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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925 고급 점심을 먹는 고위급들에게

by 굼벵이(조용욱) 202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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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5()

비교적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특별한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고 윗사람이 찾는 일도 별로 없었다.

전무님이 전화를 두 번 하셔서 국감 준비 중에 의문 나는 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긴장되는 상황도 없었다.

점심에 박인환 차장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 무안 낙지 집엘 갔다.

인사처장님이 전날 저녁 술 한잔 하실 때부터 낙지 타령을 하셨는데 결국 다음날인 어제 점심식사를 낙지 집에서 하기로 한 모양이다.

곽병철 부장과 함께 넷이서 찾은 무안 낙지집은 강동 등기소 근처에 있는 낙지 전문점이다.

식당엘 들어서니 선진화추진실장 한기식과 안규선, 김태암 부장, 그리고 자재처장 박정근, 이회창 처장이 먼저 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박정근 처장이 한 실장에게 밥을 사는 것 같다.

박처장이 한실장에게 밥을 사는 걸 보면 한실장이 정말 실세는 실세인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그를 모시려고 줄을 서는 것 같다.

그와 술을 나눈 사람들이 그걸 자랑거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도 그렇다.

실세는 실세답게 행동해야 한다.

절대 교만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 된다.

밥 한 그릇 술 한 잔을 얻어먹더라도 접대하는 사람이 편할수 있게 해야 한다.

스스로 통제하고 가치 있게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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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리에서도 손종구가 노조 박흥근처장에게 당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이즈음 최고의 실세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흥근이가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성깔 하는 손종구를 상대로 박흥근이가 나에게 하던 행동대로 했으니 나라면 몰라도 그에겐 잘 통하지 않아 붙어도 제대로 붙을 수밖에 없다.

사장 지시를 받아 교대근무자에게 독감 예방주사를 무료로 놓아준다는 공문을 보낸 모양인데 그걸 노조와 협의를 안 하고 보냈다는 것이다.

박흥근이는 교대근무자보다는 창구근무자가 오히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있고 따라서 창구근무자가 우선이어야 하는데 교대근무자만 예방접종을 실시한다고 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그걸 따지는 과정에서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박흥근이 생각도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니다.

단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이 틀렸을 뿐이다.

육두문자가 오가고 결국 손종구가 박흥근으로부터 멱살잡이를 당했다.

그게 화제가 되어 도마 위에 오른 모양이다.

(그까짓 멱살잡이를 가지고...

난 종이 구멍 뚫는 펀치로 내 대구빡을 날릴뻔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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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메인 디쉬에 앞서 애피타이저라면서 낙지를 난도질해서 참기름 양념 따위와 묻혀놓고 계란 노른자를 띄워 비벼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나와 별 뜻 없이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반 접시 인데 한 접시에 3만원을 한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낙지탕탕'인 듯하다)

낙지 몇 조각 바닥에 깔리는 수준으로 주고는 반접시라며 15천 원 씩 받은 것이다.

연포탕은 5만원인데 그 정도면 너 댓 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수준이어서 그리 과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심식사를 했다.

더군다나 인사처장이 지난번에 박정근 처장으로부터 거기서 같은 점심을 얻어먹었다며 이번엔 자신이 점심 값을 계산하겠다고 해 결국 바가지를 쓰고 만 것이다.

덕분에 점심 값으로 24만 몇 천원을 지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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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카드라고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법인카드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서 아끼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고위층 몇몇 특정인의 입맛을 채우는 데 쓰는 것 보다는 고생한 직원들 삼겹살이라도 사주면서 격려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고급 식당을 다니는 고위급 간부들도 통제해야 한다.

김사장이 골프를 잡았다며 큰소리 치지만 고급식당은 아직 잡지 못했다.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한 끼에 3만원이나 하는 점심을 먹고 다닌다고 하면 혁신과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네는 저녁 내 코가 삐뚤어지도록 먹어도 1인당 2만원을 넘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허구한 날 이리 저리 초청받아 몰려다니며 비싼 음식만 즐기고 다닌다면 그것이야말로 혁신의 대상이다.

안 봤지만 점심에도 그런데 저녁은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나도 반성해야 한다.

그 정도 값이 나가는 줄 알았다면 나는 그걸 먹지 않았을 것이다.

연포탕만 해도 1인당 1만원이 넘어서 점심 값으로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는 누군가로부터 식사대접을 받을 경우에는 반드시 가격을 알아보고 스스로 통제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사실 점심은 회사 식당이 최고다.

회사 식당에서는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 야채를 먹을 수도 있고 제공되는 음식에 들어간 식 재료의 종류를 보아도 다른 식당에 비해 월등히 영양가가 높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 식당을 비하하며 외식하러 나가서는 영양소도 적고 조미료만 잔뜩 들어간 비싼 음식을 섭취하고 온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그게 내 가장 중요한 영양보충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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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퇴근길에 유태봉 차장이 신운섭 차장과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하잔다.

순대국집에서 국밥 한 그릇 함께 먹고 가자고 해 셋이서 저녁을 먹으며 반주로 병반을 마셨다.

각자 반 병 정도를 마신 셈이다.

그게 가장 건전하고 적당하다.

집에 들어오니 호신이가 컴 앞에 앉아있다.

내가 지난번에 사 놓았던 이어폰을 주며

이걸로 하고 네가 가져간 컴퓨터 용 이어폰은 갖다 놓아라라고 했더니 아이가 좋아한다.

작은 것이지만 큰 행복을 느끼는 모양새다.

녀석이 보던 영화를 막 마치고 일어서기에

그게 제목이 무어니?” 하고 물었다.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인데 아이 인디 아이 인가 하는 영화예요.

오늘은 아빠도 그 영화를 봐야겠구나.”

그 말을 듣고 녀석이 즐거워하는 눈치다.

아빠를 위해 무엇인가 필요한 일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교감은 이렇게 생겨난다.

유별나게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작은 대화 속에서도 교감이 일어난다.

영화 '에로 세븐 데이'를 보고 한껏 부풀려 집사람을 즐겁게 해 주었다.

나이가 들면 가끔 그렇게라도 해서 적극적인 성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잠을 많이 설쳤다.

집에 와서 견지 낚시대를 만지작거린 것이 화근이 된 거다.

이번 주말에는 대공, 한빈아빠, 하얀 나비와 함께 영죽리 여울을 다녀오기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