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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조행기

[스크랩] 유난히도 짧은 봄

by 굼벵이(조용욱) 2007.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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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봄은 유난히도 짧다.

내가 지독히도 좋아하는 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니 정말 서운하다.

가뜩이나 짧은 봄에 회사 Top까지 바뀌시어 동분서주하는 바람에 여견도 눈팅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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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 학과를 선택하면서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엘 가지 못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이나 철학 쪽은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모두들 말렸고 우골탑의 어려움 속에 부모님이 바라는 판검사나 고등고시라도 준비할 수 있는 학과에 가야 효자소리를 듣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효자소리는 못 들어도 사회가 바라는 이상형으로서의 페르조나에 길들여져 있는 나는 반항도 못하고 스스로 내 뜻을 꺾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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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 넘어 늘그막에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 한번 해 보겠다고 지난봄에 상담심리학과 3학년에 편입학을 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공부라고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영어는 매일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쉽게 녹이 슬기에 사이버 영어교육까지 신청을 했더니 생활이 말이 아니다.

글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에 독서 통신교육까지 받다보니 세 가지가 한꺼번에 밀려 아무리 요리 조리 시간을 쪼개도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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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견지는 줄기차게 다녔다.

지난 6월 2일에는 홍천강 모곡에서 돌돌이들과 놀았고, 6월 6일 현충일에는 막동이님과 함께 백양리에서 즐겼다.

백양리는 댐의 방류와 더불어 갑자기 물이 불고 수압이 세므로 조심해야 한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물고기가 물어주어 누치 15수 정도를 낚았는데 그 중 한 놈은 52센티 짜리 멍짜다.

내 옆에서 ‘한여울’의 우동걸 씨는 64센티를 낚았는데 녀석의 모습을 보니 정말 항공모함처럼 생겼었다.

여울이 좁아 많은 사람이 설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물을 노리는 사람은 한번쯤 다녀와 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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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9일에는 전주 만경강 상류엘 다녀왔다.

전주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이 놀러오라고 해 한 달 전부터 날짜를 예약했었다. 지역사령관 치오님과 관오님에게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해 두었는데 모두 어찌나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지 모른다. 자리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쉴만한 물가 김목사님도 일부러 전화를 주셨다.

만경강 상류 대아리 강물은 샘에서 방금 퍼내온 물처럼 맑고 시원하다. 어찌나 깨끗하던지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전날의 숙취 탓도 있음)

누치는 없지만 갈견이가 심심치 않게 물어주고 가끔 마자도 올라온다. 모두들 혼인 색을 띄어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마자는 완전한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녀석들을 붙잡는 순간 암놈은 알을, 수놈은 정액을 방사한다. 종족번식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리비도는 생의 힘찬 에너지고 그것은 성욕으로부터 출발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숭고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녀석들은 마지막 죽을힘을 다하여 자신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매운탕에 복분자주 몇 잔으로 점심을 채우고는 얼른 물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나를 친구들이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고 이사람 저사람 술잔을 받다 보면 어찌 될 것이라는 게 눈에 보이므로 나도 삶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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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갈견이 50여수 하고 물에서 나와 전주 시내로 들어와 술판을 벌였다.

친구를 만나 혀가 꼬일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든 것이 뒤섞이고 다음 날엔 그 이야기의 절반도 기억 못한다. 그래도 그게 좋다며 계속 잔이 오간다.

관오님은 사이버준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미리 자리를 떴고 치오님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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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집사람의 생각을 따라 선운사엘 들렀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모습이 너무도 이국적이어서 나는 두어 번 다녀간 곳이지만 집사람은 내 이야기에 더하여 늘 환상 속에 선운사를 그리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마애불 까지 이어지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지만 올라올 시간이 빠듯해 얼른 내려와야 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沼에는 갈견이가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줄을 흘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절 앞에서 낚시질 한다며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욕할 것 같아 얼른 생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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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는 우리 집사람에게도 소박한 자유와 희망을 주었다. 물에는 안 들어갈지라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내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그녀에게 준 것이다.

하지만 내 늙은 애마의 한 켠에는 늘 그녀를 위한 바지장화와 구명조끼가 내 마음처럼 실려져 있다. 그것들이 늘 애타게 그녀를 부르는지도 모른다. 올 여름에는 꼭 한번 그녀에게 그 것들을 입혀보고 싶다.

 

백양리 52센티 멍짜를 들고 있는 모습을 64센티를 잡은 사람이 찍었음

선운사의 초여름 풍경입니다

선운사 계곡을 따라서

녹차밭도 보이더군요

이른바 갈견이 밭입니다.

 

출처 : 여울과 견지
글쓴이 : 굼벵이(조용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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