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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5

20050914 내가 몸살을 앓는 이유

by 굼벵이(조용욱) 2023.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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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14

또 몸살이 왔다.

그러나 금방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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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은 철저하게 새벽 3시는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우리 아파트 앞 주택가 주차장을 개조하여 문화일보 지국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새벽 4시경이면 분주한 차 소리와 신문을 부리는 소리가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다.

9.12일 새벽은 집사람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며 토닥거리는 소리에 한번 깨고 신문 부리는 소리에 또 한번 깨었다

꼭 자야 할 시간에 그렇게 잠을 제대로 못자고 설치면 나는 곧바로 건강전선에 이상이 온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더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결혼 후 평생을 서로 다른 잠 시간대 속에서 서로의 숙면을 방해하며 살아온 듯하다.

결혼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서로의 잠 시간대다.

이제는 내가 독거노인으로 전락해 있으니 서로 떨어져 자는 정도를 넘어 별거생활을 한다.

집사람이 가끔씩 나타나 반찬이라도 좀 챙겨주고 몸이라도 섞어주면 좋으련만 몸이고 마음이고 뱀처럼 차가워진 듯하다.

반찬은 내가 사먹든 만들든 어찌어찌 해보겠는데 쭈글거리는 젖가슴이라도 만지고 싶은 욕망은 참아내기가 쉽지 않다.

집사람은 세속의 룰을 따라 제몸을 사리는 듯한데 오로지 외길만 걸어왔던 내가 어떤 동기로 급작스레 다른 길을 가지 않을까 나도 우려된다.

나중엔 썩어 없어질 몸이고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운우지정에 굶주리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사업소장으로 지방에 내려가 독거노인 생활을 할 때에는 반찬도 챙겨주고 마음도 챙겨주더니 늙은이 홀로 시골 농막에 처박혀 있으니 몸도 마음도 완전히 멀어졌다.

때론 나를 무시하는 언행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녀가 변한건지 내가 예민해진건지 모르겠다.

아, 불쌍한 내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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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에는 KE이가 나랑 인생상담하고 싶다고 했는데 13일에는 KC이가 나타나서 KE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내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자문을 구한다.

KE이가 6개월 전 즈음에 이혼을 했단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은데 HW과장과 사이가 안 좋아 더욱 힘들어 하니 그녀를 우리 팀에서 받아주면 안되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그런 발상이 자기 스스로에게서 나왔는지 아니면 그녀가 부탁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마도 그녀가 그렇게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KC부장의 배려심 없는 이기적 사고에 화가 났다.

그래도 나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PC가 본인 스스로의 발전을 위하여 인사관리팀으로 가길 희망한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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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상황이었지만 PC를 불러 저녁에 시간 좀 내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아우토반에 가서 맥주를 3000CC씩 마셨다.

단 둘이 마주앉아 술을 마시면서 PC의 고민도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술로 인하여 가끔씩 집사람과 트러블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자기랑 비슷한 수준의 주량이어서 전에는 둘이 술도 가끔씩 마셨는데 요즘은 자기가 술 마시고 들어오는 것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인은 PC가 술을 좋아하는데 있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는 회사에서 회식하는 바람에 늦었다고 변명했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의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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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경력관리나 발전을 위하여 다른 부서로 옮길 생각이 있는지에 관하여 PC에게 물었더니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속 나랑 같이 근무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이다.

내심 마음이 흐뭇하다.

PC가 칭찬에 대한 글을 읽었는지 마음에서 우러나온건지 모르지만 오히려 나를 칭찬했다.

지금껏 모셔본 상사 중에서 아침 일찍 나와 이어폰 꼽고 공부하는 상사를 보지 못했다며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이다.

어차피 삶은 그저 열심히 성실하게 현재에 몰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