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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1208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의 어려움

by 굼벵이(조용욱)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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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어제는 서라벌 고등학교 동문 모임이 있었다.

강민석, 김지광, 남기식, 김동현 그리고 나 모두 다섯이다.

권태호는 바빠서 못 나왔다.

김지광 차장이 모임을 야무지게 준비했다.

몇 안 되는 고등학교 동문 모임이지만 그래도 내가 평준화 이후 나이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가장 최고 선배여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런데 퇴근 무렵에 갑자기 처장님이 나랑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한다.

얼마 전에 큰아들 경신이 제대 축하연을 해 주겠다고 약속해 놓았는데 갑자기 저녁식사를 하자고 해 정중하게 거절했었는데 이번에도 거절하면 오해를 살 것 같아 우물쭈물 망설이던 중 임청원 부장이 TDR 팀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살아났다.

모임은 섬유센터 지하에 있는 배나무골에서 가졌다.

김지광 차장은 서라벌 고등학교에 전화를 해서는 홍보 동영상을 다운받아 그걸 노트북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옛 선생님들과 없어진 학교 전경이 사진으로 전시되면서 잊혀진 추억이 하나 둘 올라왔다.

내가 아이였던 그 시절에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 쏟는 만큼 내게 관심을 쏟아 줄 수 있는 멘토가 있어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해 조언을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전문원이 되면서부터 나의 자존심과 교만을 가장 밑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십여년 하다보니 내 성격 자체가 이에 맞도록 변해버린 듯하다.

그걸 후회하진 않는다.

어차피 인생은 죽을 때까지 교만을 없애고 겸손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지막 잔을 폭탄으로 마무리하고 헤어져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웠다.

집사람이 내 베갯머리에 와 장난기 어린 뽀뽀를 한다.

나는 바보처럼 왜 이러냐며 몸을 사렸다.

아마도 어제 아침에 있었던 해프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제 저녁에 나는 세면대 온수 관 꼭지를 잠가놓았었다.

내가 그걸 잠가놓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따뜻한 물이 나오도록 하려면 보일러에서 물이 덥혀져 수도관을 타고 나오는 동안 찬 물을 한참동안 버려야 한다. 아까운 물을 그렇게 낭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씻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이어서 그렇게 쓸데없이 버리는 물이 너무 많아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예 온수 관을 잠가놓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잠깐 손을 씻거나 양치물을 사용하기 위해서 보일러를 계속 켰다 껐다 하면 보일러가 금방 고장 나게 되어있다. 모든 기계가 계속 작동하게 하는 것 보다 오히려 '켰다 껐다'를 반복할 때 더 심하게 damage를 입는다.

그런 이유로 세면대 온수 관을 잠가놓았는데 집사람이 그것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은 모양이다.

어제 아침 막 출근을 하려는데 집사람이 핏대를 올리며 온수 관을 열라고 내게 악을 썼다.

나도 아침 출근길이어서 화가 치밀었지만

왜 짜증을 내고 그래

하고 한마디 했더니 원성을 퍼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세면대 온수 관을 열어주고 출근했었다.

잠자리에 누워 베갯머리에서 아양을 떠는 집사람에게 세면대 온수 관을 잠근 이유를 설명해 주었지만 집사람에게는 그 이유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에 대한 심한 모욕으로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자신은 이가 시려서 찬물에 양치를 할 수 없고 따뜻한 물이 아니면 손을 씻을 수가 없단다.

자기가 사용하는 물이 그렇게 아깝냐며 오히려 나를 노려본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분노에 찬 눈으로 맞대응 했다.

집사람은 울면서 못 살겠다를 외치며 방을 나섰다.

나는 분노를 삭히며 돌아서 잠이 들고 오늘 아침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었다.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화장실 세면대 물 사용방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손을 씻거나 양치를 하는 등 간단한 물 사용은 수도꼭지를 오른 쪽으로 돌려 찬물만 나오게 하여 사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설명도 함께 곁들였다.

아침 출근길에 아이들은 안녕히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하는데 집사람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인사도 없다.

집사람이 요즘 가면 갈수록 고집이 세어지고 언행이 거칠어지는 것 같다.

내가 말없이 계속 참고 지내다 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미 수 십 년의 학습을 통해 나는 그런 사람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이제부터는 그냥 속으로 참지만 말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을 명확히 해서 똑바로 의사를 전달해야 할 것 같다.

힘들지만 집안 여기 저기 널려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청소하도록 일일이 지적해야겠다.

벌써 여러 번 식탁위의 잡동사니를 없애라고 이야기 했는데도 집사람은 아예 대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