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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무라카미 하루키)

by 굼벵이(조용욱)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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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 소설 같지만 우리 삶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가상인 듯하지만 그게 진실인 경우가 있고 진실인 듯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궁극엔 본인이 그게 진실이란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간다는 데에 있다.
인간은 생각의 복합체여서 본인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수시로 현상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나라는 본질 외에 수많은 가면과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며 내 그림자 중 하나가 내 본질을 대변하기도 한다,
내 느낌으로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이 소설에서 그린 듯하다.
17세 소년도, 옐로우 서브마린 소년도, 고야스의 영혼도 모두 같은 사람의 다른 그림자일 뿐이다.
결국 주인공을 불확실한 벽에서 꺼내준 건 믿음이다.
본질에 대한 확고한 믿음.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림자 놀이만 하다가 간다.
그래서 때론 그림자가 자신의 실체 즉 본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극적인 반전이나 웅장한 스펙터클, 액션 따위가 없어 지루한 듯하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순애보가 우리를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도록 하고 우리의 마음을 한결 부드럽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순수의 세계로 인도한다.
70이 넘은 노인네 하루키가 소년, 소녀, 어린아이의 순수한 감정을 다룬 것이어서 내겐 더욱 공감이 간다.
30대에 쓴 소설의 흠결이 안타까워 40년이 지난 70대에 수정 보완한 작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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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
나 자신이 누군가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만약에 그렇다면 다시 말해 네가 누군가의 그림자일 뿐이라면 너의 실체는 어디 있을까?
 
연애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신 질환이다
 
그렇게 기억이 띄엄띄엄하다는 사실이 날 혼란에 빠뜨렸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기억을 잃은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기억하는 것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일까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어디부터가 가짜일까

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 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짐작 컨 대 현실은 하나만이 아니다 
현실은 몇 개의 선택지 가운데 내가 스스로 골라잡아야 하는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시간이 머물러 있어도 계절은 순환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현재가 비춰 내는 잠깐의 환영일지라도 책장을 아무리 넘겨도 쪽 번호가 바뀌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하루하루는 흘러가는 것이다
 
당신 분신의 존재를 믿으세요 
옐로우 서브마린 소년이 그렇게 말했다 
그게 내 생명선이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당신을 받아줄 거예요 
그렇게 믿으세요 
당신의 분신을 믿는 건 곧 당신 자신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것처럼 한 작가가 일생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가지 형태로 바꿔 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