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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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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란 한자적 의미로 보면 현직에서 물러나 숨는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물러나 숨어살며 잊혀진다는 거다.
육체적으로 여기저기 조금씩 통증이 찾아들기도 하지만 아직 마라톤을 하는 이도 있고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피크를 이루는 시기에 사회가 정한 룰에 따라 정년에 이르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대부분 더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젊은 세대에게 양도하고 물러서 관조를 배우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다른 의미에선 자기만의 의미있는 삶을 시작하는 거다.
나이 들면 새벽잠이 사라져 새벽이 길다.
나는 그 시간엔 작정하고 책을 읽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작가의 생각을 넘어서려 애쓴다.
작가가 글을 쓸땐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는데 내가 건성건성 읽어버리면 그건 작가에 대한 예가 아니다.
여섯시가 되면 닭장에 나가 간밤에 변고는 없었는지 살피고 매일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눈알을 대록대록 굴리며 내게 달려드는 닭들을 한마리 한마리 쓰다듬어준다.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는 걸 모르는 불쌍한 녀석들이다.
그래도 딴에는 힘겨루기로 권력서열을 정하고 부익부 빈익빈의 먹이활동을 이어간다.
그게 싫어 먹다 지칠때까지 먹을 수 있도록 해주니 모두 바닥에 엎어져 함포고복하며 다리를 늘어뜨린 모습이 꼭 사람을 닮았다.
오늘은 특식으로 아욱을 베어다 주었다.
가지 끝에 새순을 이어가며 생장하는 과일나무들을 진딧물이 떼로 달려들어 물어뜯으니 새순들이 기형으로 죽어가기에 며칠 전 진딧물 약을 뿌렸는데 놈들도 죽기살기로 다시 달려든다.
이따가 초로 마르면 약을 한번 더 주어야겠다.
옥수수는 어느새 또 임신해 아랫도리에 또 새싹을 품고 있어 과감하게 중절해 버렸다.
단호박 줄기를 지붕까지 올리겠다고 작정하고 길을 만드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며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 듯하여 신통방통하다.
완두콩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게 꼭 어린애 손 같다.
그래도 아직 덜 여물었으니 조금 더 기다렸다 따먹으라는 나의 사부님 옆집 할매 조언에 군침만 흘렸다.
어제는 대파 모종을 갖다주며 고구마 밭고랑 이빠진 곳(싹을 틔우지 못한 곳)에 꾹꾹 심었다가 뽑아먹으라기에 고구마 순 대신 대파로 보식하고 있는데 아랫집 아짐이 보고는 뭔 해괴한 발상이냐고 하자 두분이 서로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언쟁을 벌이셨다.
결국 나의 사부님 할매가 꼬리를 내리셨지만 대파는 위로 크게 자라고 고구마는 바닥을 기니 괜찮을 듯 싶어 나는 할매 생각에 손을 들어주었다.
나중에 누구 생각이 나은지 검증해 볼 참이다.
어쨌거나 파송송 계란탁 라면 끓일 때 제 맛만 내주면 그만이다.
숨은 듯 조용한 은퇴라지만 직장생활 할 때나 마찬가지로 식물은 식물 대로 동물은 동물 대로 내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게 한다.
육체적으로는 젊은이만 못하지만 그 외에는 오히려 더 야무지게 영글었는데 마이너 리그에서 숨어지내려니 조금은 좀이 쑤시고 허전한 감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심취했었는데 우리 영화도 나와 관람하니 아기자기하고 깊은 맛은 덜한 느낌이다.
영화만큼은 아니라도 요즘은 쑥쑥 크는 상추 싸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먹고 싶은 분 선착순으로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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