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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자유의 불꽃 (볼프람 아일렌 베르거)

by 굼벵이(조용욱)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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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 자신을 선택함으로써만 인간이 된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을 선택하기를 거부하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개인 아래로 사회를 종속 시키는 것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며 결과적으로 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이다.(시몬 베 유)
(이건 좀 지나친 생각 같다.
사회는 개인이 합의하에 스스로를 종속시키며 만든 집단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고통을 겪는 능력과 거짓말을 하는 능력 두 가지 능력만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인간이 하는 모든 거짓말의 뿌리이자 고통에 대한 유일한 변명인 종교와 싸울 것이다.
나는 인류 최대의 저주는 이상을 순수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따라서 일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확신한다.
즉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게 살고 결과적으로 사고를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완전히 제거하는 능력이다.
나는 그것을 보여 주는 이용 가능한 모든 사실을 모을 것이다.
이것은 표적을 정해서 계획대로 진행하는 위선자 뿐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자신만 의지해서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확신과 실제적 삶 사이의 완벽한 반전을 용인하면서도 확신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훨씬 더 위험하고 절망적인 모든 사례에 적용 된다.
이런 인간들은 자신의 이상 혹은 삶 중 어느 한가지를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 하지만 일반적으로 두가지 모두 가치가 없다(랜드)
 
나는 정말로 삶이라는 고속도로에서 역주행 하는 운전자인가? 
오히려 상향등을 켜고 차례로 나에게다가 오며 거칠게 경적을 울려대는 대중이 역주행 운전자가 아닐까?
철학적으로 꾸려 나가는 삶의 토대에 대한 일종의 의심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이기적인 인간은 이상을 그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그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단지 대중의 요구에 맞추어 성공과 명성을 획득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 경우 승리하는 것은 그가 아니고 그 이상과 표준도 아니며 단지 그의 물리적인 껍데기일 뿐이다.
실제로 그런 인간은 대중의 노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의 이기적이고 야심만만한 인간이 본질적으로는 자아를 잊었거나 자아가 없다고 말할수 있다.
반대로 진정한 형태의 자아관련성은 자신의 더 높은 이상과 가치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의 이기주의는 부차적인 가치가 아니라 본질적인 가치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위해 사물을 요구함으로써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고통을 믿지 않기 때문에 고통 받지 않는다.
그에게 패배와 실망은 싸움의 일부일 뿐이다.
그의 감정 상태는 자신의 능력을 알기에 지속적으로 느끼는 삶의 희열이다.
그 희열은 상시적이고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런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에게 세계는 감정의 공간이 아니라 행동의 공간일 뿐이다.
그의 감정은 완벽하게 논리의 통제 아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의 논리를 따라가지만 이 둘은 분리 될 수 없다.
(하워드 로크)
 
(남녀간의 상열지사를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 같다.
짝짓기와 사랑은 구분되어야 한다.
짝짓기 감정은 극단적 이기주의에서 출발한다.
짝짓기라고 하는 이기적 목적을 숨기고 잠정적으로 보이는 이타주의가 짝짓기 감정이다.
반면 사랑은 적극적 이타주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짝짓기 감정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 즉 이타주의를 학습하게 된다.)

진정한 목표는 모든 사물에서 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이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을 우리를 통해 보는 것이다.
(내가 곧 신이다.
내 안에 신 있고 나는 신의 숙주다.
그 신이 떠나는 날 나는 죽는 거다)
모든 사실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안에서 신을 읽는다는 것이다
아인 랜드는 자유의 진짜 적으로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도입 했다.
그에 따르면 이타 주의자는 자신을 주로 타인의 모습에 따라서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은 권력에 굶주려 폭정이나 조작을 목표로 삼든 타인을 후원하거나 심지어 구원 하려는 자기 생존 목표를 갖고 있든 상관 없이 타인의 존재와 관심사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모든것은 윤리적 행위의 원래 수신자로 누구를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나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집단적인 뇌나 집단적 사고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자신의 뇌를 사용해서 타인을 위해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기능은 사적이다.
그것은 공유 하거나 양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의존적이다.
우리는 개인주의를 도덕법칙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을 실현하는데 있어 자본주의를 개인주의의 적절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를 구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