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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무들기 농장

촐랭이

by 굼벵이(조용욱)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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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랭이.
그녀와 6년째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다.
워낙 새침데기여서 첫 만남부터 심하게 거부되었었다.
내가 그집 앞을 지날 때마다 그녀는 삐그덕 거리는 대문 밖으로 머리만 내민 채 사납게 짖어댔었다.
자주 보며 어르고 달래 조금 친해지자 먼발치에서 날 보면 살살살랑 꼬리를 흔들어주지만 절대 제 몸 더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치고는 나름 지조가 있는 년이다.
풍산이랑 부부생활하며 금슬이 좋았는데 풍산이 떠난 후 못된 씨바년을 만나 한바탕 개싸움에 참패한 이후 풀이 많이 죽었다.
여우 씨바년이 개쌈에서 이긴 이후 몸에 살되는 것들은 몽땅 독차지해 그년은 개가 아니라 돼지가 돼버렸다.
그 야리한 몸매로 이번에 촐랭이가 또 새끼를 낳았다.
사람 나이로 치면 60대도 넘은 듯한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새끼를 낳고도 이번에 또 낳은 거다.
마당가에 누워 늙은 할매 젖가슴마냥 축 늘어진 젖줄을 내주자 새끼들이 사정없이 파고든다.
도대체 이번이 몇 배 째인지 모르겠다.
안쓰러워 죽겠다.
데려다 키울 사람들도 구하기 힘들던데 이 강아지들 운명은 또 어찌 될 것인지 걱정 된다.
하긴 내 새끼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주제에 남의 집 개새끼 걱정하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 안해도 세상은 물가의 잡초처럼 자연스레 자라고 흐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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