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자 박원희
1986년에 태어나 대전의 중학교를 졸업한 뒤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들어갔다. 2004년 2월, 민사고를 2년 만에 수석으로 조기졸업하고 곧이어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포드, 코넬, UC 버클리, 존스 홉킨스, 듀크, 미시건 주립대, 워싱턴대, 노스웨스턴대 등 미국의 명문대학 10곳에서 동시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박원희는 미국 대학의 교양과정을 미리 고등학교에서 이수하는 11개AP(Advanced Placement 대학 학점 사전취득제) 과목에서 모두 5.0 만점을 받았다. 미국 대학 진학 적성검사인 SAT Ⅰ은 1600점 만점에 1560(99퍼센트)점을 받았고, 6개의 SAT Ⅱ 과목에서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박원희는 최종적으로 하버드를 선택했다.
▣ Short Summary
전 일간지와 잡지를 동시에 장식한 기사가 있었다. 한국의 학생이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미국의 명문대학 10곳에 동시 합격했다는 이야기였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17살의 어린 소녀이고, 외국에 유학이나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순수토종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학생의 이야기는 더욱 많은 화제를 모았다.
나의 피눈물 영어정복기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영어는 재미있게 배워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물론 학년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재미보다는 피나는 노력이 따라야겠지만, 적어도 영어를 처음 접하는 어린 시절엔 ‘재미’와 ‘흥미’가 중요하다. 놀면서, 춤추면서, 요리를 만들면서 배웠던 어린 시절의 영어는 일부러 암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기억에 남았다.
Phonics & Pattern English
‘파닉스(phonics)'란 영어 철자(spelling)와 발음과의 관계를 말한다. 영어의 80퍼센트가 규칙에 따라 발음되기 때문에, 파닉스를 공부해두면 영어 공부에 상당히 효과적이다. 내가 파닉스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파닉스 교재 복사본과 카세트 테이프 복사본을 구해온 것이었다. 6개월 과정의 카세트 테이프 50여 개를 단 두 달만에 끝내버렸다.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무엇이든 양껏 해야만 기분이 좋아졌다. 파닉스를 공부하고 나자 처음 보는 단어도 쉽게 읽혔다. 각각의 스펠링이 갖는 음가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는 학원에 가서 배운 것이 ’패턴 잉글리시(pattern english)'였다. 같은 패턴에 단어만 바꿔넣어 연습하는 것이었다. 이 패턴을 배우고 나서부터 ‘Can you ―?'로 시작하는 문장은 입에서 쉽게 나왔고,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는지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회화의 간단한 패턴을 배우고 나니.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도 저절로 영어가 튀어나왔다. 기초가 닦이면 응용은 시간문제다.
꾸준히 오래오래, 성실하게
우리 어머니의 교육철학 중 하나는 ‘어떤 공부든 한번 시작했으면 꾸준히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원을 그만둔 다음에도 영어 일기를 꾸준히 썼고, 학교 숙제와 상관없이 영어 동화책을 읽었다. 중학교 때는 교과서 한도 내에서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에 실력이 그다지 향상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꾸준히 영어경시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영어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음이 많이 좋아졌고, 영어 문장력도 어느 정도 기르게 되었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천천히,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라는 말처럼, 영어는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
영어단어를 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세 가지
유학을 가려면 SAT와 토플을 봐야 한다. 이런 시험의 기본은 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이다. 영어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시험뿐만 아니라 영어 원서를 보며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 접두어(a prefix)와 어근(a radix)을 활용한 단어 외우기 : 쉬운 예를 들어보자. 접두어 ‘de-'는 ’down from, down to'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increase'가 ’위로 올라가다‘의 의미라면 ’decrease'는 ‘아래로 내려가다’, 즉 ‘감소하다’라는 뜻이 된다. 어근을 예로 들어보자. ‘polyonymous'라는 단어는 ’poly'와 ‘onymous'로 구분할 수 있다. ’poly'는 ‘many(여러 개의, 많은)’의 뜻이고, ‘onymous'는 그리스어의 ’onoma 또는 onyma'에서 기원한 ‘name(이름)’의 뜻이다. 그래서 ‘polyonymous'는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이라고 쉽게 외울 수 있다. 또 ’onymous'가 이름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다면 ‘anonymous'역시 이름과 관련된 단어라는 걸 생각해낼 수 있다. 그리스어에서 온 접두어 ’an-‘은 ’un-'과도 일맥상통하는데, ‘not, without(없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로 ‘anonymous'는 ’이름이 없는, 익명의‘라고 쉽게 외울 수 있다. 사실 모든 단어를 이런 식으로 외울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방법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단어의 의미를 유추해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 연상법으로 외우기 : 나는 영어에 우리말 의성어나 의태어를 접목시키기도 하고, 단어의 이미지에 맞게 희한한 말들을 덧붙이기도 하며 외웠다. 이런 방법을 ‘연상법’이라고 부른다는데, 그런 거창한 이름을 갖다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pugnacious'라는 단어는 몇 번을 외우고 또 외워도 생소하기만 했다. 한참을 입으로 중얼거리다 보니 문득 우리말의 ’퍽!‘이라는 의성어가 떠올랐다. 이 단어의 뜻은 ’싸움하기 좋아하는‘이다. 그래서 단어장을 들고 다니면서 “퍽! 퍽! pugnacious, 때리기 좋아하는, 싸움하기 좋아하는”이라고 소리를 내며 머리에 입력시켰다.
