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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1222 직권남용이 명백한데 말도 못하고...

by 굼벵이(조용욱)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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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지난 16일에 외교안보연구원 교육요원으로 발령이 났다.

외교부 소속 외교안보연구원 개교 시까지는 중앙 아카데미에서 근무하란다.

인사처에 근무할 때에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시간 개시 전까지 일기를 썼었다.

그런 일상이 무너지니 앞으로는 언제 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의 생각으로는 저녁에 들어와서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면 저녁스케줄이 있는 날에는 일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천상 그런 날에는 아침에 쓰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저녁에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다.

비서실장으로 있다가 중앙아케데미로 발령난 조인국 원장은 이번 교육요원을 대상으로 무리한 요구를 했다.

전 같으면 대기기간 중 본인 자기계발이 도움이 되도록 어학공부 등을 수강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TDR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전략인 듯하나 원칙에는 어긋난다.

국방부 국방대학원, 외교부 외교안보연구원, 행정안전부 중앙공무원교육원 등 사외기관 교육요원으로 발령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소속만 중앙아카데미일 뿐이어서 근태관리만 중앙아카데미에서 할 뿐 이들을 상대로 교육을 시키거나 다른 일을 하게 할 권한이 중앙아카데미원장에게는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했다간 아작이 날 판이어서 모두들 입은 댓발이 나왔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간 TDR활동을 위한 6시그마 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오늘은 선진화추진실과 협력하여 TDR 조까지 편성하고는 내일까지 주제를 정하라는 오더까지 내렸다.

내가 보기에는 조인국 처장이 좀 오버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전무 승진을 마음에 두고 사장 뜻을 앞서서 먼저 치고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러는 듯하다.

나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11P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주장을 했었다.

그렇게 하면 어차피 누구나가 11P는 해야 하는 것이므로 노는 사람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좋은 결과를 도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조의 리더를 맡은 정부장은 이를 두고 6,70년대 군국주의 사고방식이라며 분개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이번 사건을 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항변하는 사람은 없다.

비서실장 출신 실세인 원장에게 감히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신이는 여전히 삐뚤어진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길에 녀석의 방문을 열었는데 자빠져 자고 있어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허구헌날 자빠져 잠만 자는 네놈은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자빠져 자려고 태어났어?

똑바로 살아 이놈아!”

호신이는 아무 말이 없다.

언제나 정신을 차리려는지 이녀석 보다 내 가슴이 더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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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식 전무님 전상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해본 적이 지금까지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 말은 너무도 지키기 어려운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그래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도 많이 합니다.

사실 저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에 책임질 줄 아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있습니다.

승진을 시키고 교육까지 보내주신 전무님께 너무 고마운 나머지 불쑥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해놓고는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지키지 못할 허언이나 쏟아내는 실없는 녀석으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런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던지 저도 모르게 갑작스레 그런 말이 튀어나와버렸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몸과 마음을 닦아 전무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93년 인사처 전입 이후 17년 만의 화려한 외출입니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공릉 전철역에서 내려 아카데미까지 걸어갔습니다.

길가의 돌멩이 하나, 가로수 한그루가 그렇게 정겨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매일 그렇게 이 길을 신나게 걸어 다닐 생각입니다.

전철 소요시간이 50분 정도 걸리는데 출퇴근 시간에 독서를 할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지난번 박완웅 처장님과 점심식사를 할 때 전무님께서 말씀하셨던 아보 도오루 교수의 체온 면역력도 곧바로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오가는 전철에서 다 읽었답니다.

모르긴 해도 내년 2월까지 교육원을 오가며 전철 안에서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지금껏 꿈에 그려왔던 기분 좋은 일입니다.

요즘 저희는 중앙아카데미에서 TDR을 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은 8개조로 나누어 팀을 구성하고 주제선정을 논의하였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대부분 해외사업 전문가반에 속한 요원들이어서 그쪽에 관심이 많아 리스크 관리 등을 포함한 해외사업 관련 주제를 선정하기로 하였답니다.

처음 TDR을 지시받았을 때 동요가 조금 있었습니다만 너나 할 것 없이 전 직원이 혁신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이 때 우리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가끔 이렇게 메일을 통해 전무님께 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직 어리둥절하고 정신이 없습니다만 좀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17년 동안을 회사 이발소에서만 머리를 깎아왔던 관계로 이발을 어디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버스를 어디서 어떻게 타야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모든 일들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