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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1001 북미의 야생 칠면조 잡기/ 말끝마다 끼어드는 사람

by 굼벵이(조용욱)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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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1

어제 오후에는 팀 간식을 했다.

이두순 차장이 장인 상에 부조해줘 고맙다고 답례로 통닭을 보내왔다.

간식 중에 북미에서 칠면조를 잡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북미의 야생 칠면조는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한다.

이 칠면조들은 양배추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이 칠면조들을 잡기 위해 밭에 양배추를 심어놓고 밭 가장자리에 허리 높이의 울타리를 쳐 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겨우내 굶었던 칠면조들이 날아가다가 싱싱한 양배추 밭에 들어가 양배추를 먹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렇게 한 두 달 먹다보면 칠면조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살이 오른 데에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날개 근육은 더 이상 자신의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울타리를 날아오를 수 없어 농부의 손에 쉽게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농부는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칠면조들을 편안하게 수확하게 되어 사료를 주어 먹이는 수고까지 덜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 끝에 머리 좋은 최준원차장은 과연 그 기간 동안에 날아오르지 못할 정도로 살이 찔 수가 있겠는가에 대한 이의를 제시했고 조홍제 차장은 칠면조 값이 양배추 값과 비교할 때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인생은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

우리가 아는 진리는 모두 이미 초등학교 시절 이전에 배운 것들이다.

그것을 머리에 담아 이미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살아간다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코치가 코칭을 할 때에도 바람직한 고객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코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의를 제기하기 보다는 함께 어우러져 코칭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인 코치가 과연 얼마나 잘하나 지켜보는 식의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올바른 코치를 받을 수 없고 결국은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따라서 비록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라도 비판적인 사고보다는 다시 한번 리마인드하면서 스스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미 다 알고 있다, 한 이야기 또 한다, 너나 잘해라 따위의 생각으로 행동교정을 게을리하면 평생 발전이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직접 행동으로 옮겨 자기화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순한 knowing 에 불과하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인생은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팀원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나는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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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는 전무님과 처장님 그리고 현상권 팀장과 나, 곽병철 부장 그리고 조택동 부장이 함께 했다.

모처럼 전무님을 모시는 자리인데 현상권 팀장과 조택동 부장은 계속 자기들만의 말잔치를 이어갔다.

어떤 주제가 나올 때마다 그들만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사람 다 목소리도 크고 아는 것도 많아서 전무님이나 처장님이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는 그들의 행태가 너무 지나쳐 내가 주제를 몇 번 바꾸어 보았지만 주제가 바뀔 때마다 둘이 나서서 바뀐 주제에 대하여 속사포를 쏘듯 제 말만 이어갔다.

전무님을 위해 마련한 자리인데 전무님은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들만 나서서 말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짜증이 났다.

백재현 팀장도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중에 헤어져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백재현 팀장은 두 사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혹 나도 그러고 다니지 않나 반성해 볼 일이다.

전무님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이 달려드는 통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이 두사람의 말로는 평탄하지 않았다.

지나친 자기과신(조현병)이 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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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접촉사고를 당했다.

몸은 괜찮지만 자동차 우측 모서리가 박살이 난 모양이다.

어차피 폐차를 생각하고 있었던 차이므로 일단은 보험사를 불러 해결하라고 했다.

새 차 대신 헌차를 미리 받혀 액땜한 것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차를 사 준다고 해서 그런지 집사람이 요즘 기분이 괜찮은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가라리 네히어라' 놀이로 한바탕 이불을 적셨다.

요즘 지하철을 다니다 보면 젊은 애들의 몸매를 보면서 불끈 불끈 달아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강한 에너지가 있어야 살 수 있는 모양이다.

어제 퇴근길에도 지하철을 나오면서 불끈 솟아오르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었다.

서로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갈라서 죽도록 싸우다가도 다시 손잡고 동맹이네 우방이네 하듯 내 안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생의 에너지도 몸 밖 도덕규범과 싸우고 동맹하면서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듯하다.

내가 생각해도 내 도덕률은 유난히 엄격한 편이다.

어린시절 한참 정체성이 형성될 무렵 다른 사람보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환경적 요인 때문에 생긴(아웃라이어에 의하면) 학습결과라 할 수 있다.

 

차와 차간에 안전거리가 필요하듯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가다 사고가 나면 불행이라는 견인차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