․ 주변 사람들과 함께 외우기 :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경우에는 사람들과 함께 외우는 방법을 써봤다. 실생활에서, 그것도 장난을 섞어 단어를 외우다 보면 공부의 지루함도 날려버리고 기억력의 한계도 넘어설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짧은 시간 안에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단어를 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외워야 할 단어의 양이 많을 때에는 일일이 손으로 적으면서 외울 시간이 없다. 그럴 땐 30분이나 1시간 정도 시간을 정한 후, 눈으로 단어들을 보면 서너 번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눈으로 단어의 스펠링을 훑고 뜻 부분을 소리내어 읽는다. 그 단어의 유의어도 같이 소리내어 읽은 다음 시간이 허락하면 예문까지 읽는다. 중요한 건 입으로 반드시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눈으로 스펠링을 훑으며 입으로 단어를 소리내어 읽는 방법으로 두 페이지 가량 진도를 나간 후, 다시 처음 지점으로 돌아간다. 단어의 뜻풀이와 유의어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자신이 맞히는지 못 맞히는지 테스트를 해본다. 틀린 단어는 그 자리에서 세 번 정도 읽고, 그래도 잘 외워지지 않으면 형광펜이나 색연필로 표시해둔다. 외우지 못해 표시해둔 단어들은 일주일 후에 다시 한번 읽어본다. 결과적으로는 단시간 안에 최대한의 단어를 외우는 효과를 거두었다.
영어 소설 속에 기꺼이 파묻혀라
민사고에서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들이대며 읽으라고 했을 때, 거의 절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민사고 예비과정에 입학했을 때 나는 무조건 제2 자습시간인 밤 10시부터 12시까지는 영어로 된 작품들을 읽는 데 할애했다. 책마다 다르지만, 그 때는 1시간에 평균 10페이지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그런데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읽어나갔더니,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시간당 20페이지쯤 읽게 되었다. 갑자기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진 건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였다. 찰스 디킨스의〈Great Expectations(위대한 유산)〉은 문장이 복잡한데도 1시간에 30페이지 정도로 읽어나갔다. 책 읽는 속도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영어 독서를 꾸준히 한 결과는 여러 군데에서 빛을 발했다. SATⅠ시험의 ‘Reading' 섹션의 긴 지문들을 속독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책 속에 나오는 단어들 중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문맥 속에서 유추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어 에세이 쓰는 것이 수월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영어에 대한 독서를 통해 ’언어적 감각‘을 터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로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영어 독서는 필수다.
