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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괴강, 장마에도 훌륭한 견지터

by 굼벵이(조용욱) 200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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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강, 장마에도 훌륭한 견지터

 

나도 누구처럼 화려한 휴가를 다녀오고 싶었다.

여기 저기 다니며 물 좋은 곳에 몸 담그고 물고기와 놀고 싶었다.

단양을 중심으로 좋은 견지터가 많아 한 달 전부터 대명콘도 예약을 서둘렀다.

여름 성수기에는 예약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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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가엔 집사람을 데리고 가서 꼭 제대로 된 견지인으로 만들어 남보란 듯이 누구네 가족처럼 함께 견지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집사람에게 함께 여행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 결국 또 혼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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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연속 신나는 견지여행을 즐겨볼 셈으로 덕이도 일찌감치 넉넉하게 준비하고 계속 일기예보를 주시하는데 예보도 영 오락가락 한다.

제드에게 전화를 걸어 토요일엔 괴강에 들렀다가 수안보에서 일박을 한 후 단양을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별 일 없으면 그러겠다고 했다.

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 금요일 오후에 누치가리님이 전화를 했다.

청류선배님하고 남한강에 대물을 사냥하러 가잔다.

제드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오히려 밀양강 계획이 있다며 내게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너무 멀다며 그냥 남한강으로 기수를 돌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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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토요일 새벽을 맞았다.

이것저것 채비를 하고 있는 중에 누치가리님이 전화를 했다. (AM 5:30)

청류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니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전갈이다.

그동안 꿈꿔온 휴가가 초장부터 좀 이상하게 꼬이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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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내 생각을 좇아 강행군을 했다.

꼭두새벽부터 차를 몰아 여주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남한강을 다시 찾아가는데 비가 계속 뿌려댄다.

천둥 번개도 심상치 않다.

강물도 엄청 불어있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빗속에서 혼자 강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미친 사람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돌아서는 길이 영 아쉽다.

비가 그치기를 한 20여분 기다려 보았다.

천둥 번개와 함께 장대같은 비가 계속 내린다.

할 수 없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칠성댐 바로 밑이면 물색도 괜찮을 거고 누치가 재난을 피해 비교적 맑은 물인 상류로 올라 올 것이란 생각에 괴강으로 기수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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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굽이굽이를 돌며 산과 들의 내음을 맡으면 가슴까지 환해진다.

마치 나도 자연의 일부인 양 어질어질한 취기마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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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강엔 다리 밑에 가족단위로 삽겹살을 구워먹으러 온 두어 가족이 있을 뿐 견지꾼은 없었다.

줄을 흘리자마자 돌고기가 연신 바늘을 물고 늘어진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이 한참 산란을 준비 중인 것 같다.

누치도 종종 입질을 보내더니 코앞에서 대물 한 놈이 줄을 끊고 가버렸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통에 비를 피해 다리 밑에서 견지를 하다보니 포인트가 잘 안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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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돌고기 4~50수를 다듬어서 매운탕 거리로 수안보 식구에게 가져다주었다.

수안보 식구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대했지만 비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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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단양으로 향했다.

물빛은 황토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당초의 화려한 휴가계획이 점점 초라한 빛깔로 퇴색되어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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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콘도에서 사이버 준 식구들과 만나 맛나식당에 가 저녁을 함께 했다.

술도 꾼이 있어야 제 맛이 나는데 사이버준은 술을 일체 입에도 안 대니 혼자서만 꼴짝거린다.

제드가 함께 했으면 금상첨화였을 거란 생각을 잠시 했다.

다행히 사이버준은 술잔에 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술병을 들이댔다.

남들 저녁 식사하는 그 짧은 시간에 난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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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어디 샛강이라도 찾아 피라미 낚시라도 해 볼 요량으로 박순복 공방을 찾았다.

박선배님은 윗녘이든 아랫녘이든 본류로 흘러드는 샛강에 줄을 드리우면 피라미는 많이 붙을 거란 귀뜸을 해준다.

온달동굴 앞 샛강에 낚시꾼이 빗속에 대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흘러드는 샛강 물은 아직 물빛이 괜찮았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채비를 하고 강으로 내려가려는 찰나 물빛을 보니 벌써 샛강마저 황토 빛으로 변해있어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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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를 접고 상류로 상류로 남한강의 발원을 찾아 달려보았다.

비가 계속 퍼붓는다.

갈수록 물빛은 황토 빛이 진하다.

그냥 드라이브나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빨리 바꾸었다.

그날 저녁에는 정년퇴임 후 단양에 내려와 사시는 회사 선배님을 찾아 함께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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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사이버준 가족과 헤어져 홀로 괴강을 다시 찾았다.

괴강 교각 밑에서 혼자 줄을 흘린다.

처음부터 돌돌이가 계속 물어준다.

올라오는 고기마다 그 예쁜 입술에 키스세례를 퍼부으며 “가서 할아버지 모셔오너라” 는 주문을 하고 돌려보냈다.

피라미에 20센티가 넘어가는 마자, 끄리 따위도 함께 올라온다.

하지만 커다란 바위나 돌들이 워낙 불규칙하게 널려있어 바닥 걸림이 무척 심했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누치와 즐겁게 놀다가 저녁에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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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현명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올인 했다.

덕분에 누치가 크기별로 심심찮게 올라오는 견지를 호젓하게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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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생은 선택이다.

비가 오는 바람에 휴가를 망쳤다는 생각보다는 비가 오는 바람에 호젓하게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선택을 했더니 기분까지 상쾌하다.

출처 : 여울과 견지
글쓴이 : 굼벵이(조용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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