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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002 북유럽 여행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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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10.2)]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밤의 과음으로 몸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먹어야 살기에 꾸역꾸역 아침을 챙겨 먹었다.

scrambled egg와 조그마한 소시지 서너 개 그리고 감자류를 먹은 뒤 입가심으로 과일을 먹었다.

그게 내게는 아침식사로 가장 잘 맞는 듯하다.

노르웨이로 출발하기 전에 오늘은 스톡홀름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시 의회 의사당을 거쳐 혁명의 뿌리를 발본색원 하려던 피의광장에 들렀다.

어제 마신 술로 인한 갈증이 심해 피의 광장 중앙에 위치한 샘물 급수대에서 사자상의 입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받아 목을 축였다.

아직도 죽은 영주들의 핏기가 가시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섬뜩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역사도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로 얼룩져 있는 야만 그 자체다.

다만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먼저 산업혁명을 도모해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는 것과 옛것을 존중하여 보존하고 지키려는 생각이 조금 앞섰다는 것뿐이다.

경제적 풍요가 앞으로 50년 정도만 더 지속된다면 우리도 문화나 사고방식, 가치관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바사박물관에 들러 300여 년간 바닷속에 묻혀있다 건조되었다는 바이킹 배를 관람했다.

배의 복구 작업도 무려 18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한다.

배 한 척 덜렁 가져다 놓고 이리저리 꾸민 다음에 박물관에 가져다 놓고 거기서 거두어들이는 관광 수익만 해도 엄청나다고 한다.

점심은 현지 음식 맛을 본다고 야채 전문식당으로 갔다.

(vegetarian restaurant 을 택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걸 몰랐기 때문에 거길 선택했을 것이다.)

어제의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은데다 차가운 야채만 먹었더니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따뜻한 콩죽 한 그릇과 뜨거운 커피 한잔 마시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이인자 가이더가 안내하는 크리스탈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가이더가 부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식당과 기념품 가게다.

나는 불필요한 충동구매를 자제하는 편이다.

마땅히 살만한 물건이 없어 22유로를 주고 마누라에게 줄 수정 귀고리 하나를 샀다.

회사의 직속 상사는 잠깐 모시지만 마누라는 평생을 모셔야 하기에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해외여행 선물구매의 제1법칙은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좋다.

어차피 그녀는 가격도 환률도 잘 모를 것이니 내가 말하는 게 곧 값일 거고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게 빛나니 그저 비싸게 주고 사 온 줄만 알 것이다.

스톡홀름에서 오슬로로 가는 비행기는 국내선(사실상 국제선이지만 그들은 domestic 형태로 운영) 이지만 와인이 제공된다는 이야기를 기내 방송으로 듣고는 술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주문할 수 있도록 두루 알려 주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깔린 스웨덴과 노르웨이 호수들을 구경하면서 샌드위치와 작은 와인 한 병을 마시니 금방 오슬로에 도착했다.

가이더 말로는 스웨덴의 호수는 9만여 개가 넘는다고 했었다.

저공 비행하는 작은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온통 크고 작은 호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호수와 강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길가로 띄엄띄엄 취락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명당은 어디에나 통용되는 모양이다.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에 취락구조가 발달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공중체류 시간이 40여 분 정도 지나니 금세 오슬로 공항에 착륙했다.

그날의 비행기 조종사는 정말 뛰어난 조종사였다.

나는 늘 비행기가 착륙할 때마다 불안을 느꼈는데 그 비행기는 언제 착륙했는지 모를 만큼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soft landing이었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가이더는 30대 여성 표은복이다.

2~3일 와이프 하고 떨어져 있었다고 젊은 여성 가이더를 보고는 양기가 입에 올랐다.

노르웨이는 인구가 총 500만 명 정도 되고 그중 50만 명 정도가 오슬로에 살고 있으며 그중 한국인은 재외 공관원과 상사 주재원까지 포함하여 300명 정도 거주한다고 한다.

그녀가 안내한 한국인 식당은 오슬로에 유일한 한인 식당이라고 한다.

저녁 반찬으로 내놓은 소꼬리찜을 내었다.

손님이 없어 매일 간장에 넣고 삶고 찌고를 반복했는지 모두 빳빳하게 말라비틀어져 육포(jerky)보다 더 질긴 듯했고 짜기는 그냥 소금 덩어리다.

대구탕은 맛이 없지만 그나마 짜지는 않아서 그것만 홀짝거렸다.

차라리 근사한 스테이크 하우스나 랍스터 요리점에 가서 제대로 된 서양요리라도 한번 먹어야 해외여행의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기거하게 될 Rainbow Opera 호텔은 사우나가 남여 혼탕으로 되어있으니 한번 가보라는 가이더의 말을 듣고 오은진 처장님이 사우나를 한번 가보자고 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서 다음 날 아침에 가보기로 하고 그냥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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