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날(10. 4)]
바지선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으므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6시 30분부터 아침식사를 하였다.
이 호텔엔 아침식사에 scrambled egg나 sausage 또는 감자요리 따위의 hot food가 없고 차가운 cereal과 우유, 빵 종류만 나오는 continental 스타일로 제공한다.
7시 30분에 출발하는 바지선을 타고 협만을 건너야 하는데 마침 김영수 위원장이 조금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다음 배를 타야만 했다.
다행이 다음 배가 30분 후에 있었으므로 8시 15분 경에 바지선을 타고 버스에 탑승한 채 송네 피요르드를 건너 피어랜드 터널을 통과하여 계속 산과 호수 그리고 분지를 중심으로 발달된 자그마한 부락들을 지나 브릭스달을 향해 달렸다.
깊은 산악지역이어서 터널에서 터널로 수없이 계속 이어가야 했다.
지루한 버스 여행 도중 잠시간의 휴식을 위하여 휴게소에 들렀을 때 냉장고 따위에 붙이는 기념품 자석 메모꽂이 바이킹 조각품(4유로)을 하나 샀다.
그걸 좀 많이 사서 선물로 나누어 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값이 싸면서도 의미 있고 독특한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회사 책상 위 책꽂이에 익살맞게 표현된 그 바이킹 조각품을 붙여놓고 가끔 바라보며 눈가에 연연한 미소를 드리우고 작은 추억의 조각을 더듬곤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휴게소에 들러 얌체처럼 화장실만 달랑 이용하고 갔는지 우리가 들르는 시골 휴게소마다 주인이 먼저 뛰어나와 가이더에게 와서는 화장실만 이용하지 말고 무엇이든 좀 사가기를 부탁했다.
노르웨이 험악한 산골에 휴게소 하나 달랑 차려놓고 관광객들이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과정에서 이문을 남기며 살아가는데 지저분한 오물만 남기고 떠나는 한국인이 매우 얄미웠을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선물을 고를 때 값싸고 특이하며 기념이 될만한 것을 고르기보다는 한 장소에서 무더기로 충동구매를 하는 습성이 있다.
그곳 화장실이 좀 특이한 것은 대부분 건물 중앙의 지하에 화장실이 위치한다는 것이다.
휴게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노르웨이 건물은 그런 구조로 되어있다.
브릭스달로 이어지는 길은 빙하가 녹은 옥색 빙하수가 이어지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 중턱마다 계곡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폭포수가 흘러 내린다.
브릭스달 빙하 관광사업은 브릭스달 패밀리가 독점 운영하고 있는데 레스토랑, 기념품점, 빙하에 오르는 shuttle car와 마차 등 일체를 소유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빙하로 오르는 길은 폭포와 단풍으로 경관을 이루었는데 마침 비가 지척지척 뿌려대 오돌오돌 떨면서 우산으로 앞을 가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Canada에서 본 빙하는 거의 녹지 않는 빙하인 반면 이곳은 계속 녹으면서 흘러내리고 있어 머지않아 모두 녹아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하시대에 온통 뒤덮였던 얼음덩어리들이 완전히 녹은 곳(피요르드), 녹고 있는 곳, 아직도 얼어붙어 있는 곳 따위로 구분되는데 이곳은 아마도 계속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는 곳인 모양이다.
브릭스달 카페에서 먹은 대구 튀김은 꿀맛이었다.
우리는 밥과 함께 소주로 폭탄주를 한 잔씩 만들어 마셨다.
나는 브릭스달 방문 기념으로 7유로를 주고 Norway라고 씌어진 빨간 모자를 하나 샀다.
브릭스달에서 게랑게르로 이어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다.
협곡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웅장한 자태의 깎아지른 협곡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모두 입을 벌리고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협곡을 바라보며 길을 달렸다.
피요르드를 사진 찍어오라는 작은 아들 부탁도 있고 해서 View Point에서 잠시 정차해 줄 것을 가이더에게 부탁했고 우리는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웅장한 협곡이 이루어 놓은 장관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꼬부랑 산길을 내려와 게랑게르에서 한 시간짜리 페리를 탔다.
날이 추워 모두 옷깃을 여미고 배에 올랐는데 오처장님이 나를 쿡 찌르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오처장님은 어디서 구했는지 햄과 소주를 풀어 한 잔씩 돌리기 시작했다.
원래 배 안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는데 날도 춥고 우리 이외에 몇 사람 없었으므로 나도 엉겁결에 두 잔이나 마셨다.
백전노장 오처장님이 정말 좋은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배 위에서 한 시간여 동안 협만을 누비며 폭포와 바위 그리고 나무들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했다.
날씨가 추운 것이 조금 흠이었다.
게랑게르에서 숙소인 fefor호텔까지의 길은 멀고도 먼 길이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악지역이지만 도로망이 잘 포장되어 있고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는 지루한 줄 모르고 길을 달렸다.
표은복 가이더가 틀어주는 이별과 추억을 주제로 한 70년대 초반의 음악을 머나먼 이국땅에서 들으니 더욱 감상에 젖는다.
여러 가수의 노래를 한데 모아놓은 노래였는데 “꽃반지 끼고” 같이 옛사랑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런 유의 음악을 들으니 가이더의 외롭고 슬픈 추억이나 恨 같은 것이 느껴져 그녀가 가여워지기까지 했다.
옆에 앉아있던 오처장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 옆구리를 슬쩍 찌르면서
“옛날 애인 생각나는 모양이지?” 한다.
시간이 늦어지고 날이 어둑해 오자 모두 조바심을 태우고 운전사를 독촉하였고 운전사는 빠른 속도로 길을 달렸다. 산과 나무와 돌과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흘러내리는 시냇물 줄기를 따라 길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와 조화를 이룬 경관은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다.
노란 자작나무 단풍 숲 사이로 햇살에 부딪혀 반짝이는 시냇물이 졸졸졸 끝없이 흐른다.
내가 평소에 마음속에 그려왔던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우리는 당초 밤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8시에 페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페퍼로 오던 중에 오따를 지났는데 오따는 노르웨이말로 8을 뜻한다고 한다.
과거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절에 마을 사람이 모두 죽고 8명만 살아남았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페퍼 호텔은 1884년에 처음 건립되어 국왕이 사냥하고 스키 타며 머물던 곳으로 무척이나 고풍스런 최고급 호텔이다.
하지만 샤워 시설도 간이커튼을 쳐서 만들어놓을 정도로 초라한 것이어서 우리나라 여관만도 못하지만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스키어들의 애호를 받는 별 다섯 개짜리 최고급 호텔이라고 가이더는 힘주어 강조한다.
우리나라 또는 미국식 편리함에 젖은 우리가 어찌 유럽의 앤티크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
저녁식사로 비프스테이크가 나왔지만 소스가 어찌나 짠지 이를 걷어내고 감자로 중화시켜 먹는 수밖에 없었다.
애피타이저로 훈제연어가 나왔는데 그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우리는 예외 없이 팩 소주를 꺼내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문총무에게 지나치게 빈티를 내는 것도 자칫 외국인들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으니 지나쳐서도 안 되겠지만 즐길 때는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여행의 멋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문총무는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곧바로 맥주를 10병 추가 주문하였고 우리는 그걸 또 폭탄으로 만들어 품위 있게 마셨다.
양놈들 입맛에는 포도주가 좋을지 모르지만 역시 우리네 입맛에는 소주가 제격이다.
호텔 바에서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전통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몸이 너무 피곤하여 저녁 10시경에 곧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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