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월)
지난 금요일에는 두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김승환 처장 방문 건이고 다른 하나는 고교 동기회에(reunion) 갔었던 거다.
금요일 오후 두시 반부터 김종호 전무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꼴랑 차장 한 사람 내게 붙여 주고 주문이 참 많다.
그렇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그저 인사처장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사처장은 나를 불쌍히 여겨 지금의 자리를 억지로 만들어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다른 간부들은 아마도 나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1(을)처장 두 사람은 내가 인사처에 합류하는 것이 자신의 진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당초에 나를 그렇게 비참하게 내쳐놓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업무보고를 마치니 세시 반쯤 된 것 같다.
부랴부랴 김승환 처장이 근무하고 있는 구리지점엘 갔다.
그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부터 나를 조져대기 시작했다.(criticize severely)
그의 마음은 불평불만으로 꼭지까지 채워져 꼬여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일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잃어버린 자신의 명예를 되찾아달라는 주문이다.
본래의 관리역으로 다시 발령을 내달라고 했다.
인사규정상 자신을 현재의 상태로 발령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규정에 위배한 발령을 냈으니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감사원을 포함하여 외부기관에 구명운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한은 이달 말인 3.31일까지로 한정하였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날 때 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불법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규정을 아전인수격으로 잘못 해석한데서 기인한다.
규정을 다루는 내 입장에서 보면 발령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렇게 철저하게 왜곡된 인지구조를 가진 사람을 설득하고 오라니 김종호 전무도 참...
하긴 자신이 자신 없어 대신 나를 보낸 것이니 실패해도 할 말은 없을 거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그저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흥분된 어조로(in an excited tone) 불만을 내게 폭포수처럼 쏟아내었다.
나는 일체 항변하지 않았다.
항변해 보았자 그의 기분만 더욱 상하게 되고 결국 상처만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죄송하다면서 저녁식사나 같이하자는 제안을 했을 뿐이다.
그는 나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함께 먹어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사실 나로서도 본심은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불편함의 농도가 짙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술이 들어가면 자칫 조인트가 까질 수도 있다.
전에 그가 조인트 까는 현장을 여러번 목격한 사실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김병옥 차장이 운전하는 차에서 내려(get out of a car) 곧바로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갔다.
많은 친구들이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동안 동창회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오니 그런가 보다.
여기저기서 많은 친구들이 함께 잔을 나누자며 내게 다가온다.
나는 2차 카페까지 갔다.
아니 동창 친구들이 끌고 갔다.
이제는 모두들 점잖은 신사로 성장했다.
모인 친구들 대부분이 1반이거나 12반이다.
이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 연/고대를 졸업했다.
그럴듯한 직장에서 나름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작은 회사의 대표이거나 교수 또는 회계사(certified public accountant)가 많다.
변진석이는 국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새 쟁쟁한 재력을 갖춘 친구들도 꽤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민호는 동기 모임에 여러 번 왔었던 것 같다.
2차에서 나는 노래까지 불렀다.
모임을 파하고 민호 차를 타고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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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름대로 조절해서 술을 조금씩 끊어 마시니 아침에 취기가 덜하다.
술은 내 수준에 맞게 늘 조심해서 마셔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테니스와 영화를 즐겼다.
토요일 저녁에는 처가에 들러 장인어른과 술 한 잔 나누고 왔다.
집에 있던 머루와인 한 병을 들고 가고 마트에 들러 수입산 소고기 네 팩과 쭈꾸미를 한 팩 사서 술안주를 준비했다.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 모두 좋아하신다.
장인어른은 자신이 감춰두었던 와인 한 병을 더 내어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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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는 테니스가 끝난 후 뼈 해장국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라기 보다는 술을 마셨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박종확 전무님이 이번에 3년 임기의 전기신문 부사장에 재임명 받은 모양이다.
이를 자축하는 의미로 자신이 밥을 사시겠단다.
맥주를 여러 잔 마신 데에다 소맥을 다섯 잔이나 더 말아 마셨다.
결국 집사람을 불렀다.
집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허창덕 강원본부장과 정하황 처장을 상대로 나와 김용덕 처장이 한편이 되어 게임을 벌여 우리가 이겨 공짜 통닭과 생맥주를 먹었다.
강원본부장이 닭 값과 맥주 값을 내었다.
술이 많이 되어 깊은 잠에 들었기에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야 일어났고 그 때부터 영화를 두 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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