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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1207 내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피눈물 난다

by 굼벵이(조용욱)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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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7()

11시에 J 처장 큰애를 치우는 결혼식이 회사 대강당에서 있었다.

JC, 전에 그는 나를 철저하게 무시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사실상 수렁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그를 살려주었다.

그가 부처장 승진을 하려는 데 추천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내게 도움을 청했다.

어차피 제도개선의 필요성도 있고 보다 합리적인 추천방안을 고민하다가 서열추천방식에서 상중하 추천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했다.

꼭 그사람만을 위한 제도개선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개선방안을 마련하는데 그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그는 그 해에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고마워하기 보다는 그는 엄청난 곤경에 빠뜨렸었다.

OOOO실장 시절에 내가 정년연장을 방해한다고 JW노무처장과 함께 온갖 음해성 루머를 퍼뜨리며 나를 시궁창에 빠뜨리고 짓밟았었다.

물에 빠진 놈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물에 빠뜨리려는 격이다.

못나도 내가 모셨던 상사인 만큼 그에게 10만원 부조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은 내 수호천사가 반드시 피눈물 나게 한다.

그분도 결국 나중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동안 기억의 그늘 속에 묻혀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존경하는 하광을 전무님을 뵈었을 때는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메였었다.

하전무님 앞으로 가 악수를 청하며

전무님, 제가 그동안 연락도 없이 너무 소홀해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괜찮아.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뭐.”

하면서 위로해 준다.

왠지 그 말 속에 나에 대한 서운함이 서려있는 듯하다.

날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써 주셨던 분이다.

내가 부장 승진할 때 특히 도움을 많이 주셨던 분이다.

날 보고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가끔은 술자리라도 만들어 만나뵈었어야 했는데 전문원이라는 독립군으로 살다보니 연락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하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식당에 자리가 부족해 한 쪽 구석에 앉아 혼자 꾸역꾸역 점심을 먹었다.

 

사무실로 들어와 책을 정리했다.

지난번에 사 놓았던 내 책 100권이 아직 남아있다.

어차피 교육발령이 나면 자리를 비워야 하므로 차를 가져온 김에 미리 집에 가져다 놓는 게 좋겠다 싶어 그걸 차에 실어놓았다.

16년을 보내는 세월동안 쌓였던 짐이 꽤나 많을 것이므로 회사에 나올 때마다 조금씩 짐을 싸가야 할 것 같다.

짐을 싸던 중 OO견지 카페의 YK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가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삭제할 수 없는지 물었다.

그러니 대쪽같은 현암 선배가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난 사실 카페에 가입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로지 그의 권유에 따라 그 카페에 가입만 했을 뿐이다.

그런 내게 그는 내 아이디를 가지고 당신의 앙숙인 H선배가 들어올 것이 두려워 나를 받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다.

나이를 헛먹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늙어서도 추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면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대물견지카페를 탈퇴한 상황이어서 내 손으로 내 글을 삭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삭제하고 싶다면 운영자에게 이야기해서 삭제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글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월요일) 까지 아직 삭제되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노인네들의 추한 감정싸움이 가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늙으면 제일 먼저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후 두시에 테니스를 세 게임하고 들어왔다.

조철 부장과 박종확전무님이 나와 게임이 한층 더 즐거웠다.

 

토요일 내가 회장으로 있는 고향친구들 모임 청죽회 모임엔 다섯 명 밖에 모이질 못했다.

충용이가 제일 먼저 왔고 이어서 병진이와 용범이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늦게 정원이가 나타났다.

우리는 각자의 술취향에 따라 따로 술을 마셨다.

나와 병진이는 소맥을 말아먹었고 충용이와 용범이 그리고 정원이는 그냥 소주만 마셨다.

우리가 만나서 술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다음날 대부분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할만큼 의미가 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의미를 찾으려면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하거나 강연을 듣는 것이 좋다.

우리들이 모임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이란 그냥 편한 고향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며 늙어가는 자신들의 신변잡기를 확인하는 이야기 정도가 고작이다.

'돼지토마토'에서 내가 내려던 술값을 충용이가 내었다.

어릴 때 그렇게 까불거리더니 나름대로 직장생활도 잘 하고 가정에도 충실한 모습이어서 보기 좋다.

그날 마침 수능을 마친 둘째와 군대생활 하는 큰 애 그리고 집사람과 함께 온가족이 서초동에 왔던 것 같다.

충용이가 한 잔 더하자고 해서 생태찌게 집에 가 모듬회 한 사라를 시켜 막걸리를 마셨다.

덕분에 모두들 술이 많이 되었다.

특히 나는 꼭지가 돌기 일보직전까지 마신 것 같다.

마지막 헤어진 순간이 가물가물하다.

충용이네 식구들이 나타나 함께 차를 타고 떠난 모습은 기억에 있는데 용범이와 정원이가 떠난 모습은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마도 전철을 타러 갔을 것이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에 아이들을 깨웠다.

녀석들은 내가 깨우지 않으면 하루 온종일 잠을 잔다.

생활 습관을 바꾸어 주어야하므로 무조건 7시 이전에 잠을 깨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아침을 차려먹으라고 하고 테니스장엘 나갔다.

오늘은 테니스장에 회원들이 많이 모였다.

부지런히 네 게임을 마치고 샤워를 했다.

그 정도면 겨울 운동으론 충분하다.

운동 후 가진 아점 식사에 정하황 처장이 바람을 잡아 은근히 술을 꽤나 마셨다.

박종확 전무, 이인교 본부장, 정처장, 허창덕 처장, 조원석 처장, 이영철 부장 등 한잔씩 교환한 술이 거의 두병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어제의 과음으로 술을 그리 많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분위기상 자진해서 술 권하는 사회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잠을 자려 침대에 누웠다.

집사람이 곁에 있어 아이들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일을 치렀다.

이어 계속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질 않아 그냥 컴 앞에 앉아 영화를 내리 세편이나 보았다.

저녁식사로 집사람이 새우 소금구이를 준비했다.

그냥 새우만 구워먹기에는 너무 밋밋해 막걸리를 내왔다.

막걸리 한잔에 안주삼아 새우 몇 마리 먹고 다시 영화보기를 이어갔다.

영화감상, 테니스, 견지낚시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가 내 인생의 전부다.

이것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