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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by 굼벵이(조용욱)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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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더더욱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한다.

제목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논리적으로 맞지않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도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 오히려 궁금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 때문에 열심히 사는게 옳지 않다고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건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완전 혹세무민과 같은 이야기다.

이런 글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파랑새 같은 동경 따위들로 이런 글을 좋아할 거다.

필자는 열심히 안 사는 이유를 자유에서 구한다.

충분히 자유로운 삶을살고 싶어 그런다는 거다.

열심히 살면 일에, 생각에, 다른 무엇에 구속되니까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인내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한다.

돈? 

그는 돈의 가치를 우습게 아는 듯하다.

언제든 필요하면 벌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아니다!

자신은 자신만의 전문성을(화가) 확보하고 있어 가능하지만 평균 이하의 젊은이는 조금이라도 불성실하게 살다가는 자유인이 아니라 평생을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돈은 곧 자유다.

즉 자유를 살 수 있는 권리다.

자유롭고 싶거든 피나게 노력하고 인내하며 전심전력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해도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충분하게 구가하기 어렵다.

나보다는 젊고 나름 프라이드와 전문성을 가진 작가여서 생각의 틀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이 글처럼 살지 마라.

젊었을 떈 사서라도 고생하며 치열하게 시련에 대한 맷집을 키워나가야 한다.

카르페 디엠은 지금 즐기며 놀라고 하는 게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대한 몰입하며 자신을 만들라는 거다.

치열하게 몰입해서 천착하다보면 끝을 볼 수 있고 끝을 봐야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적당히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기며 건성건성 나비처럼 사는 사람은 말로가 비참하다.

그래도 그래서 행복했노라고 말한다면 할 말 없다.

노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물어보라.

백이면 백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 했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할걸?

슬로우 라이프를 이야기하는 듯한데 그건 접근법이 다르다.

느려도 좋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은 끝장을 볼때까지 필수다.

 

너무 힘들지만 않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하자.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 밀리의 서재

(힘들지 않은 일은 세상에 없다. 

끝을 볼 때까지 끈질기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라.

그래야 일이 사랑스러워진다.)

 

이제부터 진짜 사랑을 찾을 거야’라며 찾아 나선다고 사랑이 찾아지는 게 아니듯, 진짜 하고 싶은 일도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었다.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 밀리의 서재

(진짜 하고싶은 일은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사후에 인정받은 일에 불과하다.

천착하고 끝을 보고나면

"아, 바로 이거야.

그게 내 천직이었네.

정말 즐거웠어."

이렇게 인정되어질 뿐이다.

파랑새를 찾듯 여기저기 기웃댄다고 찾아지는 '하고싶은 일' 이 아니란 거다.

하느님은 이렇게 '하고싶은 일'을 사후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꼭꼭 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