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중추가절에 문안인사 드립니다.]
23:30분 발송
사실 요즈음 제 낙(樂)은 회사 동료들과 테니스를 하고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맥주 한잔 곁들여 담소를 즐기는 것입니다.
운동으로 땀이 범벅이 된 상태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잔 거듭할수록 맥주 맛은 떨어집니다.
세상살이가 모두 비슷한 것 같습니다.
횟수를 거듭한 제 편지에 싫증이라도 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일요일 아침은 아이들 때문에 잠시 테니스를 보류하고 대신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합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 교대 운동장으로 데려가 축구 골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pass 연습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제자리에서 공을 차는 연습을 했었는데 아이들에게 운동량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서로 삼각패스를 하면서 골대를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방식으로 바꾸니 제법 땀이 납니다.
그게 끝나고 나면 배드민턴을 합니다.
경신이와 호신이가 지난 겨울방학 때 집 앞에서 운동 삼아 배드민턴 연습을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배드민턴은 조금 하는 것 같더군요.
제가 정신을 바싹 차려야 겨우 호신이를 이길 정도이지요.
지난번에는 호신이에게 져서 그 벌로 제가 운동장 두 바퀴를 돌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가 계단에 앉아 우리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바라보는 모습이 어찌 보면 권태를 씹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듯도 합니다.
오늘(9.11일요일)은 우면산 독서실에서 필립 체스터필드의 “아들에게 쓴 사랑의 편지”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을 읽었습니다.
큰 애 경신이는 오늘 교지신문부에서 행사가 있다고 보라매공원엘 가는 바람에 함께 가지 못하고 호신이만 데리고 독서실에 갔지요.
호신이가 오전에는 그래도 조금 책을 보더니 오후에는 소설책 볼 때만 반짝반짝 두 눈이 빛나더군요.
그만 공부 좀 하라고 했더니 예외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기 시작하는데 저녁 먹으러 집에 올 때까지 계속 졸더군요.
일부러 심하게 무어라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점심 먹으로 식당에 가서 돌솥 비빔밥을 시켜놓고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몰입의 즐거움”에서 나오는 이야기 한마디를 해 주었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학교생활에 견주어 이야기 해 주었지요.
어차피 학교에 다닐 거면 공부를 해야 하고 어차피 공부를 해야 할 거면 이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그걸 알지만 실천이 잘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렵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니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녀석에게 “야, 너희 선생님하고 나하고 친구사이인 것 알아?”하고 물으니 “예”하고 답하더라고요.
“2학기 땐 멋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생님하고 약속 했는데 잘할 수 있겠니?“하고 물으니
“열심히 해 볼게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다른 선생님들이 그러시는데 제가 조금 변했다고 하더래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요즘 선생님께서 녀석에게 관심을 표해 주니까 녀석도 우쭐해서 조금 잘 해볼 생각을 하나봅니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와 곧장 파일에 꽂아놓은 호신이 지능검사 진단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녀석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제 이모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받게 한 지능진단 결과입니다.
지능지수는 종합 130(최우수), 특히 동작성 지능지수 135로 매우 뛰어난 것으로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네가 조금만 열심히 하면 다른 아이들보다 우수해 질 수 있는데 한번 노력해 보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조금은 민망한 듯 머쓱해 가지고 제방으로 들어가더라구요.
아마도 조금은 자극을 받았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애가 그동안 많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은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 잘 따라주지는 않지만 잘 해 보려는 의지는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심성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그래도 그나마 조금 위안을 삼습니다.
저는 언젠가 녀석이 새로운 의지를 활활 불태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직은 생각이 어려 그저 까불 줄만 알았지 깊이가 없습니다.
조금 생각이 깊어지면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려우시더라도 가끔 격려도 해 주시면서 아이를 지도해 주시면 더 없이 고맙겠습니다.
학교에서 문제 있는 부분은 계속 제게 연락 주시구요.
저는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면 아이가 잘 커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편지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5.9.11 늦은 밤에
조호신 아빠 조용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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