공부에 왕도는 없지만 정도正道는 있다
노트 정리의 제왕이 돼라
공부하기가 갑자기 까다로워지는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상식 수준에서 배우는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에 들어가면 과목별로 깊이 있는 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공부야말로 대학 공부까지 이어지는 기본이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노트정리가 아닐까 싶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내용은 물론 말로 짚어주신 내용까지 빠짐없이 연습노트에 적었다. 집에 돌아가면 각종 참고서나 문제집에 나와있는 내용까지 첨가해서 완벽한 나만의 노트를 만들곤 했다. 노트 정리를 할 때는 대단원의 제목을 네임펜으로 크게 쓰고, 소제목은 빨간색이나 파란색 펜을 이용해서 썼다. 본문 내용은 검은색 펜을, 아주 세세한 내용들은 0.3밀리미터 짜리 가는 펜을 사용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에는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별표를 쳐놓았다.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포스트잇’에 메모를 해서 노트에 붙여두었다. 노트 필기는 단순히 ‘적는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예습한 내용,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 복습하면서 참고하게 된 내용,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과 잘 모르는 의문사항 등이 모두 노트에 기록될 수 있다. 이제부터 자기만의 노트를 만들어보라. 자신의 정성이 들어간 노트를 만들다 보면 금세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
복습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식탁에 앉아 동생에게 공부법을 ‘강의’했던 일이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은 우리의 머리 표면에 붙어 있게 돼, 수학시간에 배운 공식, 영어단어, 시의 주제 등이 그냥 표면에 붙어 있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복습을 하는 순간, 머리 표면에 붙어 있던 지식들이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오게 된단다. 복습을 하지 않으면 머리 표면에 붙어 있는 지식들이 다 날아가버려. 그러니까 복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나는 연습장에 사람의 얼굴과 화살표를 그려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어머니마저도 나의 ‘복습효과 일러스트’에 대해 감탄하셨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복습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한두 번 미루다보면, 결국 중요한 지식들은 다 머리 위로 날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눈에 쏙쏙 들어오는 쪽지 퍼레이드
민사고 시절, 나는 쪽지의 여왕이었다. 내가 즐겨 쓰던 쪽지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표어 쪽지와 각종 단어나 공식을 외우기 위한 학습 쪽지로 나뉜다. 어떤 시험이든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특정 표어를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가장 대표적인 표어 중 하나가 바로 ‘The Dooms SAT'였다. 지금 기억나는 또 다른 표어는 ’경제․화학 다 죽었어!‘라는 것이다. 2학년초 AP 공부를 할 때, 수학에 비해 경제와 화학이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반드시 이 두 과목에서 5점 만점을 받겠다는 의미로 써 붙여놓았다. 이런 표어가 공부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다잡는 데는 그만이었다. 진정한 쪽지 퍼레이드는 과목별로 부족한 공부를 메울 때 사용됐다. 잘 외워지지 않는 영어단어, 수학 공식, 그리고 물리 공식 등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그걸 이층침대의 난간이나 화장실, 옷장 앞에 붙여놓았다. 그러면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올 때 한 번, 검도복으로 갈아입을 때 한 번, 화장실에 갔을 때 또 한 번 쪽지를 쳐다보게 된다. 쪽지를 쳐다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기억은 점점 선명해졌다.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쪽지 활용법을 시도해보라.
공부의 기초는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내가 4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옆집 아이가 벌써 두 자리 수 더하기를 한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내게도 숫자 쓰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가 쓴 3자는 거울에 비친 것처럼 왼쪽 오른쪽이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몇 번을 다시 써도 여전히 3자는 왼쪽 오른쪽이 바뀐 모양이었다. “아이구! 암만 해도 안 되는구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더니 안방으로 들어가버리셨다. 그리고 두세 시간이나 흘렀을까? 나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동생과 함께 낮잠을 주무시던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내가 기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내민 공책에는 3자만 여섯 페이지가 씌어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제대로 된 3자가 자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것이다. 그때 몇 시간 동안 혼자서 3자를 써낸 것은 아마도 ‘꼭 하고야 말리라’는 의지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부를 잘하겠다는 의지’이다. 그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비법이 있다고 해도 적용할 수가 없다.
한국 토종의 미국 대학 공략법
진짜 실력은 SATⅡ에서 판가름난다
SAT Ⅱ는 영문학이나 작문, 역사, 과학 등 특정 과목에 대한 지식과 학습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인데, SATⅠ과 같은 날 실시하지만 한 사람이 SATⅠ과 Ⅱ를 같은 날 응시할 수는 없다. 하루 최대 3과목까지 응시할 수 있으며, 필수 시험인 영작문(Writing)과 두 개의 선택 과목을 본다. 명문대의 경우 3과목 정도의 SATⅡ점수를 요구하지만, 모든 대학이 SAT Ⅱ점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가려는 대학에서 어떤 과목을 요구하는지 미리 알아보고 응시하는 것이 좋다. 내가 가려는 대학들은 대부분 SAT Ⅱ과목들 중에서 수학 ⅡC와 작문, 그리고 한 개의 선택 과목 점수를 원했다.
