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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7

20070704-8 괴강, 장마에도 훌륭한 견지터

by 굼벵이(조용욱)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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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강, 장마에도 훌륭한 견지터(7.4~8 여름휴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멋지고 화려한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싶었다.

여기 저기 명승지도 다녀보고 물 좋고 경관 좋은 여울에 몸 담그고 물고기와 놀고 싶었다.

단양을 중심으로 좋은 견지터가 많아 한 달 전부터 대명콘도 예약을 서둘렀다.

여름 성수기에는 예약이 무척 어렵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한 것이다.

이번 휴가엔 집사람을 데리고 가서 꼭 견지 마니아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견지만큼 즐거운 견지도 없다.

하지만 집사람에게 함께 여행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 결국 또 혼자가 되어버렸다.

5일 연속 신나는 견지여행을 즐겨볼 셈으로 덕이도 일찌감치 넉넉하게 준비하고 계속 일기예보를 주시했다.

예보도 영 오락가락 한다.

토요일인 4일엔 괴강을 다녀올 속셈으로 제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은 괴강에서 한번 낚시를 드리워 보고 수안보에서 일박을 한 후 단양을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별 일 없으면 그러겠다고 했다.

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 금요일 오후에 누치가리님이 전화를 했다.

청류선배님하고 남한강에 대물을 사냥하러 가잔다.

제드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밀양강 계획이 있다며 내게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너무 멀다며 그냥 남한강으로 가겠다고 했다.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치고 토요일 새벽을 맞았다.

이것저것 채비를 하고 있는데 누치가리님이 전화를 했다.

청류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니 안 가는 게 좋겠다는 전갈이다.

그동안 꿈꿔온 휴가가 초장부터 좀 이상하게 꼬이는 듯하다.

그래도 내 생각을 좇아 강행군을 시도했다.

꼭두새벽부터 차를 몰아 여주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남한강을 다시 찾아가는데 비가 계속 뿌려댄다.

천둥 번개도 심상치 않다.

물도 엄청 불어있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빗속 강물에 혼자 들어간다는 것은 미친 사람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도 돌아서는 길이 영 아쉽다.

비가 그치기를 한 20여분 기다려 보았다.

장대같은 비가 계속 내린다.

할 수 없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당초에 계획했던 대로 괴강을 가기로 했다.

칠성댐 바로 밑이면 물색도 괜찮을 거고 누치가 재난을 피해 비교적 맑은 물인 상류로 들러붙을 것이란 생각에 괴강으로 기수를 돌렸다.

산골 굽이굽이를 꼬불꼬불 돌아서 가야 하기에 어질어질한 느낌마져 든다.

홀로 도착한 괴강엔 다리 밑에 가족단위로 삽겹살을 구워먹으러 온 두어 가족이 있을 뿐 견지꾼은 없었다.

줄을 흘리자마자 돌고기가 연신 바늘을 물고 늘어진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이 한참 산란을 준비 중인 것 같다.

누치는 코앞에서 떨어뜨린 대물 한 놈 말고는 없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통에 다리 밑에서 견지를 하다보니 포인트가 잘 안 맞는 것 같다.

잡은 돌고기 4~50수를 다듬어서 매운탕 거리로 수안보 식구에게 가져다주었다.

수안보 식구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대했지만 비는 계속 이어진다.

다음날은 단양으로 향했다.

물빛은 황토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화려한 휴가계획이 점점 초라한 빛깔로 퇴색되어가고 있다.

대명콘도에서 사이버 준 식구들과 만나 맛나식당에 가 저녁을 함께 했다.

술도 꾼이 있어야 웃고 떠들며 맛나게 마시는데 사이버준은 술을 일체 입에도 안 댄다.

제드가 함께 했으면 참 좋았을 거란 생각을 잠시 했다.

그래도 사이버준은 술잔에 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술병을 들이댔다.

남들 저녁 식사하는 그 짧은 시간에 난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해 치웠다.

다음날은 어디 샛강이라도 찾아 피라미 낚시라도 해 볼 요량으로 박순복 공방을 찾았다.

박선배님은 윗녘이든 아랫녘이든 본류로 흘러드는 샛강에 줄을 드리우면 피라미는 많이 붙을 거란 귀뜸을 해준다.

온달동굴 앞 샛강에 낚시꾼이 빗속에 대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흘러드는 물은 아직 물빛이 괜찮았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채비를 하고 강으로 내려가려는 찰나 물빛을 보니 벌써 샛강마저 황토 빛으로 변해있어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장비를 접고 상류로 상류로 처음을 찾아 달려보았다.

비가 계속 퍼붓는다.

갈수록 물빛은 황토 빛이 진하다.

그냥 드라이브나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빨리 바꾸었다.

그날 저녁에는 정년퇴임 후 단양에 내려와 사시는 회사 선배님을 찾아 함께 식사를 했다.

N지점장님은 건강하게 노후를 준비하고 계시다.

업무에 필요한 각종 자격증도 따고 전기공사업체에 취직해 열심히 생활하시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사이버준 가족과 헤어져 홀로 괴강을 다시 찾았다.

사이버준 식구는 아침으로 빵과 우유만을 먹는다.

덕분에 나도 함께 빵과 우유로 아침을 대신했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괴강 교각 밑에서 혼자 줄을 흘린다.

처음부터 돌돌이가 계속 물어준다.

올라오는 고기마다 그 예쁜 입술에 키스세례를 퍼부으며

“가서 할아버지 모셔오너라” 고 하며 돌려보냈다.

피라미에 20센티가 넘어가는 마자, 끄리 따위도 함께 올라온다.

하지만 커다란 바위나 돌들이 워낙 불규칙하게 널려있어 바닥 걸림이 무척 심했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누치와 즐겁게 놀다가 저녁에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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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덕에 계획대로 완벽한 휴가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넓은 여울에서 홀로 한가로운 견지를 즐겼다.

비가 오락가락 하니 햇빛으로 얼굴 탈 일이 없어 좋았다.

더군다나 가져간 책 2권을 모두 읽을 수 있는 여유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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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현명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올인 했다.

누치가 사이즈별로 심심찮게 올라오는 견지를 호젓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인생은 선택이다.

비가 오는 바람에 휴가를 망쳤다는 생각보다는 비가 오는 바람에 호젓하게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선택을 하니 장마와 함께 보낸 휴가지만 그럭저럭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