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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조행기

[스크랩] 피라미의 격려

by 굼벵이(조용욱) 200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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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우려거든 식물을 키워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번 일주일 넘도록 출장을 다녀왔더니 우리 사무실에서 풍만한 자태를 자랑하던 관음죽이 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노발대발한 일이 있었다.

사무실에 함께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을 불러놓고 당신들도 지금부터 열흘간 굶어보라, 그리고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느껴보라고 했다.

다행히 뿌리는 어느 정도 살아있어 곧바로 식물원에 후송조치하여 가지 몇 개를 살아 올렸다.

지금 내 책상 옆에서 푸르디푸르게 예쁜 새순을 쏟아내며 보이지 않는 사랑을 전해주는 관음죽이 바로 그 관음죽이다. 아마도 그 녀석은 나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며 애첩처럼 목숨을 다해 내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 후로 내가 없어도 가끔씩 물을 주는 이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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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더듬는 것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야릇한 즐거움을 준다.

지난겨울 목계의 여우섬을 수없이 들락거리다가 한동안 발길을 끊었었다.

장마 끝에 온 맑은 주말을 즐기기 위해 강을 찾던 중 다른 강들은 물빛이 흐려 있을 것 같아 여우섬을 다시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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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준과 함께 가는 길에 여주휴게소에 들러 아침식사를 했다.

목계에 가는 길이면 언제나 들러서 아침을 해결하던 곳에 다시 들러 아침식사를 주문하니 지난겨울의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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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섬으로 들어서는 뚝방에서 바라본 샛강의 물길은 정말 푸르고 시원하다. 언제나 처럼 갈매기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다.

차동차로 물살을 가르며 작은 개울을 건너 미끄러지듯 달리는 모랫길은 또 다른 흥분을 자아낸다. 그동안 수없는 차들이 여기서 고생을 하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었다. 빠질 듯 하면서도 스르르 미끄러지며 달려가는 늙은 애마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가끔 자동차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녀석도 나와 함께 그 모랫길을 달리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같다. 자신 만이 더 잘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때 기계고 사람이고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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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보다 물이 늘었다.

돌 어항은 완전히 물에 잠기었다.

하늘하늘 흔들리던 버들가지도 정돈되지 않은 선머슴 머리마냥 삐쭉삐쭉 뻗어 나오고 60년대 빡빡머리 기계충처럼 군데군데 야생초가 모래밭에 그득하다. 푸르고 힘차게 달리는 여울물처럼 여울 가 주변 모래밭도 힘찬 역동이 흐르는 것 같다.

저 여울 속에는 얼마나 힘찬 모습으로 물고기가 떼를 지어 여울의 노래를 즐기고 있을까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절로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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넣자마자 금방 입질이 오는데 묵직하다.

옳다! 대박의 장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야릇한 흥분 속에 배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강준치가 올라온다.

기대도 잠시, 이어지는 피라미 홍수 속에 작은 누치의 꿈을 흘려본다.

피라미 입질이나 누치 입질이나 비슷해서 구분이 잘 안 간다. 그러다보니 피라미 입질에 긴장이 계속되지만 입질만으로 끝나거나 쫄래쫄래 피라미가 달려온다.

하루 온종일 바닥과 작은 입질들을 읽으며 얼마나 정성을 들여 신중하게 시침질을 했는지 허리와 어깨가 뻐근하다. 지난 주 내내 긴장의 연속에서 말 못할 속 앓이가 많았는데 온 신경을 바닥과 입질과 시침에 쏟다보니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상쾌한 마음과 함께 허리와 어깨에 작은 통증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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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사이버 준만큼 편한 사람이 없다.

가끔 물에 들어서 흐느적거리며 자신의 합죽대를 시험하고 싶어 할 뿐 아무런 욕심이 없다. 아예 고기 잡을 욕심도 없는 것 같다.

그는 섬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바다와 돌 밖에 사람도 별로 없는 섬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사람에 지친 것도 아닐 테고 내가 보기엔 그냥 자연이 좋아 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하기야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자연이 자연스러워야 가장 완벽한 것이 아닐까?

나대지 않으며 자연처럼 살아가는 그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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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오후 늦은 시간에야 나는 작은 적비 한 마리를 걸어낼 수 있었다.

강준치 한 마리에 적비 두 마리 작은 돌돌이 한 마리에 중간 중간 올라온 다수의 피라미가 오늘의 조과다.

그래도 오늘의 장원은 역시 피라미다. 중간 중간 피라미가 없었다면 나는 그렇게 오래 물 속에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6자나 7자의 멍보다도 피라미의 격려가 나를 여울로 부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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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떨어진 나를 무사히 서울로 데려다 준 사이버 준에게 감사한다.

출처 : 여울과 견지
글쓴이 : 굼벵이(조용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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