AP로 가산점을 노려라
AP(Advanced Placement, 대학 학점 사전취득제)는 고등학생이 대학 1학년 수준의 교과 과정을 배우고 시험을 봐서 미리 학점을 얻는 제도이다. 각 과목 시험 점수가 3.0에서 5.0 사이면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점으로 인정된다. 고등학생이 AP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미국 대학에 지원할 때 약간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는 동안 과제물도 많고 내용도 어렵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만만치 않다.
특별활동과 봉사활동으로 돋보이기
미국 대학 입시 전형에서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특별활동(Extra curricular activities)'이다.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예술적인 활동, 적극적인 성향 등을 두루 갖춘 학생을 우선 선발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연극클럽 ’L.I.D.(Life Is Drama)'와 만화 클럽 ‘경국지화’에서 특별활동을 했다. 연극클럽에서는 2학년 때 장을 맡았고, 전국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만화클럽 ‘경국지화’는 ‘나라가 기울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선배들 때부터 내려오던 클럽인데, 클럽 활동이 특별히 수상 경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나의 학창시절을 풍성하게 해주었다는 면에서는 아주 괜찮았다. 이 클럽에서도 2학년 때 장을 맡았고, 그 해 민족제에서는 각종 만화 캐릭터로 책갈피, 부채 같은 팬시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축제 화폐 단위로 10만 원을 벌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존스 홉킨스 대학 입학 원서의 에세이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에세이의 토픽이 ‘만약 당신에게 10달러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는가’하는 것이었다. 특별활동은 어떤 분야에서 활동했는지도 중요하다. 특히 학생회장이나 학교 신문사 편집장 경험은 입시 전형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어진 상황과 자기 취향에 맞는 특별활동을 선택하되,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별활동을 몇 학년 때 했는지도 원서에 다 기록하기 때문에 수시로 활동 부서가 바뀌면 ‘끈기가 없는 학생’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대학 입시에서 봉사활동은 그야말로 ‘기본’이다. 의대에 지망하는 학생에게는 ‘헌혈’ 경험이 기본이고, 사회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에게는 복지시설 봉사활동이 기본이다. 그 분야의 공부를 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바로 봉사활동 경험인 것이다.
좋은 에세이는 합격의 ‘화룡점정’
에세이는 자기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똑같은 경험, 똑같은 성적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어떤 식으로 포장하느냐에 따라 이미지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1학년 때 내신성적이 좋지 않고 2, 3학년 때 성적이 더 낫다면 ‘나는 1학년 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부를 많이 할 수 없었다’는 것보다 ‘내 성적은 지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쓴 학생이 훨씬 좋은 이미지를 준다. 대학 원서에 첨부하는 에세이는 상당히 개인적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묘사나 수식, 경험담을 모두 동원할 수 있다. 원서마감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여러 번 고쳐서 산뜻하게 완성된 글을 첨부하는 것이 좋다. 보통 8월부터는 어떤 내용으로 에세이를 쓸 것인지 준비해두어야 하는데,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학교에서 조기 졸업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10월에 있을 SATⅠ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불합격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정시 모집 마감까지는 겨우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안에 11개 대학에 낼 에세이 20여 편을 쓰느라 정말 고생했다.
내가 보낸 에세이 중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버드에 냈던〈Race〉다.〈Race〉는 내가 조기 졸업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조기 졸업자를 아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의심의 눈초리를 확실히 거두기 위한 에세이가 바로〈Race〉였다.〈Race〉의 첫 부분은 내가 어린 시절 달리기를 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전북 완주군 어느 마을의 공중보건의로 근무하셨다. 그 마을 체육대회가 열리던 날, 사람들이 나를 ‘이 동네에 한 분밖에 없는 의사 선생님 딸’이라며 달리기에 출연시켰다. 유치원 선생님이 내 앞쪽에 앉아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고, 나는 선생님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갔다. 그런데 내가 다가갈수록 선생님은 자꾸만 뒤로 멀어지셨다. 아마도 결승 지점까지 나를 그렇게 유인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선생님과의 거리가 절대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운동장 트랙의 중간에 서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AP, SAT 등 짧은 기간에 많은 시험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기분을 그 때 내 앞에서 멀어지던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가는 기분과 연결시켰다. 에세이의 끝은 이렇게 맺었다.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고교 시절을 거의 끝마친 것 같다. 물론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지쳐 있긴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선까지 뛰어가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사실 나 스스로는 글솜씨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소재를 특이하게 끌어내 읽는 사람의 머리에 나를 각인시키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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