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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이미지 인문학(진중권)

by 굼벵이(조용욱) 2019.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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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현실이 감각에 비친 가상에 불과하다고 봤다

그에게 참된 것은 이데아의 세계요 현실은 그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데모크리토스 같은 유물론자 역시 현실을 가상으로 간주했다

현실은 그저 감각에 비친 이미지의 향연이요 이 허깨비의 진정한 실체는 원자의 배열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의 바깥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의 바깥인가

물론 자연의 바깥이다

인간은 자연의 밖에서 자연과 마주섬으로써 비로소 제작 능력이나 언어능력 같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자연의 바깥으로 나온 인간은 이제 자연을 낯선 힘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서 싸우며 살아야 한다

성서는 이 힘겨운 과정을 신의 형벌로 묘사한다

노동의 수고를 묘사한 이 창세기 설화는 주어진 세계에서 만들어진 세계로 이행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의 신학적 반영이다

​신에 의해 주어진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대안적 세계를 만들어 사는 것 자체가 인간의 실존이라는 의미다

​디자인이란 이미 있는 것의 모상을 뜨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의 모형을 만드는 작업이다

​우리에게 사람 동물 식물 기계 산과 바다로 보이는 모든 것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난 가상일 뿐 그 실체는 미립자의 조합이다

​​니체에게 '진리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다'

그에게 진리가 사라진 세계의 허무를 견디게 해 주는 것은 가상을 향한 의지뿐이다

모든 예술 행위는 우리가 무심코 넘겨 버리는 것을 잘 볼 수 있게 환기시키는 것이며 작가란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것을 보게 하는 일종의 우체부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의 어원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라틴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이미 이미지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얘기다

​가상은 실재가 있을 때만 허구다

실재가 사라진 곳에서 그 허구는 실재보다 강렬한 초실재가 된다

모든 것이 변경 가능하고 아무것도 지속적이지 않다

​사진적 사실이란 결국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니체의 말을 다시 불러낸다 '진리 보다 중요한 것이 예술이다'

​역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환상의 재료, 허구의 배경이자 농담의 소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