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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1008 프라이드를 보내며 함께 울었던 밤

by 굼벵이(조용욱) 2024.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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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8()

아침에 리더십 골드를 읽다가 호신이에게 꼭 들어맞는 글귀를 발견했다.

이를 기억해 두었다가 아침 식사시간에 녀석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인생은 선택이다.

끊임없는 선택이다.

선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쾌락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이다.

그런데 만일 쾌락을 선택하면 선택받지 못한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눈 덩이처럼 커져서 나중에는 엄청난 고통으로 돌아온다.

지금의 작은 고통을 피하면 나중엔 그 몇 배의 아픔이 뒤따르는 데 그것은 자연법칙이고 자연법칙은 예외가 없다.

나중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선택을 잘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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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정신없이 엄마가 끓여준 뚝배기 불고기 먹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추석에 만들어 놓은 갈비가 남았는데 처치할 방법이 없자 집사람이 뚝배기 불고기를 만들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어제 처음 시도를 했는데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다.

어제는 당면을 너무 많이 넣어 국물이 조금 부족했었는데 오늘은 어제의 내 조언을 듣고 보완해 당면을 조금 덜 넣었다.

집사람은 그렇게 하면 모든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호신이는 그게 맛있는지 다른 반찬은 입에도 대지 않고 오직 그것만 후벼 판다.

어릴 때 잘못 길들여진 식습관이 녀석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무리 교정해 주려 해도 녀석은 말을 듣지 않는다.

일면 집사람이 그걸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만 그 때는 이미 늦다.

그걸 계속 지적해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답답하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해 왔지만 녀석은 고칠 생각을 안 한다.

천상 군대가서 2년 동안 군대 음식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교정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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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주간회의를 했다.

주간 팀장회의 준비를 위한 팀 내 예비회의다.

조홍제 차장이 멘토링 활동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렇게 이메일로 상세하게 안내를 해 주니 멘토링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좋은 생각이고 잘했어.”

조차장이 어쩔 줄을 모른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칭찬을 하는 것은 주변사람들에게도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연차장은 연수원에 가서 또 한바탕 당하고 왔다.

초간고시 개선 관련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 것인데 혁신실 친구들이 효과값을 무리하게 깎아내리려 한다.

절대로 지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당부했건만 그는 힘없이 무너져 내린 모양새다.

어떤 논리를 내세우던 끝까지 물고 늘어져 우리의 생각을 꼭 관철시키라고 강하게 부탁했건만 "네" 하고 대답만 시원하게 했을 뿐 답답한 결과를 보고했다.

일하다 보면 비록 억지 같은 주장이라도 필요하다면 대차게 밀고 나갈 필요성이 있다.

허나 연차장은 그런 강한 근성이 부족하다.

지난번에도 강하게 이를 지적했는데 배려심만 가득하고 영 약해 빠졌다.

이명환 차장은 지난번에 맡긴 행복경영 관련 6시그마 과제를 아직도 해결 못하고 미루고 있다.

다시 한번 지적했다.

이번 주 중에는 보고를 하겠다고 한다.

자기계발도 중요하지만 회사일이 우선이다.

이 친구는 지금 해외유학에 대한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기술직이면서 사무분야 유학을 꿈꾸고 있다.

어찌 보면 무척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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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시간에는 여울과 견지에 우수 조행기를 가르는 투표가 올라왔다.

제드가 도저히 판가름을 할 수 없다며 투표에 붙였는데 내 것과 장군, 그리고 모주 것 세 개를 투표에 붙였다.

나는 투표결과가 궁금해서 내 이름에 한 표를 넣으며 투표 결과를 봤더니 내가 제일 먼저 투표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렇게 해 놓고는 그게 무척 창피스러웠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반장선거에서 한번도 내 이름을 적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카페 투표에 내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 엄청 창피스러웠다.

그냥 제드에게 전화를 해서 난 기권하겠다고 빼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니면 투표 난에 기권의 글을 올려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답답했지만 약간의 호기심도 생겼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도 연차장 만큼이나 약해 빠졌다.

좀 더 강해져야 한다.

특히 나 자신에게 더 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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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을 먹으며 폐차되는 프라이드 차에 대하여 집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그 차와의 정을 못 잊어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나도 코끝이 찡했다.

그런 이유로 어제는 폐차 전에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7년 동안 너무 정이 든 차다.

온갖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 온 차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가 생각이 나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내려갔다.

가던 길에 마침 김응태 처장을 만나 집사람이 프라이드 땜에 울어서 사진이라도 찍어다 주려고 한다고 했더니 나를 따라와 프라이드 앞에 함께 섰다.

나는 차의 앞과 뒤 옆을 돌면서 서너 컷의 사진을 찍고 내 얼굴도 넣어서 한 컷 찍었다.

나중에는 견인차에 매달린 모습과 마지막 회사를 나서는 마지막 모습까지 찍었다.

그걸 집으로 가져가 컴퓨터에 넣고 집사람과 함께 연속사진으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집사람은 계속 울먹인다.

나도 목이 멘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아픔이 지나치면 슬프다.

나는 그 자동차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 노환으로 돌아가시는 프라이드 노인을 명예롭게 웃으며 보내드려야 하는데 자꾸만 울음이 난다.

프라이드는 마지막 떠날 때까지 정말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다.

죽으러 가는 노병이 마치 새 차 같이 산뜻하고 장엄하기 까지 하다.

나도 그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늙고 추한 모습이 아니고 아름답고 기품 있게 마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집사람은 그걸 핸드폰에 담고 싶다고 했다.

시간 봐서 그 프라이드를 핸드폰 대문사진으로 넣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

전형적인 안정형 스타일의 성격을 지닌 마누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