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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930 북유럽 여행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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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합동 북유럽 여행기

인사처 부장 조용욱

[여행 동기]

어느 맑게 갠 날 오후 김승환 인사처장님이 내 자리로 오셔서는 느닷없이

요즘 바쁘냐?” 하고 물으셨다.

보시다시피 매일 정신이 없습니다.” 했더니

그럼 해외도 못 나가겠네?”하시는 거다.

나는 , 해외요? 그런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가야지요. 혹 제가 가방 들고 수행해 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했더니 처장님은 천연덕스럽게

바쁘다며? 잠깐 내 사무실로 와봐!”하시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의 해외연수를 결정해 주셨다.

노사문제의 중간에 서서 10년 넘도록 낑낑거리는 모습이 안돼 보이셨던지 노사합동 연수회에 인사처에도 한사람 배정되었는데 나밖에 적임자가 없다며 다른 사람들이 말도 꺼내기 전에 얼른 결정을 내려버리신 거다.

나의 북유럽 연수는 이렇게 해서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연수 때문에 다른 일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 중인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매일 밤낮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어야만 했다.

 

[첫째 날(9.30)]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소풍 가는 어린 애처럼 마음이 들떠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530분에 일어났다.

여행에 필요한 짐은 지난밤에 미리 정리해 두었으므로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냥 최근에 읽고 있던 늙어가는 대한민국을 읽기 시작하였다.

인천공항 까지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데 혹시 traffic jam에 걸려 미팅 약속 시간인 10시까지 도착하지 못할까 싶어 7시에 택시를 타고 삼성동 공항 터미널에 나가 리무진 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이어서 버스는 총알처럼 날아 81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10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1시간 45분 전에 도착했으니 나도 정말 어쩔 수 없는 한전맨이다.

벤치에 앉아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한 3권의 책 가운데 한 권을 펼쳐 들었다.

책을 읽고 있자니 지난 밤 설친 잠으로 졸음이 솔솔 쏟아진다.

졸음을 떨치려고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저편에서 기웃거리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약간 대머리가 벗어지고 시골 노인네처럼 까무잡잡하고 순하게 생긴 것이 얼핏 보아도 한전인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전 사람들은 대개 순박하고 선량하게 생겨 촌스럽게 보이는 것이 어디가나 티가 난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보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슬금슬금 내 곁에 다가와서는 혹시 한전에서 오시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전국 각지의 노조간부들로 구성된 연수단이다 보니 사측 간부인 나랑 서로 알아볼 리가 없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는 춘천전력소 분회위원장 신동철이다.

그는 나이가 오십을 넘었는데도 간밤의 나보다 더 잠을 설치며 새벽차를 타고 왔단다.

아침식사도 공항 레스또랑에서 해장국을 만 원이나 주고 사 먹었다며 툴툴거렸다.

여행 가방을 공항에 맡기기 위해 라커룸을 빌리는 데에도 팔천원이나 주었단다.

우리는 10시가 될 때까지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모처럼 위원장 해외연수 간다고 인사차 들렀다가 촌지를 두고 간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무슨 선물을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이 출발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고민하는 것이 대부분 선물이다.

그냥 눈감고 지나가고 싶어도 잘 다녀오라고 내미는 노잣돈이라도 받은 경우엔 더욱 고민스럽다.

사실 나도 극구 사양했지만 절대 선물을 사오지 말라는 조건까지 달며 우격다짐으로 내 손에 쥐어 주는 처장님의 노잣돈을 받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견물생심일 수도 있으니 나중에 duty free shop이나 기념품 가게에 가서 보고 결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느새 집합 시간이 되어 구석구석에 앉아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우리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여행사에서 나온 사람이 여행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말끝에 빨간색 리본을 나누어주며 가방에 묶으라고 하였다.

공동체로 짐을 관리하며 분실의 위험을 막기 위한 작은 배려이나 빨간 리본을 단 가방들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북한 사람들 같다.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1240분발 DLM(Royal Dutch Airline:네덜란드 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내겐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늘 겪는 고통이 있다.

폐쇄된 좁은 공간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기압 차 때문에 귀가 아파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다.

끼니때가 되면 꼬박꼬박 예쁜 스튜어디스가 기내식을 내밀고 각종 음료나 술을 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닭장 속의 닭이나 양돈장의 돼지가 된 듯한 기분이다.

시차를 극복한다는 핑계로 wine을 계속 주문해 마셨다.

우리의 처음 목적지는 스톡홀름인데 직접 가는 비행기가 없어 암스테르담에서 transfer를 해야만 했다.

비행기 일정이 잘 맞지 않아 2시간 동안 암스테르담 면세점을 돌며 배회한 후에야 스톡홀름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 면세점은 물건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고 가격도 조금 비싼 편이었다.

요즘은 대한민국처럼 물가도 싸고 물건도 다양한 나라가 드물다.

하다못해 수입품목의 경우에도 해외 면세점보다는 우리나라 면세점이 훨씬 싼 편이다.

북유럽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특이하게 느낀 점은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암스테르담에서만 처음 입국심사를 하고 주변국가 간에는 Domestic line처럼 취급하여 입국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스톡홀름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더와 합류하였다.

현지 가이더 이인자씨는 내 고향 경기도 평택에 있는 작은 마을 안중에서 이민 온 사람으로 나의 3년 선배 정도 되며 고등학교까지 안중에서 졸업(안일여고 졸 : 사촌누이 동창으로 누이에게 확인)했단다.

시골 동네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나니 더더욱 정겨웠다.

20년 전에 이민을 왔다는 데 여행객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며 카리스마가 넘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버스 기사는 스웨덴 남자다.

우리들의 가방을 하나하나 받아서 버스의 짐칸에 넣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날 북유럽의 역사를 창조하던 게르만 용병들의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11시가 넘어서야 호텔(clarion)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 너무 피곤하였으므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여정을 풀고 잠을 청하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나는 충북지사 최범호 부장과 방을 함께 썼는데 최부장은 시차도 못 느끼는지 눕자마자 잠에 빠졌다.

그런 그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