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1215 선의가 악의로 이해되었다니...

by 굼벵이(조용욱) 2024. 9. 10.
728x90

20091215()

어제는 인사태풍이 심하게 불었다.

물론 예견된 태풍이다.

새벽 8시에 새로 임명받을 본사 처실장과 1차 사업소장을 중앙아카데미에 몰아넣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데려다 쓸 팀장이나 2차 사업소장들을 선별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

그들도 훌륭한 사람을 뽑기 위해 힘들게 시간을 보냈을지 모르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신들이 과연 선택되어질 수 있을지를 마음 졸이면서 기다리는 1,2직급 고위간부들도 만만찮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제 나이 오십을 넘어 나름대로 중후한 삶을 살아가야할 나이에 공개경쟁 모집제도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사장은 우리에게 모두가 1년 짜리 계약직 직원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성과가 시원치 않으면 1년마다 갈아 치우고 심하게는 상당수의 직원을 무보직 시켜 종국적으로는 삼진 아웃시키겠다는 의사를 내비추었다.

정말 참담한 노릇이다.

어쩌다가 회사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 회사가 발칵 뒤집혔던 하루다.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새스(SAS)는 직원들을 위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새스는 CBS60minutes 프로그램에서 직원을 왕처럼 대접하는 회사라고 했다.

삼성도 이에 걸맞게 사옥 환경을 바꾸고 복지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포스코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다녀온 포레카는 회사가 직원들이 충분히 휴식하고 머리를 식히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란다.

모두다 직원 편의위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창의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그런 아이디어가 모여서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부고객 만족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이 최근 경영의 신조류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고객이 만족한다는 것은 회사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고 회사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곧 주인정신과 연결된다.

주인정신을 가질 때에만 진정한 몰입이 이루어진다.

몰입이 이루어져야 창의적 아이디어가 창출된다.

그런데 한전은 지금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몽둥이로 반짝 아이디어나 일시적인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지와 신뢰에 기반한 충성심은 구하기 어렵다.

만일 한전이 독점기업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경영으론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니 조택동 부장이 날 보잔다.

전날 일요일에 박인환 차장이 권태호 부장을 만났는데 차장급에서 20%를 물갈이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기술직인 배전과 송변전을 본사 주무 처실로 보내고 연원섭이를 영업처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특히 기술직은 본사 등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자기들끼리 이미 누구누구를 어디에 보낼 것인가를 계산해 놓은 것이다.

박인환이가 가져온 서류에는 차장들의 인사이동 구도가 이미 짜여져 있었다.

조택동이의 말 품새는 교만하기 이를데 없다.

전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내 말에 집중도 안 할 뿐더러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중간에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와 제 말만 이어간다. 정말 문제가 심각한 사람이다.

어쨌든 나는 우리팀 차장들 회의를 주재하고 그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어제 12시까지가 지원 마감시간이었으므로 12시 이전에 마음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한 것이다.

이판사판이니 인사처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이 된다면 기술직군의 경우 일찌감치 기회 있을 때 본류로 돌아가는 것도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이니 지원에 참고하라며 권팀장의 견해를 전달해 준 것이다.

조홍제가 먼저 손을 들었다.

계통계획처로 가겠다고 하면서 맞바꿀 수 있는 대타(송충기 차장)까지 들고 나왔다.

나는 송충기 인적사항이 든 인사기록 서류를 조택동 부장에게 가져다주었다.

12시가 다 되어가자 이명환이도 손을 번쩍 들었다.

배전건설처로 가겠다는 것이다.

허창덕 처장이 같은 지역 선배여서 그를 돌봐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임청원 부장 석에 가서 농담 삼아 한마디 했다.

: “핵심인재가 어떻고 키 포지션이 어떻고 썩세션 플랜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 다 거짓말이야.

끗발 센 놈이 핵심인재고 그놈이 앉은 자리가 키 포지션이다.”

: “그래요 형님.

우리 전무님은 간곡하게 그래선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현실이 그런 걸 어떡해요

: “우리 이명환이 핵심인재 만드는데 수 천 만원 들였는데 이제 와서 내보내야 한다니 정말 웃기는 이야기야.

사무직이 나가면 죽음이지만 기술직이 나가면 나름대로 영전이라고 생각해서 서로가 윈윈하기 위해서는 기술직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아.

그렇게 하면 우리 제도팀은 전력 손실이 너무 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한 쪽에서는 핵심인재를 만든다고 돈 처발라가면서 양성계획을 세우고 있고 한 쪽에서는 순환보직을 위해서 다 키워 논 친구를 억지로 내보내야 한단다.

나는 조직개발팀에 가 현상권 팀장과 곽병철 부장 그리고 다른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같은 이야기로 또 한바탕 너스레를 떨었다.

현팀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지만 그냥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뿐 내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는 없다.

벌써 강건너 가버린 이야기다.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한다.

오비이락인지 모르지만 내가 승진해 나간다니까 우리 팀을 희생양 삼은 것 같아 영 씁쓸하다.

******************

저녁에는 요상한 해프닝이 있었다.

박완웅 처장님 송별식을 한다고 해서 우리 팀 송년회를 다음으로 미루고 기다렸는데 저녁 7시가 넘어서도 처장님 송별회 소식이 없다.

아직 인사작업이 덜 끝났기 때문이다.

결국 할 수 없이 처장님 송별식을 포기하고 우리 팀 송별 파티를 가졌다.

화로사랑 고기 집을 우리 차장들이 좋아한다.

나는 별로던 데 우리 최준원 차장을 비롯해 다른 차장들이 거길 좋아한다.

거기서 최차장이 내게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어제 아침 회의에서 한 이야기는 기술직 차장들에게 나가라고 한 이야기와 같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상처를 준것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본의와 다르게 이야기를 잘 못해서 차장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이렇게 잘못 이야기 하거나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나에 대한 성토대회를 하던 회사에 대한 성토대회를 하던 차장들끼리 그들만의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할 듯 해 화로사랑을 나서 전철을 타기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상시 같으면 택시를 태워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을 텐데 이젠 내 상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적극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모두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이젠 이를 서러워 할 필요도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이명환 차장이 나를 따라붙어 동행해 주었다.

둘이 교대역에 내려 생맥주 한 잔씩 더 하고 헤어졌다.

영 기분이 씁쓸하다.

*****************

음과 양이 공존하듯 선과 악은 늘 공존하는 것 같다.

선만 존재한다고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악의 존재로 선의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악이란 말이 나왔다.

본의 아니게 가끔씩 악역이 주어지는 이유도 다 이런 이유가 아닌가 모르겠다.

인생은 오묘한 것이고 그래서 자연은 늘 조화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