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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나의 돈키호테(김호연)

by 굼벵이(조용욱)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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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앞에 희망을 찾아 무모하게 맞서는 사람을 돈키호테라고 한다.

나도 한 때는 돈키호테였다.

내가 없으면 우리회사가 쓰러지는 줄 알았으니까.

내가 회사를 지켜내지 못하면 회사는 노조에게 휘둘려 쓰러지고, 정부의 입김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열정과 오만이 없었으면 나는 결코 성장할 수 없었으며 회사는 조금이라도 진화할 수 없었다. 

내가 진정 돈키호테일 때는 내가 돈키호테인줄 몰랐었다.

은퇴하고 돌이켜보니 그 때 내가 돈키호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필요에 따라 돈키호테이면서 산초이고 기타등등 주인공이 된다.

주인공 돈아저씨는 나와 비슷한 세대를 살았기에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내겐 그만큼 현실감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생각은 작가의 스페인 여행기를 소설로 만든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작가는 언젠가 스페인을 여행했고 여행 중에 꼼꼼하게 여행기를 작성했으며 그 여행기를 고스란히 소설 속에 녹여낸거라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마지막 돈아저씨의 스페인 여행 부분은 특히 더더욱 그렇다.

나도 비교적 꼼꼼하게 해외여행기를 쓰는 편인데 이 소설을 보면서 그걸 인용해서 소설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인간은 누구나 오만과 편견 속에 살아간다.

그게 없으면 발전도 진화도 없다.

취업률 최고의 대학과 고등학교가 들이대 아님말고 라는 이야기가 있다.

무에서 유로 만들어지는 모든 창조는 그렇게 돈키호테에서 시작된다.

*******************

 

글쎄요.

늘 혼자셨어요.

글쓰기의 본질은 고립이라고 지하에 처박혀 쓰기만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나도 스스로를 산자락 농막으로 고립시켰다.

돈키호테 같은 작품을 기대하면서...)

 

“솔아. 

사람은 평생 자기를 알기 위해 애써야 해. 

그래. 

나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짓고 살아왔지. 

하지만 『돈키호테』를 받아쓰면 받아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인간은 컴플렉스여서 하나의 캐릭터가 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때론 돈키호테가 되었다가 산초가 되었다가 하며 역할연기를 다르게 한다.

그게 안 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산초같은 돈키호테, 돈키호테 같은 산초가 우리다.

이처럼 떄론 기가막힌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이고 소설이다.)

 

“하하. 돈키호테가 산초가 될 순 있어도 산초가 돈키호테가 될 순 없단다.”
“왜죠?”
“열정이 사라졌으니까.

열정이 광기를 만들고 광기가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 인물을 만들거든.

나는 고갈된 열정 대신 현실에 발을 디딘 산초의 힘으로 돼지우리를 만들고 하몽을 염장할 거란다.

어른 진솔은 이제 아저씨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는다.”
“이해는 개뿔. 실망이에요.”
“나중에 하몽 먹으러 와라.

흑돼지 하몽만큼은 실망시키지 않으마.” 

 

(나이 들면 능력도 열정도 하향곡선을 이룬다.

마음만은 젊어서 돈키호테처럼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해피엔딩이 불가능하다.

하몽이 뭔지 모르지만 내가 키우는 닭이나 그가 키우는 돼지나 별반 차이가 없다.

인생 말년은 누구나 산초처럼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면 그 산초의 역할이 돈키호테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독점]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 밀리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