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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애덤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by 굼벵이(조용욱) 2016.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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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 수 만 명이 죽었다는 것보다

내 새끼손가락이 하나 없어진다는 것에 더욱 상심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는 가깝고 먼 차이가 개인의 생각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이기적인 인간이 타인이 원하는 것을 주는 이유는 이기심 때문이다.

그가 새로 정의한 이기심은 타인이 답례로 무엇인가를 줄 것이라는 전제 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국부론에서 정의한다.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유리한 점을 말한다면 상대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 상당히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친절하고 품위 있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공정한 관찰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공정한 관찰자란 인간의 상상 속 인물이다.

공정한 관찰자는 우리에게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행하는 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탁월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신이나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내면의 욕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반감을 경험하면서 도덕의식이 만들어진다.

 

사람이란 본래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기 의견을 입증하기도 좋아한다.

하나같이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뿐더러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길 원한다.

행복이란 감정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생겨난다.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상상만 하지 말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한다.

바보 같은 사람이 사랑스럽지 않은데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아첨에 속지 말고 자신을 솔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가장 거부하기 힘든 것이 바로 스스로에게 건네는 칭찬이다.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건 매우 불쾌하기에 우리는 종종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려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기를 좋아한다.

그게 훨씬 더 즐겁기 때문이다.

솔직한 자기인식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 겁쟁이다.

 

나는 나만의 민낯을 정직하게 본다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자기기만이다.

자기기만은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혼란의 절반은 바로 이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

 

결점이 있는 이웃들은 곧 나의 결점을 고치도록 돕는 이상적인 거울이 된다.

사람들이 실제로 이기적인데 이타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타적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광고다.

 

개인의 이익이 걸려 있으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스스로 제시한 방안을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방안을 생각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 나 자신이다.

 

바다는 들어갈수록 깊어진다.

많은 것을 알수록 알아야 할 게 더 많아진다는 표현의 다른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로 유용하지도 않은 하찮은 것들에 돈을 써버리고 스스로를 파산시키고 있는가?

(이는 그가 자본주의 창시자이지만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발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부지런히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게 하는 악덕을 스미스는 탐욕, 허영이라고 했다.

승진하기 위해 하는 비열한 행동 따위도 악덕이며 이는 지나친 격정이라며 경고한다.

 

사람들이 왜 돈과 명예에 목을 맬까?

그건 사랑 받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려는 욕구(우월욕망) 때문이다.

권세가들의 거실과 궁전은 공적과 능력보다는 아첨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 행위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과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250년 전 영국 왕실도 그랬다니 오늘날 정부 또는 기업 조직 내 권력 중심부에도 이런 현상이 이보다 덜하진 않을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 서는 순간 자유와 편안함, 안전함은 영원히 잃게 된다.

따라서 부유하고 유명하고 성공하고 싶다면 자유와 편안함, 근심 걱정 없는 안전함은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국정에서의 화려한 노예생활을 버리겠다고 결심했다면 그 소굴로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며 절대 그들과 비교해서도 안 된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겸손해 지기를....

자기 운명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부자다.

세인의 관심을 추구하는 대신 지혜롭고 선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도 타인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실제로 나와 같으면 된다.

한마디로 정직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존중을 받으면 된다.

 

타인의 공감은 늘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두 음이 똑같은 것은 동음이다.

똑같지 않아도 듣기에 좋은 것은 협화음이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바라는 최상이다.

 

친구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은 친구의 눈으로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친구보다 단순한 지인과 있을 때 마음이 더 진정된다. 지인보다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욱 진정된다.

이는 그 사람의 공감정도에 맞추어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쁨이 작을수록, 슬픔은 클수록 더 쉽게 빨리 공감한다.

그러나 슬픔보다는 기쁨에 공감하길 좋아한다.

조물주는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슬픔만 준다.

 

적절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주위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가장 강조한 미덕은 신중, 정의, 선행이다.

신중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고,

정의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며,

선행은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신중한 사람은 요란하고 가식적인 파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무례하게 굴지도 않는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상처주지도 않는다.

(마음의 상처는 평생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절대로 마음의 상처를 주지 마라.)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 비열하게 행동할 수 있다.

정의의 원칙을 지킬 때는 아주 엄격하고 정확하게 지키라고 조언한다.

어떠한 예외나 수정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저 최고의 남편, 최고의 엄마, 최고의 이웃이 되는 것일지 모른다.

훌륭한 선생은 학생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훌륭한 상사는 직원들을 성장시킨다.

 

어떤 것이 고결하며 고상하고 적절한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이다.

우리의 평소 행동 속에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각자의 개별적 행동이 모여 하나의 창발적 질서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 안에 단단히 박혀있는 본성을 바탕으로 어떤 행동이 고결하고 고상하며 친절한지 스스로 자연스럽게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실제 우리 행동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 본모습을 일깨워주는 가슴속 인간을 통해 행동을 피드백 한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위대한 장점은 신뢰다.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신뢰에 더 의존하고 법에 덜 의존할수록 사회시스템은 더 잘 작동된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선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착한 행동들이 모여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들은 야심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하고 혁신하고 향상시키고 모으고 생산하려 한다.

 

원시시대 서로 나누지 않고 돕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고 부득이하게 자기 것을 서로 나누게 되었다.

 

도덕감정론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 즉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이웃처럼 우리가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룬 것이다.

반대로 국부론은 모르는 사람들과 맺는 온갖 유형의 거래를 다루었다.

따라서 이런 거래에선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측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에선 이타적이고 도덕적이며 고상하게 행동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이에선 서로 신뢰 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이익이 모든 행동의 기준점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다룬 도덕감정론과 상품의 생산과 교역을 다룬 국부론은 사람들의 행동방식이 전혀 다르다.

 

가정은 사회주의의 천국이다.

훌륭한 부모라면 아이들이 스스로 두발로 서게끔 돕는다.

 

하이에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동시에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가족생활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가족의 평등한 문화를 사회 전체에 확대함으로써 사회를 가족처럼 만들려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사회를 가족처럼 만들려는 시점에 바로 독재가 탄생한다고 경고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화려한 노예생활을 동경하거나 그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지 않기로...

그리고 보다 진실되고 정의로우며 선행을 베푸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하지만 앞으로 많은 유혹이 따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