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10

20100703 중국여행 다섯째날(영은사와 육화탑)

by 굼벵이(조용욱) 2024. 11. 22.
728x90

다섯째 날

 

어제 양 꼬치 덕에 과음을 했는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샤워를 한 후 아침 식사를 하러갔다. 

그곳은 호텔 식당이 제일 꼭대기 층인 17층에 위치해 있다. 

그동안 우리가 묵었던 다른 어느 호텔보다 아침식사 요리도 다양하고 맛도 괜찮았던 것 같다.

 

영은사와 육화탑

 

귀국하는 비행기가 오후 세시에 출발하므로 오전 시간 동안 항주의 사찰 영은사와 육화탑을 구경했다. 

영은사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다. 

이 무더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석구석에서 향을 피우고 열심히 불공을 드린다. 

사찰 입구 바위산 飛來峰에는 곳곳에 바위를 파내고 석불을 조각해 놓은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10~14세기에 조각된 것으로 당초에는 330여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상당부분 유실되어 150여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영은사는 동진(東晉) 시대에 인도 승려 혜리(慧理)에 의해 지어졌으며, 선종 10대 사찰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부처상들이 모두 인도인의 모습을 닮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모습과 얼굴표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육화탑은 항주를 흐르는 전단강의 대 역류를 막고자 하는 기도를 반영하여 세운 탑이란다.

이 탑의 이름인 육화(六和)라는 의미는 원래 불교에서의 규약인 '육합(六合)' , '천지사방(天地四方)'의 의미다. 

외관은 13층이며, 내부는 7층으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는 탑에 올라 항주 시의 전경을 감상했다. 

육화탑은 서호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므로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항주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중국여행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말로만 듣던 중국을 처음 가본다는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었지만 중국의 현재를 이해하고 나름대로 중국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중국은 세계의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빠른 속도로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공산주의의 본질조차 버리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사회주의 체제이다 보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직접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데 국민적 저항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순식간에 소주 공업원구가 만들어지고 포동 지구 같은 경제 중심도시도 순식간에 생긴다.

개발이 어렵고 느리게 가더라도 국민적 컨센서스를 도모한 후에 가야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중국이 가는 길처럼 국민적 컨센서스를 무시한 채 정부의 뜻에 따라 일사천리로 가는 길이 경제발전의 올바른 길인지 모르지만 이 두 가지의 가치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정치적 이해관계 없이 정책결정의 단계부터 충분한 이유와 타당성을 가지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빠르게 실행해 나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식의 빠른 경제개발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나 국제관계에서의 역할을 볼 때 중국의 변화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이번 엑스포는 중국인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우정과 사랑을 심어주는 컨셉으로 많은 중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남은 기간동안 최대한 많은 중국인이 한국관을 관람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각인효과를 얻을 수 있는 어린이나 젊은 세대들이 한국관을 많이 찾도록 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우호세력을 확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