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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무들기 농장

가을은 망나니 계절이다

by 굼벵이(조용욱)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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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들깨를 베었다.
농부에게 가을은 망나니 계절이다.
어떤 놈은 목을 치고, 어떤 놈은 허리아래를 잘라버리고, 어떤 놈은 아예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다행히 어릴때 소 꼴을 베어 본 경험이 있어 낫질에 익숙하다.
그래도 오후 한나절 내내 걸려서야 들깨 베기 작업을 마쳤다.
협착증 환자에겐 무리지만 즐겁게 일했다.
풀과의 전쟁에서 완패한 직후에 심은 들깨라 결기가 지나쳐 과다투약했는지 심어논 들깨마져 비실비실 자빠져버려 보식까지 했는데도 엉망으로 자랐다.
고구마도 그렇고 들깨도 그렇고 앞으론 절대 보식하지 않으리.
농사는 하늘이 짓는거다.
비실비실 죽는 데도 다 뜻이 있으니 그 뜻을 거슬러 보식할 필요가 없다는 걸 체득했다.
그래도 마지막 까지 잘 관리해 멘토아짐에게 막걸리 값이라도 보태드려야겠다.
다행히 고구마는 쏟은 정성만큼 수확을 내 주어 소주값은 나올 듯하다.
처형이 팔아준다고 해 집사람 차에 실려보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흙파서 벌게 될 돈인데 우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의미있게 사용할 생각이다.
그래봤자 아짐과 소주나 마시겠지...뭐.
그래, 그것도 의미있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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