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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니체처럼 2240400404(김준산)

by 굼벵이(조용욱) 202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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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강원도의 어느 초등학교 선생인데 공부를 많이 했다.

내공이 아주 깊은 듯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에게 그 지식이나 지혜를 전달하는 방식이 나와 사뭇 다르다.

무릇 글이란 초등학생이 읽어도 쉽게 이해가 갈 수 있도록 써야한다.

그런데 그의 글은 읽어내기가 무척 어렵다.

쉬운 단어 대신 생경한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해가 어려울뿐더러 글 쓰는 형식도 50년 이상 전의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을 적용해 읽어 내려가는데 껄끄러움이 많다.

그가 쓴 글을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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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뜨겁기에 명작이다

민주주의는 더 좋은 세상으로 나가는 공격적인 활발함이다

합의가 민주주의의 완성이란 생각은 편견이다

합의는 더 나은 논의를 위한 출발선일 뿐이다

몰락은 창조의 시작이다

니체는 몰락할 줄 아는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다 했다

몰락과 창조의 영원회귀를 긍정하고 추락을 기회로 받아들이는 과감한 긍정이 주체를 만든다.

정치가 현실적 계산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충분히 정치적이어야 세상은 맑아진다.

니체는 자신의 이상에 이르는 길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은 이상을 지니지 않은 인간보다 더 경박하고 파렴치하게 살아간다고 했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논증이 아닌 은유로도 확장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은유는 세속의 편견으로 더럽혀지기도 하고 사람들의 서툰 삶의 실력이 그 의미를 누추하게 추락시키기도 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 아니라 외로움까지 아름다울 때 비로소 사람이다

라캉은 현실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구성된 어떤 것이라 했다

우리는 예측불가한 현실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설계된 현실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다

세계는 선험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다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경험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생각과 존재는 분열되어 있기에 경험으로 축적된 생각은 실재계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없다.

경험은 이미 내가 각색해낸 언어들의 집인 터라 왜곡은 필연이다.

경험의 세계는 원칙을 갖고 특정한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일 뿐 세계 그 자체가 아니다

경험은 편파적이다

경험만으론 라캉이 추구한 실재계에 접근할 수 없다

 

들뢰즈의 말마따나 이론도 실천이고 직접적인 존재의 이해방식이다

몽상은 현실을 이탈하는 망상이 아니라 현실과 상상을 연결하는 접착제다

논리적 판단의 서늘함을 희석하는 따뜻함이 몽상의 효과다

몽상은 낮에 꾼 꿈을 뜻한다

깨어 있으면서 꾸는 꿈이고 현실에 대한 일종의 과장이다

현실의 원리를 다듬는 이성이 아니라 이성이 놓친 잔여들을 주섬주섬 모아 창조물로 제작하는 과잉이다

현실에 저당 잡힌 꿈은 상상력의 탈진이다

가벼운 삶이 행복에 근접한 삶이다

사랑하기에 인간은 일시적 쾌락의 포만감을 넘어설 수 있고 자본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으며 나를 벗어난 타인에게로 다가설 수 있다

궁극의 즐거움은 인생을 즐기라는 속견에 묶여 금기를 파괴 하려는 일탈이 아니라 그 금기조차도 조롱할 수 있는 존재의 역량이다

사랑의 발명이다

독서 자체가 창작이고 자유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무지하다는 자각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타자들의 영역이 책의 공간이다

책은 인간을 만들어낸 외부고 바깥이며 무한의 적이다

많은 책을 읽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제대로 읽는 것이며 그 독서 체험을 통해 직접 교만과 편견을 이기는 것이다

따라서 독서의 궁극은 침묵이다

정치와 문장은 모두 하루의 공부이고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덕행을 닦는 사람을 꼽을 뿐이네

최종 지점에서는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하는 신비의 힘이 바로 독서다

독서는 받아들이며 듣는 것이지 판독하고 분석하는 힘이 아니며 발전하여 나가거나 폭로하여 되돌아가는 힘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독서는 이해가 아니다

그저 따라간다

이 놀라운 무지

많이 읽을 줄 아는 것보다 제대로 읽어 낼 묵묵한 참을성

그것이 독서의 진정한 긍정이다

책은 자유고 자유는 해방이며 해방은 창조이므로 독서는 창작행위다

전문가는 방관자이기도 하다

위대한 사람은 시대를 읽는 현명한 전문가가 아니라 관성을 거부하는 반시대적인 사람이다

니체가 반시대적 고찰만이 인간 윤리의 궁극이라고 말했던 까닭도 이와 같다

시대를 거역하는 위험한 정신이 시대를 치료하는 창의적 생각 일수 있다

전문직에 의존하는 사회는 이기적 관성 사회다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그것을 초월하여 위험한 그리하여 우리에게 요구 되는 의무들을 거역하는 용기가 교사의 진면이다

다시 숙고하라

안정이 삶의 이유가 될 때 존재는 누추해진다

극단적 쾌락이란 절대적 금기인 죽음과 성이다

그러나 성과 죽음의 위반은 문명 세계를 파기 하는 위험인자이기에 다른 형태로 전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 전이의 초병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죽음과 성까지도 쾌락의 한 소재로 소모코자 하는 인간 욕망의 구체적 표현인 셈이다

에로티즘은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행위로 문자 그대로 에너지의 비생산적 소비 행위다

노동의 생산에 묶여 사는 인간을 자유의 소비로 이완 시키는 놀라운 힘이 에로티즘이다

나 자신은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이라는 물결에 실려 부유 하는 임시 부표다

나에 대한 무수한 관념들은 내 자신이 아니라 내가 욕망 하는 미래의 한 편린들이다

떠들게 아니라 침묵해야 하고 계획 할 게 아니라 기다려야 한다

대화는 타인과 나를 완성 하려는 존재의 공부 과정이다

욕망의 다양화는 민주주의의 밑천이다

괴로움마저도 자기 향유이다

분명 모든 욕망 생산은 이미 즉각 완수이자 소비이며 따라서 쾌감이다

여명의 직전이 가장 어둡고 박명의 최후가 가장 빛나는 것처럼 인간은 바닥을 경험 했을 때 진면이 노출되고 사회가 타락의 파국까지 추락 했을 때 혁명의 가능성이 다가온다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노년이 온다

무지는 대중을 우중으로 만들어 체제의 권력 속에 굴 복시킨다

인간이 하나의 권력에 포섭 되는 밑천이 무지다

우울은 고립의 조건이 아니라 창조적 시발의 마중물이다

절정의 비극은 정상의 아름다움이다

우울은 무딘 칼날을 정비 하라는 몸의 반응이고 무딘 감수성을 연마하라는 시그널이다

우울은 인간 평화를 파괴 하는 원인이 아니라 보다 아름답게 나 자신을 배려하라는 명령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정신은 죄다 편견이다

인생은 비극이나 인간은 희극이어야 한다.