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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첫눈이 오고나서 김장을 했다.
그런 눈이 올줄 모르고 그런 날을 김장날로 잡은 탓이다.
배추며 무며 쪽파며 모든 게 눈 속에 파묻혀 있어 눈이 부시도록 흰 눈 속을 파헤쳐
마치 보물 캐듯 배추를 따내고 달랑무, 김장무를 뽑고 쪽파를 캐냈다.
김장무로 심은 무씨가 폭염에 타 죽어 네번이나 다시 심었더니
차수별로 제각각 자라 용도가 다양하다.
1차에 살아남은 놈은 김장무로 제대로 자라 비닐하우스 안에 저장해놓았다.
내 밭 하얀 눈 속에서 맹추위를 이겨내며 순수하고 고고하게 자랐기에
아마도 내 몸엔 산삼보다 좋을 거란 기대가 크다.
한겨울 과일 대신 입가심 후식으로 시원하게 먹을 참이다.
2차로 심은 놈은 동치미 감이고 3차는 달랑무 김치로 제격이다.
눈 속에서 캐내느라 발이고 손이고 꽁꽁 얼었고
가뜩이나 부실한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내가 이 짓을 왜 하지?' 싶은데
올해도 꾸역꾸역 해 냈다.
고춧가루고 마늘이고 모두 내 밭에서 내가 심어 거둔 것들이다.
집사람과 처형이 추위 속에서 김장거리를 다듬고 절이느라 힘들어하며 내년부터는 하지 말자기에
그래도 여럿이 같이 김장하며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 김장 안에 농사꾼인 내가 지난해 가을에 심은 마늘과 봄에 심은
고추, 여름에 심은 무, 배추, 쪽파까지 모두 들어있다.
내 일년의 삶이 녹아 있고 그걸 오병이어처럼 나누어 먹는 거다.
그래서 남자들이 힘들어도 이 짓을 계속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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