.

늙고 야윈 말을 몰고 겁 없이 뛰어드는 돈키호테마냥 나도 결국은 내 차를 몰아 물살을 가르며 개울을 건넜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신 “장하다 로시난테!”를 부르짖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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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줄을 흘리자마자 누치가 올라온다.

힘이 보통 좋은 게 아니다.

물살이 워낙 세다보니 다른 여울보다 배 이상 힘을 쓰는 것 같다.

피라미가 설장을 타는 정도라면 이해가 갈까?

양 옆으로 사이버준과 강물선배님이 줄을 흘리지만 내게만 연신 입질이 온다.

고인돌 선배님 말씀처럼 녀석들은 썰망 앞에만 한 줄로 서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후킹 되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이상하리만치 그런 현상이 계속된다.

그 와중에 정말 힘이 장사였던 대물 한 수도 목줄을 끊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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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견지를 하던 중 어떤 사람이 급물살에 밀려 떠내려가는 현장을 보았다.

그는 머리가 수면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빠른 속도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함께 놀러왔던 동료들이 정신 차리라며 큰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보기에는 조금만 더 떠내려가면 바로 물 밑으로 가라앉을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마침 플라스틱 보트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 보트를 그 쪽을 향해 집어던졌다.

물에 빠진 사람은 보트를 잡기 위해 허우적댔지만 보트를 잡지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지면서 물살에 밀렸다. 이를 본 아이 중 하나가 (내가 보기에는 중학생쯤 되어 보인다) 빠른 속도로 헤엄을 쳐 보트를 붙잡아 그가 반대편에서 보트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바람에 그는 살아날 수 있었고 이어서 출동한 모터보트 경비원의 도움으로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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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를 살린 것은 그 꼬마 학생이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요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를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 영웅들이 있는 한 이 시대는 건강하다.

그런 현장을 바라보면서도 견지대를 붙잡고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우리 모습이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다.

잠시 후 경비원이 모터보트를 타고 여전히 시침질을 하고 있는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지난번에 견지인 두 명이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옆자리에서 수장대와 함께 익사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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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그렇게 간단하게 찾아온다.

평생 살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죽음을 맞는다.

우리가 옆에서 그를 구경하듯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우리의 죽음을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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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양푼이 비빔밥을 먹으며 보았던 숯불갈비를 저녁으로 먹을 수 있도록 도로가 막힘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나누며 차를 몰았다.

다행히 차 막힘이 별로 없어 한 시간 반 만에 출발지인 사이버준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물 선배님은 아침으로 양푼이 비빔밥을 쏘시더니 저녁 숯불갈비도 쏘시겠단다.

사모님께서 아침 먹은 데서 저녁을 먹는 게 좋다고 하셨다며 장소도 같으니 저녁밥도 당신께서 사시는 게 맞는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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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락객과 래프팅, 수시로 드나드는 모터보트 덕에 오늘도 물고기는 꼴나게 잡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잡은 게 많다.

하루 온종일 강물에서 강물 선배님과 보낸 것도 엄청난 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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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 이야기지만 안전이 최고다.

즐거움은 안전이 보장된 다음 이야기다.

물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

여름이라고 종종 바지장화만 입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안 입는 것보다 더욱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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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함께한 수많은 조행에서 자신의 사진은 올릴 수 없었던 사이버준의 사진을 한 컷 올리며 오늘의 조행을 맺는다.

사진 오른쪽 끝에 홍천경찰서장이 내 걸은 '익사사고현장' 현수막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